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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국 전력을 망가뜨리나?

입력
2022.05.31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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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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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한국도로공사가 지금부터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운송사업을 직접 시행할 테니 다른 사업자들은 진입하게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가상해보자. 근거는 도로사업이 공공재로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도로운송을 민간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도로사업과 도로를 이용하는 운송사업을 구분하지 않는 오류에서 출발했지만, 운송비를 낮춰 물가를 안정시키고 운송업 종사자들을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하여 고용안정성도 높인다는 생각에 정부가 이 제도를 실제로 시행하게 되었다고 하자. 도로공사는 운송요금을 원가 이하로 대폭 낮추고 동시에 운송업 종사자들을 직고용하면서 고객과 직원이 모두 만족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운송사업에서 적자가 누적되고 도로공사의 재무상태는 점차 악화된다. 운송요금의 결정에 정부와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요금을 다시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급기야 최근처럼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도로공사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도로공사는 당장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자산을 매각하고 신규도로 건설 및 도로 유지보수 지출을 줄인다.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 시대에 맞추어 전국의 고속도로를 업그레이드해야 하지만, 그런 투자는 엄두도 못 낸다. 이렇게 십수 년이 지나면 경제성장의 상징이던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는 후진적 인프라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이런 황당한 시나리오는 현실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도로공사는 '도로 및 관련시설 운영업'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실행하고 있고 재무상태도 건전하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우수한 고속도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전력산업이다. 현대 전력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국을 하나의 계통으로 연결하는 송배전망이다. 수천 개의 발전소들과 수천만 호의 전기소비자들을 촘촘히 연결하여 수십 만 볼트의 초고압에서 220볼트의 주택용 전기까지 끊김 없이 전달해 주는 핵심적 인프라이다. 이 송배전망의 건설과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기관이 한국전력공사이다. 당연히 송배전 사업은 정부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 독점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송배전사업을 민간 자율에 맡겨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송배전망을 이용하여 전력을 사고파는 전력유통업까지 한국전력이 독점한다는 사실이다. 도로사업과 운송사업이 별개이듯이 송배전사업과 전력유통사업은 별개의 사업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OECD 국가들은 송배전사업은 규제하의 독점으로 두고 발전과 유통은 경쟁에 개방하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송배전사업과 전력유통을 하나로 묶어 놓고 양쪽을 모두 한전이 독점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전력판매에서 발생한 엄청난 적자로 인해 한국전력이 부실해지고 설비투자가 지체되면서 송배전망 자체가 낙후될 위험에 처해 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 송배전망 업그레이드에 대규모 투자가 시급한 시기에 한국전력이 판매적자를 메우기 위해 돈 되는 것을 모조리 내다 팔겠다는 뉴스를 보면서, 한국 전력산업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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