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입법 강행
송영길·이재명의 명분 없는 출마
박완주 등 잇단 성폭력 의혹
지도부 내홍
김포공항 정책 혼선
6·1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22일 만에 치러진 '허니문 선거'여서 처음부터 이기기 어려웠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그러나 불리한 구도가 전부는 아니었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에도 쇄신을 멀리하고, 강경파에 끌려다녔다. 또 취약한 도덕성을 드러내며 스스로 민심과 멀어졌다. 경기지사 선거에서 인물론을 앞세워 간신히 역전승을 거둔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인이 3일 "(선거 과정에서) 당이 여러가지로 발목을 잡은 부분도 있었다"며 작심 비판에 나선 배경이다. 인물론 경쟁력이 월등했던 후보마저도 고개 젓게 만든 민주당의 실패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남 탓 논쟁'이 아니라, 먼저 솔직히 '내 탓'을 인정하는 자세다. 계파를 초월해 민주당이 집단적으로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대표적 실책 장면을 꼽아봤다.
①검수완박 입법 강행
3·9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의 주된 관심사는 반성과 쇄신보다는 '대선 불복' 내지 '반격'에 가까웠다.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검찰공화국'으로 규정한 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로 검찰의 힘을 빼자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생 대신 또다시 개혁 이슈로 입법 독주에 나서자 당내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조응천 의원 같은 일부 소신파가 “지방선거는 어떻게 치르자는 것이냐”고 속도조절 필요성을 거론했지만, “선거 유불리 때문에 약속을 어기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정당”(김용민 의원)이라는 강경파의 당위론에 압도됐다. 대선 패배 직후 취약한 당내 리더십은 균형추 역할에 실패했다.
민심의 평가는 차가웠다. 지난달 2~4일 검수완박 법안의 국회 통과 직후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기관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검수완박 입법에 대한 부정 평가가 52%나 됐고, 긍정 평가는 33%에 그쳤다. 이를 두고선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의제 선정 자체가 문제였다고 설명한다. 민주 대 반민주, 독재 대 반독재 프레임에 익숙했던 민주당이 민주화가 완성된 이후에 새로운 타깃으로 검찰 기득권을 상정하고 여기에 개혁의 동력을 쏟아부었지만, 중도 진영에는 설득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민주당이 '조국 사태' 이후 검찰개혁, 반윤석열로 확 기운 강성 팬덤 정치에 휩쓸린 것도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3선 중진 이원욱 의원은 지방선거 패배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이른바 검수완박법 통과에 대한 국민의 반대가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통과시켰다”며 “강경 지지층의 요구에 끌려간 결과였다”고 뒤늦은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②송영길·이재명의 명분 없는 출마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방 사찰에 칩거 중이던 송영길 전 대표가 5월 초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당 일각에서 제기된 '송영길 차출설'에 응답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지만,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 직에서 물러난 송 전 대표의 '초고속 복귀'를 둘러싸고 "쇄신과 거리가 멀다"는 당내 비판이 분출했다. 인천에 기반을 둔 송 전 대표가 서울과 뚜렷한 접점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럼에도 송 전 대표는 출마를 강행했고, 이에 송 전 대표와 같은 '86세대'인 김민석, 우상호 의원마저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당내 갈등이 격화했다. 민주당 비상대책위도 송 전 대표에 대해 공천 배제(컷오프) 결정을 내렸다가 이틀 만에 번복하는 등 갈팡질팡했다.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의원직 사퇴로 공석이 된 인천 계양을에 이재명 전 대선후보가 출마하며 '명분 없는 출마 논란'은 배가됐다. 이 후보가 경기 성남시 분당갑 보궐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안철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피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에 출마한 모양새로 비쳤기 때문이다. 대선 패배의 주역들이 전면에 나선 결과, 지방선거는 민주당에 불리한 '대선 연장전' 구도로 흘렀다.
'이재명 책임론'은 앞으로도 민주당 쇄신이 계파 간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가느냐, 아니면 제2의 도약을 위한 건전한 논의의 장이 되느냐를 결정지을 '뜨거운 감자'다. 다만 여론은 대체로 이 후보의 계양을 출마에 부정적이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계파색이 옅은 '소신파' 김해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들이 보기에 송영길 전 대표와 이재명 위원장의 출마는 상당히 납득하기 어렵고 명분이 부족한 그런 출마였다. 아프게 생각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③박완주의 권력형 성폭력·최강욱의 성희롱성 발언
지방선거를 20일 앞둔 지난달 12일, 민주당 비대위는 당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박완주 의원을 제명했다. 지난해 말 발생한 사건에 대해 민주당은 4월 말쯤 신고를 접수받았고, 당적 박탈에 이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제소라는 고강도 대처를 택했다. 하지만 안희정 전 충남지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사례에도 불구하고 권력형 성폭력을 뿌리뽑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최강욱 민주당 의원이 동료 의원에게 한 '짤짤이 발언'은 미흡한 대처까지 도마에 오르면서 국민적 조롱의 대상이 됐다. 최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및 보좌진과 함께 한 회의에서 A의원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시점이 5월 2일이었으나, 민주당 징계기구인 윤리심판원은 조사 절차를 지방선거 이후로 미뤘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방선거 이후로 넘기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는데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잇단 성폭력 사건은 지방선거의 주요 승부처인 충청 지역 민심 악화에 특히 큰 영향을 줬다. 박 의원 지역구가 충남 천안이어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비서 성폭력 사건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은 2010년 지방선거 이후 3연승을 거뒀던 충남지사 선거에서 국민의힘에 7.75%포인트 격차로 패했다.
민주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은 5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충청권 전패, 특히 충남의 충격패는 충남 천안을의 박완주 성폭력 의혹이 컸다”며 “국민의힘에 대한 도덕성 우위까지 무너진 것이 민주당의 연패와 무관치 않으며 쇄신 과정에서 도덕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④박지현의 '86용퇴론' 둘러싼 지도부 내홍
박지현 위원장은 지방선거 8일 전인 지난달 24일 민주당의 쇄신을 촉구하며 당 주류 세력인 86세대(80년대 학번·1960년대생)의 '용퇴'를 거론했다. 대선 후 당에 영입된 청년 정치인으로서 과거의 민주당과 결별하겠다는 개혁 선언이었다. 박 위원장은 "우리 편의 잘못에 더 엄격한 민주당이 되겠다",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고 했고, '86세대 용퇴'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어쩌면 이때가 민주당이 차갑게 돌아선 민심을 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은 박 위원장의 발표를 "개인 의견"으로 규정하면서 오히려 지도부 내부 갈등에 불이 붙었다. 김민석 전 선거대책위 총괄본부장 등 86세대 대표주자들도 가세해 "틀린 자세와 방식"이라며 박 위원장을 비판했다. 박 위원장의 문제제기가 지도부 내의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은 채 돌출하면서 공격의 빌미를 남긴 측면도 있었다.
지방선거를 나흘 앞둔 지난달 28일 윤호중·박지현 위원장 모두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자세를 낮추고 '청년정치 확대·당내 성폭력 무관용 원칙 확립' 등에 합의했으나, 여론을 반전시키는 극적 효과는 없었다.
'86세대 용퇴론'은 지난 대선 당시에도 언급됐던 민주당 쇄신의 '단골메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둘러싼 잡음이 여과 없이 노출된 '과정'에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 충청권 초선 의원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박지현 위원장이야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미숙할 수도 있으나, 윤호중 위원장 등이 비공개 회의에서 책상까지 두드리며 반응한 게 잘못이었다"고 평가했다.
⑤이재명의 김포공항 이전 공약 혼선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전 대선후보의 지방선거 전 마지막 승부수는 '김포공항 이전' 공약이었다. 이 후보는 지방선거 7일 전인 지난달 25일 인천 계양구 유세에서 "김포공항을 이전해 강서, 김포, 인천 계양을 묶어서 강남에 버금가는 '강서시대'를 열어보겠다"고 선언했다. 뒤이어 김포공항을 인천공항으로 통합하고 주택 20만 호를 건설해 '제2의 강남'으로 만들겠단 '수도권 서부 대개발 프로젝트'를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와 함께 발표하기도 했다. 서울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는 '지역 홀대론' 정서가 강한 인천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충분한 조율 없이 던져진 공약에 민주당의 입장은 엇갈렸고, 국민의힘에 공세의 먹잇감을 던져준 셈이 됐다. 윤호중 위원장 등 지도부는 "중앙당 공약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고, 오영훈 제주지사 후보자는 제주 관광에 주는 타격 등을 이유로 선거 3일 전 기자회견을 열어 "공약 철회를 요청한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에선 "막 공약"(오세훈 서울시장), "수요공급의 기본 원리도 모르는 무식한 발상"(이준석 대표)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게 분명했지만, 이 후보는 오세훈 시장도 과거 김포공항 이전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보인 적 있다는 점만 물고 늘어졌다. 오영훈 후보가 제주지사에 당선되면서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민주당 제주 지역 출마자 사이에서도 이 후보의 공약이 선거에 악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제주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접전 끝에 승리한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선거 뒤 방송에 나와 "혹시라도 도민들의 주 생계수단인 관광업이 쇠퇴될까 하는 두려움이 분명히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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