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6대가 24일 독도 근방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ㆍ카디즈)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공교롭게도 쿼드(Quadㆍ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안보협의체) 4개국 정상들이 일본 도쿄에 모여 중국 견제 메시지를 발신한 날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맞물린 한미일 공조에 맞서 중러의 밀착도 공고해지는 등 동북아의 대결 구도가 한층 선명해지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56분쯤 중국 H-6 폭격기 두 대가 이어도 서북방 126㎞에서 카디즈에 진입한 뒤 9시 33분까지 약 1시간 40분간 머물렀다. 이후 러시아 군용기 투폴레프(TU-95) 폭격기, 전투기 두 대가 합류해 9시 58분부터 17분가량 체류했다. 중러 군용기들의 카디즈 진입은 오후에도 반복됐다. 군 당국은 오후 3시 40분쯤 이어도 동남쪽 267㎞ 카디즈 외곽에서 중러 군용기 6대를 다시 포착했다. 합참 관계자는 “우리 군은 카디즈 진입 전부터 공군 전투기를 투입해 우발 상황에 대비한 전술 조치를 취했다”며 “영공 침범은 없었다”고 말했다. F-15K, KF-16 등 공군 전투기 여러 대가 출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군용기들은 중러의 연합훈련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공군 패키지 전력이다. 지난해 11월 20일에는 양국 군용기 9대가, 2020년 12월 22일에는 19대가 카디즈에 들어왔다가 돌아간 적이 있다.
방공식별구역은 자국 영공으로 접근하는 군용기를 조기에 식별하기 위해 임의로 설정한 선으로, 엄밀히 따지면 국제법에서 인정하는 ‘영공’은 아니다. 카디즈 진입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대중 견제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단순한 훈련이 아닌 ‘무력시위’ 성격이 짙다.
"가만있지 않겠다"... 한미일 향한 중러의 경고
안보 전문가들도 중러의 카디즈 진입이 ‘시간문제’였다고 입을 모은다. 21일 한미정상회담과 이튿날 미일정상회담 및 ‘인도ㆍ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식, 이날 쿼드 정상회의까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3국의 압박 수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진영의 각종 제재에 직면한 터라 '우군' 중국과 의기투합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 순방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무력시위를 하겠다는 중국 측 의사가 강하게 반영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의 순방 일정은 “대중 안보 포위망 구축”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미일정상회담 뒤 대만해협 분쟁에 군사 개입 가능성을 열어 놓는 발언도 했다. 쿼드 회원국 정상들 역시 중국을 향해 동ㆍ남중국해에서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 행위’를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날 무단 진입은 최근 사례와 비교해도 차이가 난다. 과거에는 주로 한일갈등의 ‘틈’을 노려 한미일 공조체계의 분열을 야기하려는 의도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11월 진입도 독도 문제를 둘러싼 한일의 대립으로 한미일 외교차관 공동 기자회견이 무산된 즈음이었다. 반면 이번엔 한미일이 중러를 계속 옥죄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선전포고 쪽에 가깝다.
한미일 안보 협력이 북한 핵ㆍ미사일 대응을 넘어 인ㆍ태지역과 그 이상으로 확대될 조짐이 뚜렷해진 만큼, 도발에 준하는 중러의 군사행동도 잦아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한미의 대화 손짓에 꿈쩍 않고 고강도 핵ㆍ미사일 도발을 준비하는 북한까지 가세하면 한국이 ‘한미일 대 북중러’, 나아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사이 글로벌 신(新)냉전의 한복판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 채널을 통해 중러에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치를 촉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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