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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배출 기업엔 푼돈 부과...5년간 처리비 5600억원 혈세로 메웠다

입력
2022.05.20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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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의 나라, 고장난 EPR]
<3>부족한 비용은 세금으로
포장재 재활용 비용, 생산업체 책임 명시 불구
정부는 기업들에 비용 턱없이 적게 부과해
부족한 비용, 지자체 세금으로 막도록 떠넘겨
공공선별장 적자 매년 늘어 작년 1750억원

2020년 6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자원순환센터 야적장에 재활용 쓰레기가 쌓여 있다. 이 자원순환센터는 한 해 약 7만7,000톤의 폐기물을 처리했다. 2020년 하반기 화재가 나서 현재는 야적장만 쓰고 있고, 폐기물 처리는 외부 업체에 위탁을 맡기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6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자원순환센터 야적장에 재활용 쓰레기가 쌓여 있다. 이 자원순환센터는 한 해 약 7만7,000톤의 폐기물을 처리했다. 2020년 하반기 화재가 나서 현재는 야적장만 쓰고 있고, 폐기물 처리는 외부 업체에 위탁을 맡기고 있다. 연합뉴스

자원재활용법 제16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조업자나 수입업자는 제조·수입하거나 판매한 제품·포장재로 인해 발생한 폐기물을 회수해서 재활용하여야 한다.'

이는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의 원칙이다. 기업이 제품을 포장·판매해서 이익을 얻는 만큼, 생산한 폐기물에 대해 재활용까지 책임지라는 의미이다. 모든 기업이 직접 재활용을 하는 건 어려우므로, 현재는 재활용에 필요한 분담금을 걷어 재활용 업계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선 2003년부터 제도가 도입됐고,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이 원칙만 보면 기업이 국내 재활용 비용을 모두 떠맡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 EPR 분담금이 기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0.1%뿐일 정도로 미미하다. 한 해 매출 6조 원, 포장재 6만 톤을 생산하고도 고작 73억 원만 내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정한 기준이 플라스틱 ㎏당 100~300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적은 돈으로 재활용이 다 해결되는 것일까. 부족한 금액이 있다면, 누가 채우고 있을까. 결국 세금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재활용 시설을 운영하며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다. 2020년 지자체 공공선별장의 적자는 1,747억 원에 달한다. 같은 해 회수·선별·재활용 업체에 지급된 포장재 EPR 지원금 1,646억 원보다도 많다. 민간업체에 간 지원금을 제외한, 지자체에 지급된 EPR 지원금은 약 22억 원에 그쳤다. 일부 지자체는 "EPR 지원금을 달라"고 항의 공문을 보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생산자의 이익을 지나치게 배려해서 폐기물 재활용 책임을 국민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방자치단체 공공선별장 운영 적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지방자치단체 공공선별장 운영 적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공공선별장 적자, 5년 새 두 배 넘게 증가

한국일보가 환경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6~2020년)간 전국 지자체 공공선별장의 적자는 5,598억 원에 달한다. 2016년 적자 729억 원에서 △2017년 842억 원 △2018년 1,102억 원 △2019년 1,176억 원 △2020년 1,747억 원이었다. 5년 사이 두 배 넘게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이 급증한 2020년엔 공공선별장 185곳의 총 운영 수익은 831억 원, 운영 비용은 2,579억 원이었다. 전년도에 비해 적자 폭이 32.6%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같은 해 환경부도 중앙정부 예산으로 약 130억 원을 지자체 선별장에 지원했다.

반면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지자체 선별장에 지급된 EPR 지원금은 총 22억2,284만 원에 불과했다. 그해 공공선별장 운영 비용의 0.85%에 불과하다. 기업들이 매출의 약 0.1%만 분담금으로 내는 사이 수천억 원대 세금이 폐기물 처리에 투입되는 모양새다.

78억 적자 난 수원시, 1700만 원만 지원받아

지난해 9월 경기 수원시 자원순환센터 야적장에서 직원들이 추석 명절 기간에 쏟아져 나온 스티로폼을 운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9월 경기 수원시 자원순환센터 야적장에서 직원들이 추석 명절 기간에 쏟아져 나온 스티로폼을 운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환경부는 이에 대해 "지자체에도 폐기물 처리 의무가 있다"며 "공공선별장에서 다루는 폐기물 중 EPR 대상이 아닌 품목도 있다"는 입장이다.

지자체도 폐기물 처리 주체이므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이상할 것 없다는 논리다. 또 EPR는 플라스틱 포장재 등 일부 품목에만 적용되는데, 지자체 선별장에 반입되는 품목 중엔 폐토사·건축폐기물 등 EPR가 적용되지 않는 품목이 있어서 EPR 지원금이 운영 비용보다 적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자체별 수익·지출 현황을 뜯어보면, 지자체 운영 비용에 비해 EPR 분담금이 적어도 너무 적다. 게다가 비용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건 EPR 적용대상인 플라스틱류다.

대표적으로 수원시는 2020년 자원순환센터를 운영하며 77억7,485만 원의 적자를 봤다. 같은 해 전국 공공선별장 185곳 중 가장 컸다. 수원시는 "담당 권역이 넓어 폐기물량이 많고, 재활용품과 일반 폐기물을 함께 처리하는 복합센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의 설명대로 수원시 자원순환센터의 운영 실적을 보면, 연탄재·폐토사·폐형광등 등 EPR 적용을 받지 않는 품목이 섞여 있다. 그러나 세부 비용을 따져보면, EPR 품목인 플라스틱의 처리 비용이 다른 품목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2020년 수원시는 폐플라스틱을 위탁처리하는 데에만 25억7,177만 원을 썼다.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을 판매해 얻은 수입 약 12억 원보다 두 배가량 많다. 여기에 플라스틱 선별 인력(34명)의 인건비, 플라스틱 수집·운반에 필요한 유류비 등을 합치면 처리 비용은 큰 폭으로 뛴다. 수원시정연구원은 “폐합성수지(플라스틱)의 처리비용이 연간 운영비의 3분의 1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시가 플라스틱 처분과 관련해 환경부로부터 지급받은 EPR 지원금은 단 1,741만 원에 그쳤다. 비닐류(플라스틱 필름) 처리에 1,485만 원을 지원받았고 페트병과 일반 플라스틱 용기 처리에 255만 원을 받았을 뿐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EPR 지원금이 센터 운영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재활용 사정 악화되면 지자체 지원부터 끊어"

2020년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EPR 지원금 지원 중단을 알린 공문. 지자체 제공

2020년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EPR 지원금 지원 중단을 알린 공문. 지자체 제공

재활용 시장 여건이 어려워지면 지자체에 지급되던 EPR 지원금부터 끊긴다. 기업들에서 거둬들이는 전체 분담금 파이가 작다 보니, 상황이 나빠지면 지자체 지원금을 줄여 민간업체를 지원하는 것이다.

분담금은 법률상 요건이 정해진 회수·선별 사업자에게 분배된다. 그러나 재활용 업체 지원 기관인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KORA)의 내부 규정인 '회수·재활용사업 운영 규정'에 따라, "회수⋅재활용을 위탁하기에 부적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지원 대상에서 즉시 제외(9조)"될 수 있다.

지난해 환경부와 KORA는 폐비닐을 위탁처리하는 지자체에 EPR 지원금을 주지 않기 시작했다. 2020년 코로나19로 비닐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재활용 시장은 '폐비닐 포화상태'가 됐다. 기업은 계속해서 비닐을 생산·판매하는데, 폐비닐 재활용품인 고형연료제품(SRF)의 수요는 그대로였다.

SRF 업체로서는 원자재인 폐비닐이 넘쳐나지만, 정작 비닐을 SRF로 만들어도 팔 곳이 없었다. 폐비닐을 사와 봤자 되레 보관비용만 떠안게 됐지만, 시장에서는 끊임없이 비닐을 팔고, 버렸다. 급기야 폐비닐을 돈 주고 사오던 것에서 돈을 받고 위탁처리해주는 방향으로 재활용 시장의 판도가 악화됐다.

가장 먼저 무너진 곳은 영세한 민간 회수·선별 업체였다. 기존에 돈을 받고 팔던 수익 품목을 톤당 20만~30만 원을 주고 처리하려니 사업 유지가 불가능해졌다. 처리하지 못한 폐비닐이 쌓여서 '제2의 비닐 대란'이 올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형성됐다.

환경부는 지자체에 지원되던 EPR 지원금을 민간업체에 돌리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폐비닐 양산에 책임이 있는 배달·식품 기업들이 코로나19 특수를 누렸음에도, EPR 분담금을 더 거둬 민간업체를 지원하지 않았다. 지자체의 지원금 삭감은 고스란히 적자로 남아 결국 시민들이 예산으로 메우게 됐다.

당시 지원이 중단된 지자체 관계자는 "결국 민간업체 지원과 재활용 시장 안정화에 필요한 자금을 지자체가 댄 것"이라며 "지자체도 경영 사정이 악화되어서 관계기관에 EPR 지원금을 계속 지급하라고 항의 공문을 보냈으나 답변조차 오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 EPR 지원금을 수령한 지자체 공공선별장은 전국 185곳 중 28곳(15.1%)에 불과했다. 2020년 40곳에서 12곳이 줄었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생산자가 재활용 비용을 책임진다는 EPR 제도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지자체가 예산으로 비용을 떠맡는 이상한 구조”라며 “EPR 시스템을 현실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플라스틱의 나라, 고장 난 EPR

<1>플라스틱 쏟아내도 푼돈만 부과

<2>벌칙금조차 너무 적다

<3>부족한 비용은 세금으로

<4>누더기 산정 방식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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