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주요 건축물]
'성소피아 대성당' 등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 총 7곳
우크라 바로크 건축의 정수 '마린스키 궁전'
소비에트 연방 시절 우크라이나 수도였던 '하르키우'
"당장 전쟁 안 멈추면 우크라 역사 한 조각 사라져"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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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정체성과 문화를 말살시키는 것이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우크라이나를 없애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유리 셰브추크 미국 컬럼비아대 사전 편찬자
양파를 닮은 황금 돔과 화려하고 웅장한 바로크 궁전, 소비에트 최초의 마천루까지. 우크라이나는 유럽 내 숨겨진 ‘건축의 보고(寶庫)’다. 유럽 중앙의 지정학적 위치 탓에 거친 질곡의 역사를 겪었지만 동서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다양한 건축문화가 꽃피웠다. 하지만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우크라이나 건축물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될 위기에 처했다. 유네스코는 침공 직후 성명에서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문화적 자산이 파괴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가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우크라이나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7곳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잠정 문화유산도 17곳이다. 현재까지 유네스코가 공식 확인한 러시아 침공으로 완전 파괴된 우크라이나 문화유산은 120건이 넘는다.
‘제2의 콘스탄티노플’ 키이우
수도 키이우의 ‘성소피아 대성당’은 개전 초기 쏟아진 러시아군의 포격에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흰 외벽과 초록빛 지붕 위로 13개의 황금 돔이 얹어진 이 성당은 11세기 초 동방정교를 받아들였던 볼로디미르(958~1015) 대공의 지시로 1011년 착공된 후 야로슬라프(978~1054) 대공 통치 시절인 1037년쯤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 비잔틴 건축의 걸작인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성당’을 본떠 지어졌지만 구조와 장식 면에서 훨씬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성당 내부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프레스코화와 선명한 모자이크 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으로 채워져 있다. 키이우 주재 교황청 대사관은 침공 직후 러시아군에 평화를 호소하며 대성당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동방정교가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는 데 큰 역할을 한 대성당은 1990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대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동굴 수도원 단지(페체르스크 라브라)도 당시 융성했던 동방정교를 대변하는 유적지다. 1051년 완공된 단지는 드니프로 강을 따라 28만㎡(약 8만4,700평)에 달한다. 4층 종탑과 대주교 관사, 수도원 등 여러 부속 건물들 하나하나 눈길을 끈다. 올렌카 페브니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대성당과 수도원 단지는 우크라이나의 독특한 정체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를 파괴하려는 러시아군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바로크의 정수’ 마린스키 궁전
17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바로크 건축도 우크라이나에서 다양한 양식과 접목하며 특유의 바로크 건축으로 발전했다. 화려한 장식과 타원형 계단 등 복잡한 구조가 특징인 바로크 건축은 우크라이나에서 통일된 색상과 대칭적 구조 등을 통해 안정감이 더해졌다. 전쟁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영상 연설 배경으로 종종 등장하는 ‘마린스키 궁전’은 우크라이나 바로크 양식의 수작으로 꼽힌다. 연한 청록색 외벽과 높은 창문, 좌우 대칭적 구조와 타원형 계단 등이 특징이다.
현재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는 궁전은 키이우의 풍경에 반한 제정 러시아 황실이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1752년 지어졌다. 당대 최고의 바로크 건축가이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을 설계한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1700-1771)의 작품이다. 궁전은 1870년 대형 화재로,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됐다가 5년 전 원형을 살려 재건됐다.
‘구성주의 건축 실험장’ 하르키우
러시아군의 집중 포화가 쏟아진 북동부 제2도시 하르키우는 우크라이나 현대 건축을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도시다. 하르키우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인 1917~1934년 우크라이나의 수도였다. 당시 관공서와 박물관, 극장 등 사회기반시설이 줄줄이 들어섰고, 이들은 20세기 초 산업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시도했던 '구성주의 건축'의 실험장이 됐다.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1928년 하르키우 중심부에 당시 정부 청사로 지어진 ‘데르즈프롬(Derzhprom)’이다. 크게 3개 부분으로 구획되며 건물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가 완벽한 대칭 구조를 이룬다. 유리와 철근 콘크리트만을 사용해 구조를 강조했다. 건축면적만 약 6만㎡(1만8,150평)로 당시 세계 최대 단일 규모 건축물이었다. 높이 최대 63m의 14층으로 완공 당시 ‘소비에트 최초의 마천루’라 불리기도 했다.
데르즈프롬과 함께 자유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우크라이나 최초 대학인 하르키우 국립대학 건물들도 장식은 최대한 배제된 채 실용성을 강조한 구성주의 양식을 따른다. 이 밖에 20세기 초 산업화에 발맞춰 지었던 트랙터 공장 노동자를 위한 기숙시설, 오페라와 발레 극장 등 역사적 의미가 깊은 건축물이 많이 있다.
영국 가디언은 "하르키우 건축에서 소비에트 연방 시절 정부를 구성하고, 산업을 발전시키며, 현대 사회와 생활 양식에 맞는 주거 문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유네스코는 하르키우 주요 건축물 68개 중 27개가 손상, 파괴됐다고 전했다.
개전 100일을 넘기면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미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가 입은 물리적 피해가 약 600억 달러(74조2,000억 원)을 넘어섰고, 재건 비용에만 5,000억 달러(668조 원)를 넘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무형의 피해는 추산할 수 없다.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국장은 "당장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역사의 한 조각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리 셰브추크 미국 컬럼비아대 사전 편찬자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정체성과 문화를 말살시키는 것이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우크라이나를 없애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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