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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 암초까지… 합의 직전 멈춰 선 이란 핵협상

입력
2022.05.21 05: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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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美 일방적 탈퇴로 멈춰선 JCPOA
3년 만 재협상 나섰지만 1년 넘게 지지부진
혁명수비대, 미 테러리스트 제외 두고 '팽팽'
러, 서방제재 회피 위해 협상 인질 삼을 수도
이란핵협상 성공 여부, 북핵 협상에 시금석

지난해 4월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핵합의 복원을 위한 공동위원회 참가국 회의가 열리고 있다. 2018년 5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일방적 핵합의 탈퇴 및 대이란 제재 재개 이후 협상 복원을 위한 자리였다. 이란과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중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빈=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4월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핵합의 복원을 위한 공동위원회 참가국 회의가 열리고 있다. 2018년 5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일방적 핵합의 탈퇴 및 대이란 제재 재개 이후 협상 복원을 위한 자리였다. 이란과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중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빈=로이터 연합뉴스

2021년 4월 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한 호텔 회의장에 이란과 독일 프랑스 영국 중국 러시아 등 이란핵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대표단 수십 명이 둘러앉았다. 껍데기만 남은 협상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서다. 미국 대표단은 빠진 채 유럽 외교관들이 이란과 미국 양측을 오가며 대화를 이어가는 ‘간접 대화’ 형태였지만, 의미는 작지 않았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이 멋대로 뛰쳐나가면서 사실상 파탄 난 핵합의를 복구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3년 만에 머리를 맞댄 까닭이다.

이란은 선(先) 제재 해제를, 미국은 선 우라늄 농축 중단을 주장하는 등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긴 했지만, 양측은 대화 의지를 낮추지 않았다. 협상 재개 2주 만에 “참가국 사이 최종 목표를 향한 새로운 이해와 공통 기반이 형성됐다” “초안 작성이 가능할 것 같다”는 청신호까지 켜졌다.

그러나 대화가 재개된 지 1년 하고도 46일이 지났지만 협상 타결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북한 핵과 함께 국제사회 해묵은 골칫거리가 된 이란 핵 문제는 또다시 표류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석 달 전만 해도 ‘9부 능선을 넘었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던 협상은 왜 또다시 교착상태에 빠졌을까.

트럼프 행정부서 무너진 10년간의 ‘核 공든 탑’

이란 핵 문제를 이해하려면 이란이 미국의 우방이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란이 핵에너지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미국 덕분이었다. 1957년 미국과 ‘아이젠하워 평화프로그램을 위한 원자’라는 협정을 맺은 이란은 2년 뒤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회원이 됐고, 1968년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했다. 이슬람혁명(1979년) 이전까지 이란은 구소련의 남하를 막는 중동 지역 핵심 친미 국가였다.

이란 핵이 국제사회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건 9ㆍ11 테러 이듬해인 2002년이다. ‘무자헤딘 할크’로 알려진 이란 반체제 단체 이란국민저항협의회가 “이란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양국 관계는 줄곧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란과 북한 핵 문제가 하나로 묶여 국제적 관심사로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2020년 11월 이란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에 분노한 시위대가 수도 테헤란 시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테헤란=로이터 연합뉴스

2020년 11월 이란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에 분노한 시위대가 수도 테헤란 시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테헤란=로이터 연합뉴스

서방의 당근(협상)과 채찍(제재) 전략은 20년간 반복됐다. 미국은 지중해 대규모 군사훈련, 이란 핵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 반정부 단체 지원 계획 등 군사적 대응을 들고 나왔고 이란 중부 나탄즈 핵시설에 사이버 공격을 단행한 적도 있다. 물론 영국ㆍ프랑스ㆍ독일이 주도한 ‘테헤란합동선언문(2003년 10월)’ ‘IAEA 추가프로토콜 서명(2003년 12월)’ ‘파리합의문(2004년 11월)’ 등 평화적 해결을 위한 성과도 없지 않았다.

이란 핵을 둘러싼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5년엔 제3차 세계대전 우려가 나올 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당시 이란 대선에서 당선된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핵 주권을 강조하며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우겠다” “홀로코스트는 하나의 신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2006년 이란 핵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되면서부터 P5+1(안보리 상임이사국ㆍ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독일)과 이란 간 협상이 첫발을 뗐다.

2015년 체결된 JCPOA는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어렵게 내놓은 결과물이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만 핵 에너지 권한을 갖는 대신, 서방은 대이란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합의 탈퇴를 선언하고, 이란에 무더기 제재를 가하면서 JCPOA는 누더기가 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우기인 ‘ABO(Anything but Obamaㆍ오바마만 아니면 돼)’ 정책이 맞물린 결과다. 10년간의 ‘공든탑’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의미다. 이에 맞서 이란은 IAEA의 미신고 핵시설 불시 사찰을 제한하고, 우라늄 농축률도 JCPOA가 규정한 3.67%를 훌쩍 넘긴 60%까지 끌어올렸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1월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우라늄 농축률을 90%까지 끌어올리는 기술적 조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란 원자력청이 2019년 11월 공개한 중부 나탄즈 우라늄 농축 시설에 있는 개량형 원심분리기 IR-6 모습. 나탄즈=AP 연합뉴스

이란 원자력청이 2019년 11월 공개한 중부 나탄즈 우라늄 농축 시설에 있는 개량형 원심분리기 IR-6 모습. 나탄즈=AP 연합뉴스


9부 능선 넘었지만, 최종합의 ‘감감’

멈춰 있던 JCPOA 시계는 지난해 4월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취임 일성을 내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동 정세를 안정시키고 이란이 패권 라이벌인 중국 쪽으로 기울지 못하게 막으려면 유명무실해진 협상 복원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협상은 과거와 같이 유럽 주요국이 주축이 돼 이란과 직접 회담을 하고, 미국은 EU를 메신저로 간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종의 ‘다자적 양자 협상’이다.

어렵사리 한자리에 앉았지만 대화가 수월하진 않았다. 미국은 JCPOA 합의가 끝나는 2030년 이후에도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새로운 조치 합의를 요구했고, 이란은 미국이 먼저 제재를 해제하라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섰다. 게다가 출범 두 달 만에 또 다른 고비도 찾아왔다. 6월 치러진 이란 대선에서 강경보수 성향인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가 당선되면서 회담이 또 멈춰 선 것. 양측은 5개월이 지난 11월에야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협상이 석 달 넘게 이어진 끝에 올해 2월 16일 미국과 이란 양측은 JCPOA 복원 협상이 타결에 근접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20쪽이 넘는 핵합의 복원 협상문 초안에 ‘5% 넘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중단'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남은 쟁점은 미국의 일방적 합의 파기를 겪은 이란이 “정권 교체에도 제재 부활은 없다고 미 의회가 보증해 달라”고 요구한 것과,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미국의 해외테러리스트 조직(FTO) 명단에서 제외해달라고 한 것 정도였다.

지난해 4월 20일 이란핵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의 호텔 앞에서 이란 야권인 국가저항평의회 회원들이 '협상을 중단하라'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빈=AFP 연합뉴스

지난해 4월 20일 이란핵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의 호텔 앞에서 이란 야권인 국가저항평의회 회원들이 '협상을 중단하라'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빈=AFP 연합뉴스

그후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종 합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양측이 막판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탓이다. 특히 IRGC는 미국과 이란 모두 ‘레드라인(금지선)’으로 설정해 해결이 쉽지 않다. IRGC는 이란 정치ㆍ경제ㆍ사회 전반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녔다. 행정부와 의회 모두 보수 세력이 장악한 이란 정부가 지정 철회 요구를 접을 리 없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도 선뜻 나서기 어렵다. 테러조직 지정 철회 자체는 상징적 조치일 뿐이지만, 미국이 정치적으로 이란에 많은 것을 양보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탓이다. 실제 이달 13일 미 국무부가 의회에 보고한 ‘블랙리스트 제외’ 명단에 일본의 옴진리교, 스페인 바스크 민족주의 무장투쟁조직 에타(ETA) 등은 포함됐지만, IRGC는 제외됐다.

예상 못한 변수 '우크라 전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란 암초와도 맞닥뜨렸다. 당장 러시아는 JCPOA 복원을 빌미로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서방 제재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지난 3월 러시아는 미국 측에 서방의 제재에서 대이란 교역과 투자에 대해서는 예외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2018년 미국의 탈퇴 전까지 이뤄진 핵합의 체제에서 러시아는 이란의 핵 활동을 감시하고, 이란산 고농축 우라늄을 인도받아 저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JCPOA 최종 서명 과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합의안 가결은 불가능하다.

이란산 원유가 세계 시장에 풀리는 것을 원치 않는 러시아의 몽니라는 관측도 있다. 원유 수출 금지는 미국이 이란에 부과한 핵심 제재다. JCPOA가 복원될 경우 이란 원유 물량이 시장에 풀리면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원유 가격 상승세가 둔화될 수 있다. 유가를 끌어올려 서방의 제재 대오를 분열시키고 원유 판매 수익을 늘리려는 러시아에는 악재다. 러시아가 제재 회피를 위해 협상을 인질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1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오른쪽) 러시아 외무장관과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이 회담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1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오른쪽) 러시아 외무장관과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이 회담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러시아가 서로에게 합의 지연 책임을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만 이어가면서 ‘핵 없고 평화로운 지구촌’을 위한 협상은 물 건너갈 공산이 커지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최근 MSNBC인터뷰에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크게 낙관적이지 않다”는 비관론까지 꺼내 들었다.

JCPOA는 먼 나라 얘기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북한과 이란의 핵 역량과 개발 능력 등을 절대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미국의 이란 핵 해법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북핵 접근법 윤곽을 가늠할 수는 있다. 블링컨 장관은 취임 전부터 북핵 문제 해결에 이란식 방법론을 적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북한의 핵ㆍ미사일 기술이 더욱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JCPOA 재협상 성공 여부는 한국 정부에도 시금석이 될 수 있다. 협상 결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정상률 전 명지대 교수/ 전 한국중동학회 회장

정상률 전 명지대 교수/ 전 한국중동학회 회장


정상률 전 명지대 교수/ 전 한국중동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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