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숙 식약처 바이오생약심사부장
이정림 의료기기심사부장 인터뷰]
LDS주사기 업체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
국산 백신 개발에 '비교 임상' 도입 제안도
혁신 아이디어 업계에 먼저 제안하는 등
바이오헬스 산업 견인자 역할에도 눈떠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국민 건강을 위해 늘 긴장하고 있는 수비수와 골키퍼 같은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공격수의 코칭 역할까지 눈을 뜨게 된 거죠.
박인숙 식약처 바이오생약심사부장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식품·의약품·의료기기의 개발부터 시험·허가·유통·사용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전 주기 사이클'을 관리감독하는 '규제 기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마스크, 진단키트, 주사기, 백신, 치료제의 적시 공급을 위해 빡빡한 심사·허가 일정을 수행한 것도 그 본령에 따른 일이었다.
그런데 팬데믹이라는 '가보지 못한 길'을 지나는 동안 식약처의 역할에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다. 식약처가 먼저 혁신 아이디어를 업계에 제시하는 등 한국 바이오헬스 산업을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진단키트, 최소잔여형(LDS)주사기는 식약처의 그런 적극적인 가이드에 의해 탄생했다. 한국 기업이 '백신 후발주자'라는 불이익을 극복할 수 있도록 '비교 임상'이라는 임상시험디자인을 식약처가 제안했다. 규제 기관에서 '규제 서비스' 기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난달 '제품화전략지원단'이라는 임시 기구도 만들었다.
박인숙 바이오생약심사부장과 이정림 의료기기심사부장은 지난 2년 4개월 동안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 있었다. 박 부장은 마스크, 백신, 항체치료제를, 이 부장은 진단키트, LDS주사기 등 코로나19 진단과 인공호흡기, 에크모 등 치료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담당하고 있다. 두 사람을 24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식약처에서 만나 28개월 동안의 소회와 식약처의 비전을 들었다.
15일 만에 만든 진단키트로 집단감염에 발빠른 대응
2020년 1월 20일 코로나19 국내 첫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듬해 백신 접종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 해를 버틸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방역 선진국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진단키트와 마스크 덕분이었다. 식약처가 품질을 관리하는 Korea Filter(KF) 마스크는 2014년부터 이미 시중에 판매되고 있었다. 박 부장은 "국가기관이 의약외품으로 일반인용 마스크를 관리하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문제는 진단키트였다. 신종 유행 감염병을 진단하는 기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국내 첫 진단키트는 그해 2월 4일, 그러니까 첫 감염자 발생 후 15일 만에 나왔다. 코로나19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 키트 생산 역량을 지닌 업계, 이 모든 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들과 식약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장은 이에 더해 "미리 만들어 놨던 긴급사용승인 제도를 이번에 제대로 활용을 했다"고 말했다. 긴급사용승인은 팬데믹 우려로 의료기기를 긴급하게 사용해야 하지만 국내 허가 제품이 부족하거나 없는 경우 허가를 면제해 한시적으로 제조·수입·판매할 수 있는 제도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만들어졌다.
물론 보름 만에 없던 제품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식약처와 질병청은 업계에 필요한 자료들을 먼저 안내했고, 임상시험 기관까지 직접 섭외했다. 이 부장은 "제조 업체가 환자의 검체를 갖고 하는 실험까지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질병청과 함께 임상이 가능한 병원 몇 곳을 직접 섭외했다"고 말했다.
그는 임상 이후 "의료기기심사부의 전 직원이 설 연휴와 주말을 반납해 심사에 달라붙어 긴급사용승인까지 마쳤다"고 회고했다. 진단키트가 빨리 마련된 덕분에 방역당국은 그해 2월 대구, 5월 이태원에서 발생했던 집단감염에 대응할 수 있었다.
마스크 대란 때도 식약처가 발빠르게 움직였다. 대란의 원인은 필터 부족이었다. 해외도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원료 수입이 막혔던 것. 박 부장은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을 받으며 한 업체가 새로운 필터를 개발하면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또 마스크 전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허가 심사에 속도를 냈다. 그 결과 마스크 공급이 신속히 안정돼 마스크가 필요한 경우 어려움 없이 구매할 수 있게 됐다.
LDS주사기 만든 중소기업,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 내
진단키트와 마스크도 중요하지만 팬데믹에 가장 주효한 무기는 백신이었다. 2021년 국산 백신은 아직 개발 중이었고, 해외 수급도 아주 원활하진 않았다. 백신을 한 방울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 식약처가 아이디어를 내 상용화시킨 것이 LDS 주사기다. LDS주사기를 사용하면 5명에게 맞힐 것을 6명까지 맞힐 수 있다.
진단키트 때보다 여건은 더 나빴다. 진단키트는 제조 업체라도 있었지만, 주사기는 국내 업체가 몇 없었다. 이문이 안 남는 탓에 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베트남 등 해외로 공장을 옮겼기 때문이다. 이 부장은 "LDS주사기를 만들 수 있는 설계를 가진 업체를 찾아냈고, 국내외 기준을 알려주며 생산을 독려했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스마트 공장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이 모두 동시에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 결과 국내의 중소 주사기 제조업체는 이제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화이자가 자사 백신에 LDS 주사기 사용을 독려하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기 때문이다. LDS주사기는 현재 미국 등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식약처를 필두로 한 정부가 글로벌 기업을 하나 키워낸 셈이다.
수입 백신을 허가하는 일도 식약처의 몫이다. 문제는 인력이었다. 식약처는 결국 각 부서에 흩어져 있는 백신 심사 유경험자들을 모아 비상 대응 기구를 만들었다. 팀원들은 담당 업무를 하다가도 백신 허가신청이 들어오면 백신 업무를 겸임하는 이중·삼중의 노동을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과중한 업무에도 허가 심사기간은 기존의 180일에서 40일로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업무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심사 절차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비임상(동물 실험), 품질, 임상을 검토하는 팀으로 나누어 각자 담당 업무만 맡도록 했다. 시간단축을 위해 도입이 예정된 백신은 허가신청 전 제약회사로부터 서류를 받아 심사를 시작했다. 동시에 3중 자문단(검증 자문단,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최종 점검위원회)을 운영,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려고 애썼다.
물론 접종 일자를 맞추지 못할까봐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박 부장은 "가장 애간장을 태웠던 시기"로 지난해 7, 8월 모더나 백신 공급이 늦어졌던 때를 꼽았다. 접종 직전 식약처가 직접 실험하며 마지막 검토(국가출하승인)를 해야 하는데, 백신 도입이 늦어질수록 검토기간은 짧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접종 일정에 못 맞출까봐 계속 직원들에게 준비 상황을 체크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모더나가 들어왔을 때 직원들은 박 부장 지시 없이도 시험검체가 들어오자마자 시험을 시작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했고, 접종 일정에 맞춰 국가출하승인 시험을 끝낼 수 있었다.
박 부장은 당시의 긴장감이 떠오르는지 눈시울을 붉히며 "새벽 근무도 마다 않았던 직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험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긴장감을 버텼다며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백신 후발주자' 한국 기업을 위한 '비교임상' 제안도
국산 백신 개발에 '비교임상'을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식약처다. 보통 백신을 개발할 때는 가짜 약과 개발 중인 신약을 접종, 예방 효과를 비교(유효성 임상시험)한다.
박 부장은 그러나 코로나19 백신 후발 주자인 한국엔 이 방법을 적용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미 개발된 백신이 있는데 위급한 상황에서 가짜 약을 투약하는 것 자체가 윤리적 이슈가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백신 접종률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임상 대상을 모집하기도 어려웠다. 이 때문에 한국은 앞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과 신약의 효능을 비교하는 비교임상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비교 임상법을 찾아낸 이후에도 숱한 난관이 남았다. 대조 백신이 필요했으나 국내에 도입된 코로나19 백신 제조사들은 하나같이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 제조사 본사까지 설득한 끝에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대조군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식약처도 세계보건기구(WHO)와 감염병혁신연합(CEPI)에 대조 백신 수급의 필요성과 어려움을 말했고, '현재로선 비교 임상이 가장 적절한 개발 방식'이라는 국제적 공감대를 만들려 노력했다. 박 부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WHO가 주관하는 국제회의에 한 달에 한 번 한국 대표로 참석하고 있다.
그 결과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 중인 백신 3상을 비교임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식약처는 그 결과를 토대로 현재 정식제품 등록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결과는 이르면 다음달 발표된다.
국제적 역량 꾸준히 쌓아 코로나19에 적시 대응
박 부장과 이 부장은 미증유의 사태에도 식약처가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19 이전부터 국제적 수준으로 역량을 강화하려고 꾸준히 노력했던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부장은 국제 기구에 가입하려는 노력이 우리의 역량도 높였다고 했다. 이 부장은 현재 아시아의료기기규제조화회의(AHWP)의 기술위원회 부의장이며, 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 한국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 IMDRF에 가입하기까지는 무려 6년이 걸렸다고 했다.
이 부장은 먼저 아시아에서 최고가 되자는 목표를 잡고, AHWP에서 식약처가 만든 가이드라인과 그에 따라 만들어진 한국 제품을 꾸준히 홍보했다고 했다. 그는 "그 결과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리더십을 유지하게 됐고, 이 역량을 바탕으로 IMDRF에 문을 두드렸더니 10번째 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자체적으로 직원 재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박 부장은 "허가·심사 직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교육 전담 기관을 지정했고, 분야·경력에 따른 교육 프로그램 이수 기준도 정했다"고 말했다. 최근 1년 미만의 심사자들을 대상으로 역량 테스트도 했다.
"코로나19 거치며 역량 늘어", "국산 백신 성공해야 한단 사명감"
지난 2년여의 소회를 묻자 이 부장은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식약처도 지난 2, 3년을 거치며 역량이 늘었고 앞으로도 무엇이 필요한지 예측할 수 있게 됐다"며 "직원들도 자긍심, 자부심,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중도 포기하는 사례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백신 담당자 입장에서 반드시 국산 백신이 성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코로나19를 거치며 자신감도, 새로운 비전도 얻었지만 인력난은 여전한 숙제다. 박 부장은 "식약처 심사 인력의 숫자가 미국 FDA의 35분의 1이고, 헬스 캐나다의 5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장은 "체외 진단기의 경우 업체는 800여 개인데 심사하고 서류를 보는 사람은 4명이다. 1인당 약 200개 업체를 상대해야 하는 셈"이라며 "전문성을 키우더라도 다양한 회사의 다양한 제품을 개발 단계마다 상담해 주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외 제품들은 허가 심사 우선순위에서 밀려 법정기한이 다 되어서야 겨우 심사를 완료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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