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이용자 한해 5000만명 달해
신규 골프장 65% 환경 약속 안 지켜
보존 약속 안 지켜도 제재 극히 미약
약속 무시하고 공사한 업체 더 이익
‘서울 도심 속에 있는 유일한 친환경 대중형 골프장.’
서울 강서구 ‘인서울27 골프클럽’의 홍보 문구다. 인서울27은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아 성수기엔 매일 500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최근엔 2030세대의 골프인구가 늘어나면서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지난해 매출액은 240억 원으로 2019년 개장 후 첫 흑자다. 전국 골프장 방문객이 사상 처음으로 5,000만 명을 넘은 해였다.
지난달 18일 방문한 인서울27 역시 방문객으로 붐볐다. 비가 오는 평일 아침이었음에도 주차장이 가득 찼다. 그러나 이 '친환경' 골프장은 환경 보호 협의를 일부분 이행하지 않아 준공 승인을 받지 못한 채 임시 영업을 하고 있다.
골프장을 지으려면 착공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받고 환경 보호 대책을 지역 환경청과 협의해야 하는데, 협의 내용을 일부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인서울27의 부지는 김포공항 습지가 있던 곳으로 독수리·금개구리·맹꽁이 등 법정보호종만 40종이 서식하는 생태습지였다.
한국일보는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이행하지 않아 논란이 이는 골프장을 방문해 골프 열풍 이면의 환경 문제를 들여다봤다.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이행하지 않은 채 영업을 이어가는 건 인서울27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이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에 의뢰해 환경부로부터 최근 5년간 신설된 골프장의 환경영향평가 협의 이행 현황을 받아본 결과, 골프장 26곳 중 협의를 이행한 골프장은 9곳에 불과했다. 골프장의 65.3%가량이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환경청에 고발당해도 멀쩡히 영업
환경보호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인서울27은 예약조차 어려운 ‘인기 클럽’으로 3년째 멀쩡히 운영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떻게 된 걸까.
인서울27의 내부 코스를 둘러보니 마치 자연 속을 거니는 기분이 들었다. 빗물을 머금은 잔디밭 사이로 풀 내음이 났고, 골프장을 짓기 전 보존해 둔 습지도 곳곳에 보였다. 방문객들도 너른 잔디밭 위에서 게임을 즐겼다.
그러나 이걸로 ‘친환경 골프장’이라는 타이틀은 충분하지 않다. 업체는 골프장을 조성하는 대가로 약 25만㎡의 인공 녹지를 조성해주기로 했는데 지키지 않았다. 인공 녹지가 골프장 면적(약 99만㎡)의 4분의 1 규모였는데도 그랬다.
지난해 12월에는 농민들의 요구로 배수로 공사를 하던 도중 멸종위기종 2급인 금개구리 서식지가 나왔다. 금개구리 서식지 보호는 환경영향평가상의 협의 사안이라서 한강유역환경청이 ‘보호 대책을 마련하라’고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업체는 배수로 공사를 강행해 환경청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골프장 관계자는 “대체 녹지는 대부분 조성을 완료 했지만, 대상 부지에 불법 폐기물이 쌓여있어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진행하지 못한 것뿐”이라며 "해당 폐기물에 대해 소송이 제기된 상태라 재판이 끝내기 전에 임의로 치울 수도 없었다"고 했다. 또 “배수로 공사는 골프장 조성 후 습지가 사라져 침수 피해가 잇따른다는 농민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착공 허가의 전제가 된 협의 내용을 지키지 않고도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환경 보존 약속’ 안 지키면 그만
환경영향평가는 골프장 건설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환경파괴를 조사하고 대책을 협의하는 제도다. 골프장은 대부분 산이나 숲의 나무를 잘라 만들기 때문에 서식지 파괴와 수목 훼손 우려가 크다. 또 잔디를 키우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지하수가 고갈되거나 농약에 오염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환경부는 사업자가 민간 환경업체를 선정해 골프장 공사의 환경영향을 평가하도록 하고, 이를 토대로 각 지역 환경청이 사업자에게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사업자가 이에 응하면 공사 허가가 난다.
공사가 시작된 이후엔 매년 사후환경영향평가를 받아 앞서 협의한 대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을 받아야 한다. 나무를 잘라 골프장을 짓는 순간 환경 파괴는 필연적인 수순이지만, 환경영향평가는 피해를 그나마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 조치인 셈이다.
그러나 골프장이 진행한 사후환경영향조사를 보면 협의 내용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법을 위반한다 하더라도 강제성 없는 이행명령이나 수백만 원대 과태료 처분만 받으면 별다른 제약 없이 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이행하지 않은 골프장 17곳 중 과태료 처분을 받거나 고발을 당한 곳은 14곳뿐이었다. 나머지 3곳은 이행명령 처분만 받았다. 환경부가 공개한 과태료 금액은 최대 1,000만 원에 그쳤다. 한해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골프장 입장에서는 값싸고 빠르게 골프장을 짓고 과태료를 낸 다음 영업을 이어가면 그만인 것이다.
관련 법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대 2,000만 원의 과태료’를 규정하고 있고 환경 파괴가 심할 경우 ‘공사중지’ 명령도 할 수 있지만 실제 명령이 내려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원주환경청 관계자는 “공사중지 명령은 급박하고 심각한 환경 파괴가 확인될 때에만 내려진다”고 했다.
김동언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은 “인서울27 역시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던 김포공항 습지를 개발해 많은 동물들이 피해를 본 사례”라며 “법정보호종 보호를 위해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했지만, 사업자가 지키지 않아도 구속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업체들의 약속 미이행에 대해, 환경부는 “실효성 증진을 위해 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생태 1등급 부지에도 골프장 허가
이렇다 보니 환경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에도 거리낌없이 골프장 건설이 추진된다. 2018년 공사를 시작한 강원 원주의 여산골프장은 부지 중 11%가 ‘생태·자연도 1등급 권역’이다. 이 권역은 "멸종위기 동·식물의 주된 서식지"로, 전체 3개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에 해당한다.
여산골프장 부지는 멸종위기 2급인 하늘다람쥐와 삵이 서식하고 있어서 1등급 권역이 됐다. 당시 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한 한국환경연구원은 “골프장 입지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원주환경청은 해당 부지에 공사를 허가했다. 골프장 사업자가 “하늘다람쥐가 이동할 시간을 두고 공사를 진행하겠다”며 단계적 벌목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원주환경청 관계자는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은 보존해야 하는 곳은 맞지만 개발이 아예 금지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업체는 단계적 벌목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전체 부지를 4개 구역으로 나눠 차례대로 벌목을 하기로 했는데, 지난 1월 2단계 벌목 부지를 건너뛰고 3단계 부지를 공사한 것이다. 실제 지난달 9일 방문한 골프장 부지는 산의 상당부분이 흉하게 파여나가 있었다.
단계적 벌목을 어길 경우 서식지를 옮길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야생동물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이승현 주민공동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적발해 원주시에 신고했고, 시는 주민 신고를 받은 후에야 부랴부랴 업체에 공사 중단 명령을 내렸다.
업체는 “공사 부지 중 시 소유지가 있어서 그 땅을 건너뛰고 벌목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승현 국장은 “생태 보전을 위해 사업자 본인들이 마련한 대책인데도 지키지 않았다”며 “환경청은 대처가 늦은 만큼 투명하게 무단 벌목으로 인한 환경 피해를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업체는 벌목을 제외한 나머지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골프장 하나로 사라진 동물만 28종
엄격한 관리 없이 진행되는 공사에 피해를 입는 건 부지에 거주하던 야생동물과 인근 주민들이다. 동물들은 서식지를 잃고 개체수가 줄어들고, 일부는 주변 마을로 밀려난다. 습지가 파괴돼 주민들은 침수 문제로 고통받기도 한다.
인서울27의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보면, 골프장 부지에서는 공사 전후 확인된 것만 28종의 동물이 사라졌다. 2015년 조사 당시 △포유류 9종 △조류 71종 △양서·파충류 11종 △어류 12종이 발견됐다.
그러나 2020년 이후엔 각각 △6종 △54종 △8종 △7종으로 줄어들었다. 곤충류만 96종에서 108종으로 늘었다. 특히 멸종위기종인 수원청개구리는 공사가 시작된 2016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 다만 인서울27 측은 "골프장 부지에 생태 가치가 있는 습지 지역은 100% 보전을 했다"며 "현재는 생물 종이 더 늘어났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주민 김상필(71)씨는 "골프장 조성 후 맹꽁이·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밭 인근에 많이 등장한다"며 "서식지를 잃어 마을로 내려온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렇게 5년간 신설된 골프장 26곳이 차지하는 면적은 25.14k㎡에 달한다. 여의도 면적의 약 8.6배다. 26곳 중 25곳이 임야에 지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생태 환경이 파괴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잘려나간 나무는 보고된 것만 158만9,695그루인데, 이는 1년간 탄소 약 1만4,000톤을 흡수할 수 있는 양이다.
주변 농가 침수, 주민들도 고통
게다가 인서울27 인근에서는 저류지(빗물을 저장해 홍수를 방지하는 시설) 역할을 하던 습지가 파괴되어 농민들이 침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에 지난 1월 골프장 사업자가 부랴부랴 배수 시설을 설치하려 했으나 공사 장소에서 금개구리 서식지가 발견된 것이 공사가 중단된 배경이다.
골프장 측은 "침수 피해는 골프장 조성 전에 있었던 것이고 배수로는 환경 당국 요청으로 그냥 지어준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입을 모아 "골프장 조성 이후 침수 문제가 늘었다"고 말하고 있다.
주민 이인환(80)씨는 "골프장을 지은 후 침수 피해가 늘어나 지난해에도 참깨 농사를 다 망쳤다"며 "농지에 흙을 쌓아 땅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김상필씨도 "침수 탓에 참깨밭을 물에 잠겨도 먹을 수 있는 콩밭으로 바꿨다"고 했다.
침수 피해가 이어지자 수십 년간 금개구리와 공존하던 주민들도 “서식지를 파괴하더라도 배수로를 건설해야 한다”며 환경 당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김동언 팀장은 “환경 보존 지역에서 진행되는 골프장 공사는 원형을 아무리 잘 보존한다 하더라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수익성을 위해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행위가 정당한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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