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창업 용금옥, 10년 지나면 한 세기
코로나19 이후 손님 절반 이상 줄고 타격 커
재개발로 다동 용금옥 자리도 길어야 5년
"새 건물에서도 용금옥 간판 걸고 명맥 이을 것"
50년, 60년 된 가게. 말은 쉽다. 하지만 바삐 돌아가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자리를 지키는 건 버거운 일이다. 42년간 직장인의 퇴근길 애환을 달래던 을지로 OB베어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최근 결국 문을 닫았다. 노포의 명맥을 잇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이 간다.
그 쉽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온 식당이 있다. 서울식 추탕 전문점 용금옥이다. 서울의 중심으로 불리는 중구 다동에서 90년간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손님들과 교감을 나눠왔다.
'추탕'은 여름철 지친 기운을 북돋기 위해 누구나 부담없이 찾는 음식이다. 남도식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전북 남원 '추어탕'이 대표적이다. 미꾸라지를 갈아 넣은 터라 생선의 형태를 알 수 없지만 그러려니 하고 먹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서울식 추탕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 조리한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분들은 간혹 기겁하고 손을 내젓기도 한다. 하지만 입에서 살살 녹는 살점의 부드러움과 특유의 감칠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추어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용금옥은 평창동 형제추탕, 동대문 곰보추탕과 함께 서울 추탕 '3대장'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명맥을 잇고 있다. 추탕의 깊은 맛과 오랜 전통의 풍미가 손님들의 오감을 사로잡는 곳이다.
17일 용금옥을 찾았다. 사장 신동민씨는 “코로나로 손님이 많이 줄었다”면서 “장사를 해서 돈 버는 시대는 이제는 지났다”고 말했다. 대체 용금옥은 어떤 곡절을 겪어온 것일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꾸라지 많던 청계천, 할머니가 1932년 창업
용금옥의 발자취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 수원이 고향인 신씨의 할머니 홍기녀(작고)씨가 서울 무교동에서 생계를 위해 차렸다. 신씨는 “과거 청계천에 미꾸라지가 많아서 요리 솜씨 좋은 할머니가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용금옥은 현재 중구 무교동 더익스체인지빌딩(구 코오롱빌딩) 자리에 터를 잡았다.
30년이 지나 1960년대 들어 재개발 붐이 일었다. 용금옥은 문을 닫을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단골들의 성화로 23평 남짓한 지금의 장소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원래 신씨 할머니와 직원들이 쉬거나 잠을 자던 곳이다. 그래서 용금옥 한켠 2층에는 아직도 낡은 다락방이 있다. 신씨는 “재개발 때문에 문을 닫았다가 추탕을 먹고 싶다는 단골들의 전화가 빗발쳐 지금의 장소에서 장사를 재개한 게 벌써 5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정치인, 언론인, 문인 등으로 문전성시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처음 장사를 시작한 무교동과 지금 다동 가게는 직선거리로100m 정도 떨어져 있다. 과거 국회의사당 건물로 쓰였던 현 서울시의회 건물과 주요 언론사, 서울시청 등이 지척에 있어 용금옥에는 정치인과 언론인, 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신문 기자이자 시인인 이용상(작고)씨가 펴낸 ‘용금옥의 시대’라는 책에는 이런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일성 주석이 집권하던 1990년대 초반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가 남북고위급회담을 위해 서울을 찾았을 때 두 번이나 용금옥을 방문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그렇게 90년을 버텼다. 하지만 도심 재개발과 2년간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니만큼 단골이었던 고령층 손님이 확 줄었다. 지금도 하루 100명 정도의 손님이 있지만,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직장 생활을 하다 1997년부터 가게를 이어받은 신씨는 “아무래도 코로나19로 돌아가신 단골 어르신들이 적지 않게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0년대 한옥 양식을 보존한 현재의 용금옥 건물은 2013년 서울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부분 개조도 어렵다. 23평 작은 공간에 많은 손님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한다. 코로나19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5년 내 재개발...통인동 용금옥도 함께 명맥 이어
용금옥 주변 다동 재개발도 한창이다. 그래서 가게 자리를 지키기 쉽지 않다는 게 신씨 판단이다. 신씨는 “지금의 용금옥 자리도 5년 안에는 팔리고 새 건물이 들어서지 않겠느냐”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재개발이 돼도 지금의 자리에 들어선 건물에 용금옥 간판을 걸고 싶다는 게 신씨 바람이다. 그는 “가능하다면 이 자리에 들어선 건물에 깔끔하게 추탕하고 튀김만 파는 용금옥 간판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모듬전과 낙지볶음 등 다른 메뉴도 함께 팔지만 용금옥의 오늘을 있게 한 추탕만으로 승부를 걸어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서울 통인동에도 용금옥이 있다. 100년 추탕의 숨결을 이어갈 또 다른 가게다. 1982년 할머니 홍씨가 돌아가신 뒤 가게는 막내며느리 한정자씨가 이어받았다. 한씨는 1997년 무교동에 분점을 냈다가 이후 통인동에 용금옥을 차려 명맥을 잇고 있다. 된장이 아닌 고춧가루를 기본 양념으로 유부와 각종 버섯이 들어가는 용금옥 추탕 고유의 방식은 같다.
다만 다동 용금옥이 곱창으로 육수를 내는 반면, 통인동 용금옥은 사골 국물을 쓴다. 신씨는 용금옥 추탕에 들어가는 재료는 할아버지 신석숭(작고)씨의 영향이 컸다고 귀띔했다. 그는 “한량으로 전국을 다니시던 할아버지가 싸리버섯 등 여러 재료를 가져와 할머니가 추탕 재료로 이용한 게 지금의 조리법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장사로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다”던 신씨지만 가업을 잇겠다는 의지는 분명해 보였다. 그는 “장사 수완이 있어 보이는 조카가 대를 이어가도록 해볼 생각”이라며 “나중에 내가 죽어 할머니를 만나서도 ‘가게를 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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