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통합 가치 부여한 것엔 긍정 평가
'헌법 전문 반영' 언급 없었던 점엔 불만도
1980년 5월, 광주의 봄은 잔인했다. 권력욕에 눈이 뒤집힌 신군부가 찍은 땅. 그들은 광주를 세상에서 고립시켰다. 빛고을은 육지 속 섬이 됐고, 그곳엔 민초들의 핏빛 절규가 낭자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을 살려주십시오!" 그러나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스스로 총을 들어야 했다. 더 이상 무고한 생명이 군홧발에 짓밟히고 총칼에 쓰러지는 걸 지켜볼 수 없었다. 학살에 나선 저들에 맞선 시민들의 항거는 죽음을 딛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18일 거행된 5·18민주화운동 제42주년 기념식은 '오월 광주'에 대한 이런 평가와 가치를 담아낸 보고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꺾이면서 3년 만에 참석 인원(1,500여 명) 제한이 풀린 기념식장엔 그날의 진실과 역사적 의미를 전달하는 로드 무비(오월의 택시, 진실을 향해 달린다)가 상영됐고, 희망 가득한 오월을 염원하는 노래도 울려 퍼졌다. 이에 화답하듯 윤석열 대통령은 "오월 정신을 확고히 지켜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6년 만에 보수 정부가 준비한 기념식에 참석한 유족과 광주 시민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윤 대통령에게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약속(5·18정신을 개정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것)을 듣지 못한 탓이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임시정부)과 4·19혁명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윤 대통령이 헌법 전문에 관한 아무런 언급 없이 6분간의 기념사 낭독을 끝내자 식장은 한때 술렁였다. 5·18민주유공자 윤모(66)씨는 "오월 정신과 그 가치를 확인하는 길은 윤 대통령이 약속했던 것처럼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반영하는 것"이라며 "결국 윤 대통령은 말로만 오월 정신을 지키겠다고 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뿔난 표정으로 식장을 빠져나가던 유족 손영희(72)씨도 "서운하지 않겠냐. 기념사가 알맹이도 없던데"라고 쏘아붙였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도 "윤 대통령이 5·18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현 시대의 과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고 매우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다만 5·18단체의 반응은 다소 결이 달랐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윤 대통령이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오월 정신이 국민 통합의 주춧돌이라 평가한 것은 5·18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것이어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보수 정권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5·18단체 대표 등과 묘지 내 '민주의 문'을 통해 300여m를 걸어서 기념식장에 들어섰다.
이날 기념식은 과거 보수정권 때마다 불거졌던 푸대접 논란은 없었지만 '오월의 희망'이란 주제로 펼쳐진 기념 공연을 두고서 "진실 규명 의지가 없다"는 뒷말이 나왔다. 공연은 '희망 가득한 나의 오월을 드립니다'라는 영상 상영과 교사연합합창단의 '행복의 나라' 합창으로 구성됐다. 이에 대해 이모(57)씨는 "아직 5·18 진실 규명이 미완으로 남아 있는데 어떻게 희망의 오월을 만들고 노래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윤 대통령 말처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광주시민이 되고, 희망의 오월을 만들려면 진실 규명이 먼저 선행돼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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