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함께하는 직업] <2> 동물 트레이너 이순영씨
편집자주
동물을 위해 일하는 직업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수의사, 사육사, 훈련사 등은 동물 관련 쉽게 떠올리는 직업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실제 영화감독, 출판사 대표, 웹툰 작가 등 다른 직업을 갖고 동물을 위해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동물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나 동물 관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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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을 기르는 사람도, 기르지 않는 사람도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반려견 훈련사(트레이너)가 등장해 문제 행동을 하는 반려견을 교육시켜 단기간 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직업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반려동물 훈련사'는 2017년 7월에야 통계청 한국표준직업분류에 추가됐다.
동물 트레이너 이순영(34)씨는 "트레이너 역할이 (TV에 주로 그려지는) 동물의 문제 행동을 강압적 방식으로 교정하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동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동물도 함께 사는 사람도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일"이라는 것이다.
동물 전문교육기관 시티칼리지와 연성대 트레이닝 과목을 맡은 겸임교수이자 동물 트레이닝 기관 올어바웃트레이닝(AAAT) 대표, 사육곰 구조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인 그를 17일 서울 마포구 서울동물복지센터에서 만났다. 시티칼리지 학생들과 유기견 교육 자원 봉사에 한창이었다.
"반려동물부터 닭, 곰, 금붕어까지 모든 동물 교육"
-동물 훈련사, 트레이너, 행동 교정사 등으로 불리는데 어떻게 불리고 싶나.
"훈련사와 트레이너는 같은 뜻이지만 두 단어가 나타내는 이미지는 다른 것 같다. '훈련'하면 동물복지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높지 않던 시절 동물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등 특정 행동을 억지로 시키는 이미지가 있다. 이에 대한 반감 때문에 요즘은 개를 '훈련한다'는 표현 대신 '교육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셋 중엔 트레이너가 제일 낫지만 트레이너라는 단어 역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트레이너는 어떤 역할을 하나.
"트레이닝 하면 대부분은 '앉아', '기다려' 등 특정 행동을 하게 하거나 문제 행동을 바꾸는 교육을 떠올린다. 실제로는 동물 스스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동물원 전시동물은 건강 검진을 위해 사람에게 몸을 맡겨야 하고, 전시장 청소 시 이동을 해야 한다. 이럴 때 마취를 하거나 힘으로 '협박'하는 게 아니라 동물에게 더 나은 선택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도록 돕는 것이다."
-반려동물뿐 아니라 다른 동물도 교육한다고 하던데.
"시티칼리지에서 닭을 교육하는 '치킨캠프'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세계적 동물행동 전문가 테리 라이언 트레이너와 온라인으로 연결해 공동 수업한다. 닭에게 특정 지점을 쪼게 하거나 박스를 통과하게 교육시킨다. 닭은 동작이 빠르고, 강압적으로 다루면 그냥 달아나 버린다. 물리력으로 움직일 수 없는 닭을 훈련하려면 더 긍정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중요한 건 닭을 박스에 통과시키는 게 아니라 동물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강원 화천군에 있는 사육곰 13마리를 최근 마취하지 않고 채혈할 수 있도록 사람에게 팔을 내밀어 주는 교육을 시켰다. 금붕어는 어항 내 장애물을 수평, 수직으로 통과시키도록 하는데 행동 풍부화를 위해서이지만 금붕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다."
"트레이너, 단순히 동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실력이 담보돼야"
-트레이너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해 공주대 특수동물학과를 졸업했다. 동물 관련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던 중 동물과 소통을 통해 사람도 동물도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트레이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강압적 훈련 방식이 많았고 제대로 된 교육 과정이 없었다.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동물 관련 워크숍 및 세미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있는 대로 들었다. 긍정 강화 훈련으로 유명한 캐런프라이어 아카데미에서 트레이너 자격증을 따고 귀국해 트레이너,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최근 AAAT라는 기업을 만들어 야생동물 수의사로 손꼽히는 최태규 수의사, 양효진 수의사,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와 야생동물 돌봄 전문교육 과정을 만들었다."
-일하다 다친 적은 없나.
"크게 다친 적은 없다. 동물과 일할 때는 위험에 노출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다만 동물이 공격할 때는 신호를 준다. 예컨대 개에게 물린 건 개의 행동언어를 잘 읽지 못했다는 거다. 또 강압적 방법을 사용하면 동물이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선에서 행동언어를 읽으며 교육하면 안전하다."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
"트레이너나 사육사를 교육할 때 이들이 동물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느꼈다. 동물을 교육할 때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대부분은 빠른 속도로 배운다. 다만 학대 등으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된 동물을 교육할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당장 성과가 나지 않아 지루할 수 있지만 매일 꾸준히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
-예비 트레이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동물을 좋아해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는 이들이 많지만 단순히 좋아한다고 해서 동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동물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실력이 담보돼야 한다. 실력이 없는 상태에서 일하게 되면 오히려 동물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긴다. 트레이닝은 동물복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걸 기억하자."
동물 트레이너가 되려면
15년 전만해도 훈련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 트레이너가 됐다. 이제는 대학에서 반려동물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민간단체 트레이너 자격증을 딸 수 있다. 해외에서 트레이닝 과정을 이수하는 이들도 늘었다.
그러나 자격증, 수료증을 땄다고 해서 트레이너의 자질을 갖췄다고 보긴 어렵다. 새로운 트레이닝 방법을 꾸준히 공부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새로운 과학적 연구 결과가 나오면 이를 실제 동물에 적용해 보고 더 나은 방법을 만들어 가야 한다. 사람의 편의가 아닌 동물의 행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트레이닝 방법은 트레이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동물에게 특정 행동을 유도하고 보상하는 클리커 트레이닝, 반려견 목에 통증을 가해 복종 훈련을 시키는 초크체인 방법 등 다양한 트레이닝 방법이 존재한다. 트레이너들은 관련 교육기관, 반려견 유치원 등에 소속되거나 개인적으로 활동한다.
도움말: 이순영 트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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