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잇따른 반발에도 "협상할 수 없다"
여성 진행자들 "숨 쉴 수 없어 방송 못 해...
이슬람은 얼굴 가리라 명하지 않았다" 반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가 지난해 8월 재집권 초기에 공언했던 대(對)여성 유화책을 사실상 폐기하고 여성 억압으로 회귀하고 있다. 현재는 TV 뉴스 프로그램 여성 진행자들도 모두 얼굴을 가리라고 지시하고 있다. 과거 집권기에 보여준 이슬람 극단주의 양상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아프간 여성 인권의 심각한 후퇴가 예상된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아랍권 뉴스 채널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간) 아프간 현지 매체 톨로뉴스 등에 출연한 대다수의 여성 뉴스 앵커들이 눈만 보일 수 있도록 얼굴을 가린 채 방송을 진행했다. 탈레반은 앞서 19일 모든 방송 채널의 여성 진행자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으나 방송사들은 당국에 명령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21일까지 머리카락과 목 등만 가리는 기존의 복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아프간 정보문화부가 “협상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자 어쩔 수 없이 이에 따르게 됐다고 알자지라는 설명했다.
졸지에 '봉변'을 당한 방송인들은 반발하고 있다. 카테레 아흐마디 톨로뉴스 앵커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말을 할 수 없다”며 “이런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소니아 니아지 앵커는 “이슬람교는 우리에게 얼굴을 가리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며 “외부 문화를 강요하지 말라”고 말했다. 또 “모든 이슬람 학자들과 정치인들은 법령에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탈레반이 이슬람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꼬집은 셈이다. 로트풀라 나자피자다 톨로뉴스 이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눈만 내놓고 얼굴을 가린 여성 진행자의 사진을 공유하며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고는 상상해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탈레반은 지난해 8월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하면서 정권을 장악했다. 이후 국제사회의 탈레반 정권 인정을 요구하며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간을 지배할 당시와는 다른 여성 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강경책으로 선회한 모습이다. CNN 등은 탈레반이 지난 7일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했으며 이에 앞서 소녀들의 등교도 제한했다고 보도했다. 사라주딘 하카니 아프간 내무장관은 18일 CNN 인터뷰에서 탈레반 치하에서 외출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버릇없는(naughty) 여성들을 집에 가두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탈레반의 이슬람 율법과 국가, 문화, 전통 원칙에 따라 제한될 것이라며 “여성들은 정해진 틀 안에서 일할 수 있다”고 밝혀 탈레반의 전근대적 여성 정책을 다시금 드러냈다.
미국은 탈레반의 여성 인권 억압에 대해 우려를 전달했다. 토마스 웨스트 미국 아프간 특별대표가 21일 카타르 도하에서 아미르 칸 무타키 아프간 외무장관을 만나 탈레반의 여성 규제 확대에 대해 국제사회가 반대하고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알자지라는 보도했다. 웨스트 특별대표는 회담 후 “소녀들은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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