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리, 직접 로비업무 안 했어도
대형로펌 출신 고위직 기용은 문제
배우자 로펌변호사도 이해충돌 우려
한덕수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동의가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정국이 파국으로 향할 위험을 모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총리 등 윤석열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권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총리 등 고위직 임명권이고, 그러한 고위직 임명에도 지켜져야 할 기준이 있는데, 현 정부 들어서 그마저 무시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차례 지적됐듯이, 고위 공직 퇴직 후 대형 로펌에서 고문을 맡아 활동했던 사람이 다시 고위 공직을 맡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로비스트를 인정하지 않지만 대형 로펌이 그런 일을 법무 자문이라는 형식으로 행하고 있음은 하나의 상식이다. 고위 공직자가 퇴직 후에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는 나라에서조차 로비스트는 장관으로 임명하지는 않는다. 정권이 교체된 후에도 다음을 기약하려는 사람들이 로펌에 가지 않고 연구소나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령 직접 로비 업무를 하지 않았더라도 고위 공직에서 물러난 후 대형 로펌에서 고액 보수를 받았던 사람을 다시 고위직으로 기용하는 것은 로비스트를 기용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그 경험을 토대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본인을 위해서나 학생들을 위해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강의 등 별다른 교육과 연구 활동도 없이 거액의 급여를 받았다면 그런 경우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립학교는 정부 부처와 정치권에 로비를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대학은 온갖 연줄을 동원해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한다. 고위 공직이나 정치권에 있었던 사람을 객원교수 등으로 임용해 강의도 하지 않고 고액 급여를 지급했다면 그 역시 사실상 로비스트로 일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사람들을 다시 정부 고위직에 임명한다면 공직기강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여성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고 고위 공직을 맡는 경우가 늘어감에 고위 공직자와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고위 공직자의 배우자가 변호사인 경우 특히 그러한데, 변호사는 다른 사람의 일을 대리하기 때문에 로비에 취약하다. 업무가 포괄적인 국무총리와 법무장관의 배우자가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일 경우에는, 이익단체가 배우자의 로펌을 통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특히 문제 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배우자인 변호사가 고위 공직자인 배우자의 업무영역을 피해 가면서 변호사 활동을 할 수는 있지만,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선 그런 사람을 구태여 고위 공직에 임명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변호사 부부가 많은 미국에서도 법무장관의 배우자가 변호사로 활동한 적은 없었다.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존 애시크로프는 시카고 로스쿨 친구인 재닛과 결혼했지만 그가 정계에 들어선 후 부인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교과서를 집필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을 지낼 때 남편 더그 엠호프를 만나 결혼을 했고, 엠호프는 비즈니스법 분야에서 변호사 업무를 지속했다. 해리스가 부통령이 되자 엠호프는 로펌 파트너직을 버리고 조지타운 로스쿨에서 객원교수로 강의를 시작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 빌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를 지낼 때 아칸소의 가장 큰 로펌에서 파트너로 활동했다. 하지만 힐러리의 로펌이 화이트워터 사업에 연루됐음이 밝혀져 클린턴 대통령 임기 중에 큰 문제가 됐고 그녀의 백악관행에도 암초로 작용했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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