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 역사는 이번 윤석열-바이든 한미정상회담을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외교의 방향을 새롭게 '선택'한 사건으로 기록할 것이다.
정상회담 공동성명 행간에서 느껴지는 한국의 전략적 사고는 두 가지 명징성을 보인다. 첫째는 확실히 미국 편향적이라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전략적 명징성은 문재인 정부의 미중 사이에서의 전략적 모호성과 대조된다. 문 정부는 '가치외교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국제정세 변화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국제사회에 회오리바람이 부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는 가치가 같아야 '이익 공유'에도 포함시켜 준다.
둘째는 중국을 배척하는 것이 아님도 확실히 한 점이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로 중국이 반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윤 대통령은 "그렇게 제로섬으로 볼 필요는 전혀 없다"고 했다. 중국의 분석가들은 이런 발언을 중시한다. 한중 간 '관여'의 여지를 남겨두기 때문이다. 미국과는 별도로 '한국 스스로의 인도태평양전략구상'(ROK’s own Indo-Pacific strategy framework)을 공동성명에 명시한 점도 눈에 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번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은 한국이 확실히 미국 편에 선다는 '선언문'인 동시에 중국과도 척지고 싶지 않다는 것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중국에게 통할까?
첫째, 중국 스스로가 한국보다 훨씬 일찍 가치외교를 이미 운용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9년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사회주의 국가를 견지하는 것이 북중 관계의 본질적 속성"(堅持社會主義國家是中朝關係的本質屬性)이라고 선언했다. 김 위원장 역시 "사회주의야말로 북중친선의 변함없는 핵"이라고 화답했다. 이렇게 한국 주변 국가들은 일찌감치 '커밍 아웃'을 하고, 소속을 확정짓고, 국제정치 대변환 시대의 '게임'을 뛰고 있다. 사실 한국의 '가치외교로의 전환'은 주변국에 비해 한발 늦은 셈이다. 만약 가치에 기반한 한미동맹 강화에 대해 중국이 비판한다면 그것은 '내로남불'이 된다.
둘째, 중국은 대선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의 대중국 강경 발언에도 불구하고 한중 간 소통 공간이 여전히 있다고 판단하고 '성의 표시' 차원에서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을 보냈다. 중국은 윤석열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방향이 명확하기 때문에 한중 외교·안보 관계 개선에 있어 큰 기대를 갖지 않으면서도 '경제 협력' 공간은 여전히 있다고 본다.
셋째, 미중 경쟁 지정학 국면에서 한국은 중국이 '견인'해야 할 대상이라는 구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중 국력 차이의 비대칭 구조에서 전임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이라는 '뒷배'를 스스로 놓아버리자 중국은 한국을 가벼운 상대로 보고 유린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상대가 굴종적 태도를 보이면 더 확실히 꾹 눌러서 주종관계를 굳히려는 성정을 지니고 있다. 한국은 이웃인 중국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아도 중국 전략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일각에서는 미·중 사이에서 최대한 국익을 지키는 균형외교의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애국충정에 빙의한 담론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주식시장의 판도를 읽지 못하는 '주린이'와 다를 바 없다. 현 한반도 지정학은 미중 갈등을 이용해서 이익을 '따상'할 수 있는 그러한 시기는 이미 끝났다. 한미동맹이라는 판돈을 확실히 지키면서 한땀 한땀 소소한 국익을 힘겹게 쌓아 올려가야 하는 지난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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