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방역 비판했지만 ... '중대본이 최종 결정' 유지
새 정부의 ‘과학방역’ 방침에 따라 질병관리청이 슈퍼컴퓨터 도입을 추진한다. 감염병 유행을 슈퍼컴퓨터로 정확히 예측해 방역 정책 수립의 근거로 삼기 위해서다.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기구가 과학적 근거에 따른 정책 제언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절차도 만든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26일 오후 충북 청주시 본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같은 내용의 과학적 방역 체계 구축 방향과 추진 과제들을 보고했다. 윤 대통령은 “데이터에 기반한 전문가 중심 과학방역 체계를 조속히 마련할 것”을 당부하며 “국민 생명·건강 보호와 불편 없는 경제 활동의 균형을 과학방역이 잡아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반기 구입해 내년 초 이관 완료
질병청은 올 하반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슈퍼컴퓨터를 구입해 내년 초 이관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KIST와 함께 참여하고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144억 원 규모의 ‘인공지능(AI) 융합 신규 감염병 대응시스템 사업’의 일환이다. 국민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방역 조치를 결정하고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선 감염병 유행 양상을 제대로 분석·예측해야 하는데, 슈퍼컴퓨터가 있으면 더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질병청은 자체 분석뿐 아니라 9개 민간 연구진과 공동 분석한 결과를 종합해 유행 예측 결과를 발표해왔다. 질병청은 앞으로 코로나19 재유행 때도 이 같은 체계는 유지하면서,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자체 역량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슈퍼컴퓨터 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은 별도로 확보 중이다.
과학방역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데이터도 확보한다. 이미 착수한 코로나19 항체양성률 조사 외에 후유증 통계를 수집하고, 하수 시스템으로 감염병을 감시할 수 있는 근거 데이터를 모으기로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같은 산하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융합해 방역 정책 수립에 유용한 새로운 정보도 창출한다.
자문기구가 제언하고 중대본이 결정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정책 제언을 하는 독립된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기구’ 설치도 당초 계획대로 준비 중이다. 자문기구 위원은 대표성과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자격요건을 적용하고, 이들의 제언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보건의료 외에 경제·사회·문화 전문가도 위원으로 둘 예정이다. 자문기구의 제언은 방역정책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보고되고, 중대본은 소관 부처와 이를 검토해 정책을 최종 결정하게 된다.
사실 문재인 정부 때도 민간 전문가로 이뤄진 일상회복지원위원회가 운영됐고, 여기서 나온 의견을 토대로 중대본이 방역 정책을 최종 결정했다. 방역 거버넌스가 큰 틀에선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정통령 질병청 중앙방역대책본부 총괄조정팀장은 “일상회복지원위는 분과별로 나뉘어 이해충돌과 논쟁이 발생하는 등 아쉬움이 있었지만, 새 자문기구는 전문가들의 ‘합의된’ 의견을 중대본에 제시하게 될 것”이라며 “기본 거버넌스 체계는 유사해도 운영 측면에선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새 정부 과학방역의 핵심은 결국 △유행 예측 고도화 △다양한 데이터 확보 △자문기구 운영 방식 변화로 요약된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선 “새롭거나 특별한 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의대 교수는 “전 정부 정책을 정치방역이라고 공격하기 위해 과학방역을 내세운다면 오히려 퇴행하게 될 것”이라며 “방역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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