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엄마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아기처럼 변해갈 엄마를 어떤 마음으로 지켜봐야 할지 막막합니다.
저는 30대 요리사입니다. 학위를 따고 경력을 만들어 대학 교단에 서겠다는 꿈을 갖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박사 과정 수료를 1년 남긴 지난해 초, 엄마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됐습니다.
다른 가족으로는 아버지와 언니가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와 엄마는 남남이라고 해도 될 만큼 사이가 좋지 않고 언니는 결혼해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서울로 엄마를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출근한 사이 엄마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앓던 외할머니가 실종됐다가 객사하셨기 때문에 엄마가 없어지자 저도 멘탈이 나갔습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되겠다고 생각해 지난해 여름, 서울 생활을 접고 본가로 내려왔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제가 필요할 때 곁에 없었어요. 아버지는 대학에서 교직 생활을 오래했는데 타 지역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셨고 어머니는 학원을 운영하셨습니다. 늘 너무 바쁘셔서 부모님의 부재를 크게 느끼며 자랐습니다. 두 분 다 운동회, 졸업식에 한 번도 오신 적이 없어요. 우유 값이 밀리거나 방과후교실 레슨비가 밀릴 때가 많았는데, 그게 항상 부끄러웠습니다. 누구도 살림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집은 쓰레기 더미라고 해도 될 만큼 엉망이었습니다. 깨끗한 교복을 입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어요.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어요. 두 분이 싸운 뒤 엄마가 집에 한 동안 안 들어오고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집에 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저와 세 살 터울 언니 둘이서만 집에 있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부모님 직업 때문에 겉 보기에 유복해 보일 뿐,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빚을 져서 월급은 항상 모자랐고 엄마도 아버지에게 평생 생활비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상처 많던 시기를 지나, 이제 내 인생 열심히 살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병에 걸렸습니다. 제가 캐나다에 취업했을 때 함께 나와 50대에 어학연수를 했을 만큼 당당했던 엄마는 지금 혼자서 생활이 불가능해요. 기본적인 위생 관리도 안 되고 가장 중요한 약 복용이 되지 않습니다. 본가에 내려왔더니 음식물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구더기가 생겨 있었습니다. 엄마는 곰팡이가 펴 있는 음식을 걷어내고 드시거나 '씻으면 괜찮다'며 쌀벌레가 가득한 쌀로 밥을 해 먹고 있더라고요.
간병한 지 반 년쯤 지나서부터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엄마와의 갈등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를 안쓰러워 했던 제 마음도 점점 원망으로 바뀌었어요. 제가 "엄마, 이건 안 돼"라고 입버릇처럼 했던 말들이 본인을 옥죄인다고 생각했을까요. 엄마는 저를 향해 물건을 집어 던지며 "기생충 같은 년", "편하게 살고 싶은데 왜 여기 와서 지랄이야"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저 역시 참다 못해 패륜아처럼 엄마에게 욕을 한 적도 있고요. 요즘은 증상이 더 심해져서 등산을 가는데 한복을 입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거나 화분에 음식물 쓰레기를 주기도 합니다. 제가 말리면 때리기까지 하세요.
이제 시작이니 견뎌 보려 마음을 다잡지만 힘듭니다. 제 모든 커리어를 버리고 왔다는 생각이 들면 억울하고, 더 이상 내 상처 많은 과거나 마음을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할 엄마를 생각하면 우울해집니다. 엄마가 건강했을 때 진정 어린 사과를 받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덜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답을 구한다기 보다는 제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할 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임선영(가명·31·요리사)
선영씨, 매사 자신만만했던 엄마가 병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식으로서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요. 또 한편으로는 이제 좀 잘 살아보려 하는데 엄마가 내 앞 길을 막는구나, 억울한 마음도 들 것 같아요. 불완전한 인간이니까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선영씨 요청처럼 제가 이 자리에서 솔루션을 제시하기 보다는 당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선영씨는 엄마의 간병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지금까지 이룬 것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과감히 버리고 엄마 곁을 선택했지요. 엄마를 위해 희생했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아요. 물론 고민은 있었겠지만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당신처럼 행동하고 결정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러면 선영씨는 엄마를 위해 왜 이토록 많은 것을 희생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선영씨가 워낙 '효녀'라서 그런 걸까요.
정신분석학에 '허구의 독립(pseudo independenc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굉장히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내면 한 구석에 자리한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한 의존적 욕구를 끊임없이 채우려는 심리이지요. 어린 시절 여러 이유로 부모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경우, 어른이 되어 부모를 과도하게 봉양한다면 내면에 이런 결핍이 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자라면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독립적으로 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인이 돼서도 부모 곁을 맴돌면서 자기가 부모에게 굉장히 소중한 대상이고, 부모한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 받고 싶어 해요. 그 과정을 통해 내면의 깊은 구멍을 메우려고 하지요. 제가 보기에는 선영씨도 엄마를 돌보면서 자신이 보살핌을 받지 못해 생긴 결핍을 메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엄마의 간병을 혼자 떠안기로 결정하지요.
사연을 읽어보면, 선영씨는 마음이 따뜻하고 인간의 상처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에요.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를 먼저 내세우지 않는 이타적인 면이 있고요. 언니, 아버지의 상황도 잘 이해하니까 엄마의 간병에 대해 별다른 요구를 못하고 있을 거예요. 또 외할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객사하셨으니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엄마를 혼자 둘 수 없었을 겁니다.
세간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효녀, 효자라고 표현하지요. 물론 효녀가 맞긴 하지만, 정신의학적 관점으로 보면 엄마를 향한 이런 헌신에는 자기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결핍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년 시절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관계가 끈끈할수록 성인이 된 이후에 부모로부터 편안하게 독립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직접 돌보지 말고 병원이나 요양원에 모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최근에 인식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병원이나 요양원에 모시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지요. 자식들도 죄책감을 가지고요. 심정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은 결코 내 생각만 해서 부모를 남에게 맡기는 게 아니에요. 환자를 위해 보다 안전한 공간에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병의 경과를 늦추기 위한 일입니다. 특히 치매는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됩니다. 병이 진행될수록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거예요.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환자를 간병하는 건 다른 문제거든요. 가족 관계에서는 아무리 엄마가 아파서 그렇다는 것을 알더라도, 나에게 욕하고 화를 내면 감정적으로 훨씬 힘들지요. 선영씨는 간병을 위해 포기한 것도 많다 보니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내가 이럴려고 엄마 옆에 왔나, 하는 마음이 들어 더욱더 억울하고 괴롭겠지요. 하지만 의료진은 환자로 대하고 증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영향을 덜 받습니다.
어머니와 좋은 기억을 조금 더 쌓기 위해서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해 보여요. 치매 환자와 하루 종일 붙어 생활하다 보면,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소중하게 여겼던 일을 하고 경제 활동을 하면서 간병 비용을 대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좋은 마음으로 어머니를 찾아뵙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본인과 언니, 아버지와 모여 간병과 관련한 비용이나 역할을 분담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논해 보세요. 가족은 언제나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거든요. 그것을 나눠야 나중에라도 가족 구성원간 마음의 앙금이 남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엄마로부터 받았던 어린 시절 상처는 반드시 사과를 받는 것만이 해결 방법은 아닙니다. 어머니 상태가 비교적 좋을 때, 그 앞에서 당신 상처를 꺼내 이야기해 보세요. 어머니가 잠들어 있을 때도 좋습니다. 자기가 너무 고통스럽고 마음이 아팠던 그 지점으로 돌아가서 그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거든요. 자기 상처의 근원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힘이 됩니다.
자식을 키울 때 부모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최선'은 내가 안정감을 잃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일 거예요. 이런 자세로 아이를 키우듯이 아픈 가족의 간병도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충 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정도까지는 오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선을 지키는 것이지요. 그 선을 넘는 부분은 다른 가족 구성원이나 제도의 도움을 받아서 메우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약하다든가 나쁜 사람이라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과도하게 책임을 떠 안거나, 버거워도 억지로 참으면 마음 속에 원망과 분노가 생깁니다. 오래 못 가요. 결국에는 그 부정적인 마음이 자기 자신을 찌르게 되지요. 우리는 신이 아니고, 인간입니다. 그 점을 인정해야 좀 더 건강한 마음으로 어머니의 여생을 함께 할 수 있을 거예요.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이 어디까지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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