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8,000여 명(12일)→17만4,400여 명(13일)→29만6,180여 명(14일).
북한이 사실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 국면에 진입했다. 연일 수치를 경신하는 신규 유열자(발열자) 규모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초기 상황을 빼닮았다.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조차 “건국 이래 대동란”이라며 방역 전쟁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거센 감염병 파고에 무릎을 꿇을 시간이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北, '팬데믹 시작' 판박이... 초기 진화 실패
북한의 코로나19 확산세는 거침이 없다. 15일 북한 국가비상방역사령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까지 하루 동안 전국에서 29만6,180여 명의 발열자가 새로 나왔고, 15명이 사망했다. 코로나19 환자 발생이 감지된 지난달 말로 범위를 확대하면 누적 발열자는 무려 82만620명에 이른다. 이 중 32만4,550여 명이 아직 치료 중이다. 공식 확인된 누적 사망자도 42명이나 된다.
‘초기 진화’는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엔 자가진단 키트나 신속항원검사 도구 등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판별할 기초 장비가 전무하다. 유전자 증폭(PCR) 검사 체계를 갖추지 못해 ‘검사→추적→격리’라는 감염병 관리 공식을 따를 수 없다는 의미다. 북한이 확진자 대신 ‘유열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누가 코로나19에 걸렸는지 알 수 없어서다. 사망 원인도 “약물 사용 부주의 탓이 크다”며 주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코로나19 자체의 심각성을 축소하기에 급급하다.
의료시스템도 붕괴됐다. 김 위원장과 노동당 간부들이 보유 상비약과 약품을 먼저 기부할 정도다. “버드나뭇잎을 우려먹는다” “우황청심환을 더운 물에 타서 먹는다” 등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까지 난무하면서 사회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자가통제 고집하지만... '지역 간 감염' 관건
북한 당국은 아직 자가통제를 자신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봉쇄 지역과 해당 단위 안 전파”라며 코로나19 상황을 “지역 내 확산”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가 “중국식 봉쇄정책”을 대응 모델로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경우 코로나19 백신과 자가진단키트, 상비약 등이 때맞춰 지원되면 확산세를 늦출 여지는 있다.
문제는 ‘지역 간 감염’이다. 남측 사례만 봐도 2020년 2월 신천지 대구교회가 코로나 전파의 진원지가 되면서 1차 대유행이 시작됐고, 이후 전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보건 전문가들은 북한 내 지역 감염이 일찌감치 시작됐을 것으로 본다. 매일 북한 전역에서 코로나19 의심환자가 나오는 점을 감안할 때 북한 당국의 발표보다 최소 수배의 확진ㆍ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여기에 방역 장비도 없는 데다 ‘스텔스 오미크론’ 변이의 치명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북한 주민들의 취약한 면역력을 고려하면 외부 도움 없이 확산세를 잡기란 여간해선 불가능하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북한은 백신 접종률과 치료 시스템, 국가 영양상태 등 치명률을 낮출 수 있는 조건을 단 하나도 만족하지 못한다”며 “록다운(봉쇄)을 한다 해도 최소 한 달이 필요한데 식량 등 물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코로나19 폭증세가 예상보다 가파르면서 도발 시간표에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관심이 쏠린 7차 핵실험의 경우 국가역량을 방역에 총동원한 만큼, 연기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앞서 12일 김 위원장이 주재한 긴급 대책회의에서 국방성 일부 인사가 방청한 점으로 미뤄 미사일 시험발사 등 다른 군사 일정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의 국가 중요정책을 결정할 당 전원회의가 6월 상순 예정돼 있어, 적어도 이때까지는 핵실험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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