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기획취재공모전 우수상작
[구멍 난 결혼이민비자]
③판결에 나타난 결혼이민제도 실상
편집자주
2020년 기준 결혼으로 한국에 이주한 여성은 29만5,000여 명. 이 중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 외에 13만7,000여 명은 F-6결혼이민비자로 체류 중이다. 그런데 가정폭력을 당해도, 가정이 파탄나도 당국은 체류자격을 유지하려면 혼인관계를 유지하라고 요구한다. 결혼이민비자 제도의 문제점, 개선 방향을 담았다.
결혼이민(F-6) 비자는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거나 한국인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할 때만 결혼이주여성의 체류를 보장한다. 이혼 뒤 양육할 자녀가 있어도 시한부 체류자격만 준다. 체류자격 유지가 남편에게 매여 있어 가정폭력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부른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취재팀은 결혼 이주자의 체류 안정성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결혼이민과 관련한 행정소송 판결문을 조사했다. 소송을 분석해보면 법무부가 어떤 사유로 비자 연장이나 귀화를 거부하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결문 열람을 신청해 2020년 4월부터 최근 2년 동안의 결혼이민 관련 판결문 106건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체류자격 연장이나 귀화 신청 거부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 84건의 판결문을 분석했다.
가정법원 판단 존중 않는 행정법원
F-6-1 비자 연장을 다투는 사건이 38건으로 가장 많았다. 결혼 이주자인 원고가 승소한 것은 4건뿐이었다. 생계유지능력을 다시 평가한 것이 2건, 5년 안에 국제결혼을 두 번 못 하게 한 것과 음주운전으로 벌금을 냈다는 이유로 체류 연장을 불허한 것은 지나치다는 판결이 한 건씩이었다. 별거 상태로 인한 혼인의 진정성이 쟁점인 10건은 모두 원고가 패소했다. 법원은 이들 사건을 ‘위장결혼’에 가깝다고 봤다. F-6-2 비자 관련 소송은 1건 있었다. 면접교섭을 성실히 하지 않았다며 원고가 패소했다.
F-6-3 비자 발급을 청구한 소송은 12건이었다. 한 건만 원고 승소했는데, 한국인 배우자가 단순 변심으로 이혼 소송을 냈다가 오히려 위자료 830만 원을 주게 됐는데도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불분명하다며 비자 발급이 거부된 사건이었다. 법원은 재량권 남용이라고 판결했다. “원고가 체류 목적으로 결혼했다”는 배우자 진술만 믿은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2019년 대법원은 “혼인파탄의 주된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우리 사법제도에서 가정법원 법관들에게 가장 전문적인 판단을 기대”한다며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출입국·외국인청과 행정법원은 가정법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판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출입국 현장에서는 이런 판례를 따르지 않는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가정법원 판단을 따르지 않는 것은 행정법원도 마찬가지였다. F-6-3 비자를 놓고 다툰 12건 가운데 3건에서만 가정법원 판단이 존중됐다. 더구나 이 가운데 2건은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베트남 여성이 남편의 변태 성행위에 놀라 가출한 사건에서 가정법원은 화해권고결정을 통해 이혼은 남편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행정법원은 혼인 기간이 짧아 잘못을 따지기 어렵다고 한 출입국·외국인청 손을 들어줬다. 가정법원의 화해 결정이 확정판결과 효력은 같지만 유책 배우자를 지목하는 내용까지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소송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한 조정이나 화해 결정이 책임 소재 판단에 걸림돌이 된 셈이다.
사실상 남편의 ‘전적인 책임’ 요구
가정법원에서 결정한 위자료 액수가 커도 이주여성은 F-6-3 비자를 받기 어려웠다. 가정법원은 진술을 근거로도 책임 소재를 가려내 위자료 지급을 명령할 수 있지만, 행정법원은 과실에 대한 명확한 직접 증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중국인 여성은 남편이 전 부인과 몰래 여행을 다녔다며 위자료 1,200만 원을 받고 조정이혼을 했지만 비자를 얻지 못했다. 행정법원도 비자 거부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원고를 떼어놓고 사흘 동안 전 부인과 명절을 보내는 등의 상황이 반복됐지만, 그때마다 둘째 딸의 집 등에서 자녀와 함께 있어 ‘부정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귀책사유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남편은 이혼하기 싫다는 원고에게 화를 내며 전 부인과 살고 싶으니 집을 나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법원은 이혼 1년 전 남편이 체류 연장에 협조하는 대가로 300만 원을 요구해 원고가 100만 원을 송금한 점도 순수한 혼인관계인지 ‘의심’되는 근거라고 했다.
대법원은 판례에서 F-6-3 비자 발급 조건인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를 국민인 배우자의 ‘전적인’ 귀책사유에서 ‘주된’ 귀책사유로 해석하도록 완화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심각한 폭력을 당하지 않으면 배우자의 책임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어느 정도까지가 이른바 ‘주된’ 책임인지 알 수 없다”며 “이런 점 때문에 이주여성이 위기 상황에 놓여도 이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벌금 50만 원만 내도 ‘귀화 불가’
귀화 불허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은 33건이었다. 6건만 원고가 승소했다. 생계유지능력을 다툰 2건을 뺀 31건이 ‘품행미단정’ 요건을 다퉜다. 국적법 시행규칙에 따라 귀화하려는 외국인은 ‘품행이 단정’해야 한다. 주로 범죄경력이 없을 것이 요구된다. 금고 이상 형을 받으면 집행이 끝난 날부터 10년이 지나야 귀화할 수 있다. 집행유예는 7년, 벌금형은 5년이다. 기소유예도 2년이 지나야 한다. 이 요건을 충족해도 평소 행실과 공익 침해 정도를 고려해 귀화를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위법행위의 ‘정도’를 전혀 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원도 ‘품행단정’은 법이 정한 최소요건이라며 범죄경력이 있기만 하면 그 내용의 경중은 따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승합차 4열 시트의 마지막 열을 없애 짐칸을 넓혔다가 ‘사안이 경미’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경우와 주차된 차량 번호판을 가렸다가 벌금 50만 원을 낸 경우도 귀화가 불허됐다. 법원은 정부 손을 들어줬다.
품행미단정을 문제 삼은 31건 가운데 1건만 원고가 승소했다. 한 몽골 국적 여성이 술에 취한 가족과 실랑이를 벌이다 폭행을 했으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공소권 없음’ 처분한 사건이다. 출입국·외국인청은 이 사건을 이유로 귀화를 불허했는데, 행정법원은 재량권 남용이라고 판결했다.
종속적 체류자격 해소가 핵심
판결문 분석을 통해 확인한 것은 지금의 결혼이민비자 제도에서는 재판까지 가더라도 결혼이주여성의 체류 불안정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현실이다. 소수의 위장결혼을 골라낸다는 이유로 선량한 다수의 결혼이주여성을 궁지로 내모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혼인 심사 때 혼인의 진정성 심사를 조금 강화하더라도 국내 체류 중에는 1~3년을 주기로 계속 심사를 받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이주여성이 입국 2년 뒤 간이귀화를 신청하더라도 심사는 2년까지 걸려 최소 4년은 체류가 불안정한 상태”라며 “F-6 비자를 발급하면 5년은 체류를 보장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가족부의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F-6 비자 소지자는 입국 15년이 지나면 70% 이상 귀화할 만큼 국적 취득 의지가 높지만, 입국 5년 안에 귀화하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국제결혼 단계를 촘촘히 나누는 방법도 체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호주는 결혼이민비자 발급 결정 전까지 임시 비자를 준다. 약혼자 비자도 있어 9개월 동안 체류할 수 있다. 그 안에 실제 결혼을 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미국은 결혼이민자에게 조건부 영주권을 발급해, 입국 2년 뒤에도 동거상태로 혼인을 유지하면 별다른 절차 없이 영주권을 준다.
위장결혼을 막으려는 조치는 언제든 결혼이주여성을 가정폭력에 노출시킬 수 있다. 캐나다가 2017년 조건부 영주권 제도마저 폐지한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김민정 남서울이주여성상담소장의 “혼인의 진정성이 심각히 의심되지 않는다면, 한국인 배우자의 동의에 상관없이 체류나 귀화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말처럼 기본적인 접근 방식 변경을 검토할 때가 되었다.
◆글 싣는 순서
① F-6이 뭐길래
② 돈과 언어 장벽 앞에 자녀와 생이별
③ 판결에 나타난 결혼이민제도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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