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매일 버리는 쓰레기지만 누군가는 그 쓰레기를 통해 살아간다. 쓰레기는 폐기물 그 이상, 사회의 거울이고 그림자다. 도시빈곤문제를 연구해온 사회학자 소준철 박사가 쓰레기 안에 담긴 우리의 삶, 공간, 역사를 추적한다.
<4> ‘줍깅’의 두 유형
50년 전의 경고
1970년대는 환경 문제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선진국은 산업의 발전과 이로 인한 환경 문제를 인식하였고,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자각했다. 잘 알려진 건 1972년 로마클럽이 낸 <성장의 한계> 보고서와 MIT의 미래예측모델 ‘월드 원’을 통한 예측이다. 주된 내용은 2020년에는 삶의 질이 악화되고, 2040년에는 문명생활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2021년 6월, 가야 헤링턴(Gaya Herrington)은 <성장의 한계>의 틀에 맞춰 1970년과 2000년대를 비교한 연구를 내놓았다. 결과는 유사했다.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은 어려우며, 현재의 생산이 지속되면 2040년에는 문명의 붕괴가 시작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 양상은 달랐다. 1970년대에는 산성비를 비롯한 대기오염 문제, 대기의 오존층 파괴, 저개발 국가의 수질 문제를 지적하고 이로 인한 위기를 예측했다면, 이제는 곡물 생산의 증가, 온실가스 억제와 생태계 보존 사이의 불균형으로 발생한 온실효과 문제, 제어불가능할 정도로 늘어난 쓰레기로 인한 자연과 도시의 파괴로 그 수준이 확장됐다.
공중의 활동, ‘줍깅’
2018년의 폐플라스틱 대란과 2020년부터 이어진 플라스틱 팬데믹은 사람들에게 쓰레기 문제가 일상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 무엇보다 일상생활에서의 구체적인 변화를 고민하는 개인이 늘어났다. 특히 제로웨이스트와 함께 ‘플로깅’ 혹은 ‘줍깅'(줍기와 영어 '조깅'을 합친 말)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실천방식으로 유명해졌다. 플로깅(plo-gging)은 ‘이삭을 줍는다'는 뜻인 스웨덴어(plocka upp)와 ‘뜀박질’을 뜻하는 영어(jogging)이 더해진 말로, 걷거나 뛰며 쓰레기를 줍는 환경보호 활동을 말한다. 자발적으로 플로깅과 줍깅을 하며, 쓰레기 없는 삶을 고민하는 개인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공중(public)으로 등장했다.
새로운 유형의 움직임도 시작됐다. 그중에서도 ‘와이퍼스(Wiper.th)’의 사례는 무척 흥미롭다. 네 명으로 시작했던 채팅방에 약 600명의 사람이 함께하고, 전국의 ‘줍깅' 정보가 공유되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만들었다. 이들뿐 아니라 웹에서 ‘줍깅' 소식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는 물리적으로 동일한 장소와 시간에 모여 있을 뿐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군중'을 비판하면서, 사회적인 사안에 대한 의견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의 집합체를 ‘공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들의 사적인 대화가 다수의 사람들의 대화가 될 때 사회의 여론이 만들어지며, 사람들은 함께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문명적인 공중이 늘어나면, 일방적이고 계층화된 사회에서 상호적이고 평등한 사회로 변화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개인들이 쓰레기 문제에 대해 함께 사유하고 대처한다면 쓰레기 문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늘어나리라 기대할 수 있다.
그들의 그린워싱
그러나 개인의 역할만으로는 쓰레기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훌륭한 공중이 등장하더라도 국가와 기업의 계획과 노력이 없으면 해결 가능성은 낮아진다. 이러한 우려가 괜한 것은 아니다. 지난 5일, 윤석열 대통령이 반포한강공원에서 열린 ‘줍깅으로 감탄해'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국가안보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참석으로 오지 못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줍깅' 행사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대통령이나 환경부와 같은 행정부, 서울시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의 ‘줍깅 권하기'는 당혹스럽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시절에 AI기술을 활용한 재활용품 수거와 보상액 조정, 매립과 소각 중심의 처리에서 열분해 소각 중심으로의 전환이 발표되긴 했지만, 환경 관련 핵심 계획인 탈원전 정책에 비해서는 구체적 내용이 발표된 적이 없다. 행정부가 해야 할 일은 ‘줍깅'에 대한 인식 확산보다는 생산자책임 재활용제도의 강화, 폐기물 불법처리에 대한 대책처럼 폐기물 절감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KT&G가 생산하는 담배의 꽁초 쓰레기에 대한 문제가 뜨겁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나 와이퍼스를 비롯한 여러 환경단체들은 회원들의 플로깅를 통해 담배꽁초를 수거하고 이를 수차례 KT&G로 발송하며 다음과 같은 요청사항을 전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담배꽁초 필터를 생분해 필터로 교체해 주세요. 당장 담배꽁초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알려 주세요. 버려지는 담배꽁초를 수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세요. 꽁초를 모아 오면 담뱃값을 할인해 주는 등 보상안을 마련해 주세요." (와이퍼스)
또한 환경부에 담배꽁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KT&G는 담배꽁초 문제를 두고 ‘쓰담쓰담' 캠페인을 진행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꽁초 수거함을 확대하고, 수거함에 “쓰레기통에 담배꽁초를 버려주세요"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는 계획이었다. 또 '꽁초어택' 캠페인이 이뤄지던 시기 KT&G는 ‘줍깅' 캠페인을 주최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시민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제조사는 판매에서부터 쓰레기의 처리까지 책임져야 한다. 시민들의 요청대로 담배꽁초에 들어간 플라스틱의 가능한 처리 방법을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애당초 분해가능한 필터의 개발을 고민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줍깅'을 권하는 우리 사회는 공중들의 실천과 노력으로 나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정부와 기업의 그린워싱으로 더 나빠지고 있다. 카트린 하르트만이 쓴 <위장 환경주의: ‘그린'으로 포장한 기업의 실체>(2018)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심각한 생태적, 사회적 손상을 입혀 놓고는 이를 진보라고 자축하며, 그런 진보를 더욱 확장하는 것을 ‘지속가능’이라고 표현하는 게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188쪽).”
정부와 기업은 허울 좋은 ‘지속가능’을 위한 텅 빈 이미지를 만들기보다 시민들과 함께 해결책을 고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며, 생태와 사회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타르드는 “결실을 맺는 모든 창의는 독립적이며 강한 개인의 사유”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공중으로서 현재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고, 우리는 이미 그 ‘사유'를 가진 사회에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때인 만큼, 우리는 그 어떤 실험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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