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이탈리아 공화국의 날
히틀러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승전국이었다. 패전으로 (제2)제국이 무너진 뒤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됐고, 이탈리아는 사보이 왕가의 통치가 이어졌다.
1932년 총선에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 나치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힌덴부르크 당시 대통령은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고, 히틀러는 1934년 6월 '장검의 밤'을 거치며 수상을 겸한 '퓌러(Führer)' 즉 총통에 취임해 전권위임법으로 제3제국을 열었다. 나치당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지도자(Ein Volk, Ein Reich, Ein Führer)'란 구호로, 아리안 민족 영광의 회복을 선언했다.
반면 이탈리아는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에 비해 영토 등 보상은 거의 얻지 못했다. 1922년 검은셔츠단을 앞세운 쿠데타(이른바 '로마 진군')로 자칭 '두체(Duce, 우두머리, 지도자)'가 된 국가파시스트당 무솔리니는, 전후 실의에 빠진 이탈리아 시민들에게 '옛 로마제국 영광의 재현'을 부르짖으며 자신을 "믿고 따르고 싸우라(Credere, Obbedire, Combattere)"고 웅변했다.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사보이 왕가는 무솔리니 권력과 2차 세계대전 패전 직전까지 공생했다.
전후 독일이 동서 분단 공화국 체제로 전환하는 동안, 이탈리아는 공산당을 비롯한 연합국민해방위원회가 구성돼 임시정부 역할을 대행했다. 위원회가 맨 먼저 한 일은 왕정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묻는 거였다. 1946년 6월 2일, 왕정과 공화정을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국민은 공화제(54.3%)를 선택했다. 이집트로 망명한 아버지에 이어 왕위에 오른 움베르토 2세는 재임 한 달여 만에 포르투갈로 망명해야 했고, 공화국 제헌의회는 왕실 구성원의 이탈리아 입국을 금지(2002년 허용)했다. 그리고 6월 2일을 공화국의 날로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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