서울 구청장에 정문헌 이성헌 등 도전
경기권 시장엔 최민희 주광덕 등 출마
지자체 인사권·사업 인허가권 행사도
홍보효과 커 중앙정치보다 더 주목받아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자치단체장의 위상이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쩍 높아졌다. 과거에는 중앙정치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경력을 쌓는 ‘징검다리’ 정도로 인식됐지만, 최근엔 다선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기초단체장 선거에 잇달아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민선 7기를 거치면서 지방분권체제가 자리 잡았고, 기초단체장이 발휘할 수 있는 권한이 커진 덕분이다. 특히 서울 구청장이나 경기권 시장의 경우에는 지자체 인구도 많아 주무를 수 있는 예산 규모도 커, 상당히 많은 권한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재선의원 출신의 구청장 도전
이번 지방선거의 주요 정당 공천 결과를 보면, 특히 서울시 구청장 자리를 놓고 국회의원 출신들이 벌이는 경쟁이 치열하다. 우선 정치1번지 종로구에서는 강원 속초·고성·양양에서 재선 의원을 지낸 정문헌 전 의원이 국민의힘 후보로 출격했다. 서울시의원 출신 유찬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대결을 펼치는 정 전 의원은 “강원도에서 국회의원을 했지만, 실제 자란 곳은 종로”라며 “종로는 서울의 심장이지만 이제는 낙후된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직접 발전시키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성북구에서는 서울시 부시장과 성북갑 국회의원을 지낸 정태근 전 의원이 성북구청장 자리를 두고 이승로 현 구청장과 맞대결을 펼친다. 서대문구에서는 우상호 전 민주당 원내대표와 총선에서 6번 맞붙어 2승 4패를 거둔 '영원한 맞수' 이성헌 전 의원이 국민의힘 후보로 나선다. 이 전 의원은 재선 국회의원에 청와대 정무비서관, 한나라당 사무부총장 등을 지낸 중량급 인사다. 민주당에서는 서울시의원을 지낸 박운기 후보가 이 전 의원의 맞상대다.
이 밖에도 이은재 전 의원(강남구청장), 유정현 전 의원(서초구청장) 등도 구청장 선거에 도전했으나 당내 예선을 뚫지는 못했다.
경기권에서도 전직 의원들의 시장 출사표가 잇따르고 있다. 남양주시장 선거에서는 최민희(민주당) 전 의원과 주광덕(국민의힘) 전 의원이, 용인시장 자리를 놓고서는 백군기(민주당)·이상일(국민의힘) 전 의원이 맞붙는다. 성남시장 선거에는 4선의 신상진(국민의힘) 전 의원이 출마했다.
갈수록 커지는 기초단체장 권한
통상 지역구 국회의원은 중앙정부 예산 배정이나 지방선거 공천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기초단체장과의 관계에서 '갑'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럼에도 전직 다선 의원들까지 나서 '을'로 여겼던 자리에 도전하는 이유는 그만큼 시장·군수·구청장의 위상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자치구와 경기권 대도시는 인구가 수십만 명에 이르러, 지방소득세 취득세 자동차세 재산세 등을 통해 상당한 세수를 거둘 수 있다. 또 자치구 내 인사권, 허가권, 규칙제정권 등도 갖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부지면적 3,000~5,000㎡ 규모 주차장, 문화ㆍ체육시설, 시장 등 도시계획시설을 설치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게 됐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울시 구청장은 자치구 내에서 이뤄지는 일에 대한 인·허가권, 공무원 인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역구 국회의원보다 ‘알짜배기 권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며 “국회의원은 나랏일을 하고, 구청장은 지역 일을 하기 때문에 체급이 다르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정치인과 행정가로 분류하는 게 더 맞다”고 설명했다.
기초단체장을 국회 재입성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기초단체장은 대규모 조직을 이끌고 많은 예산을 직접 집행하면서 다양한 행정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요즘 유권자들은 정당 경험만 있는 정치인보다는 행정에서 실제 성과를 거둔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더 선호하기도 한다. 실제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전 노원구청장을 지냈고, 국민의힘 중진 서병수 의원 역시 부산 해운대구청장을 지냈다.
SNS 잘 활용하면 중앙정치인보다 유리
이 교수는 “국회의원 공천을 받지 못했거나 낙선한 정치인에겐, 구청장이 경력을 유지시킬 수 있는 정거장 또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며 “지역주민과 가깝게 소통하고, 좋은 행정 결과물까지 만들어낸다면 다음 선거를 도모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구청장 출마가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대문구청장에 도전하는 이성헌 전 의원 역시 이런 점을 강조했다. 이 전 의원은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일을 8년간 했고, 국가 예산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전에 따라 지역의 이슈가 전국적인 눈길을 사로잡기 쉬워졌다는 점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예전에는 기성언론을 통해 중계되는 '여의도 중앙정치’만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렸지만, 이젠 지자체에서 일어나는 일도 SNS에서 화제가 되고 언론에 보도된다.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이 성남시장, 경기지사 등 단체장 경험만으로 여당 대통령 후보에 오른 것에도 SNS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엔 구청장 등을 하는 것은 중앙정치 경력에 큰 도움이 안 됐지만, 이제는 SNS를 활용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이슈를 만들거나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며 “행정 경험이 다음 총선 도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SNS 덕분에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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