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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입에 담을 상황 아니다”

입력
2022.06.06 18:00
수정
2022.06.07 06: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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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이충재주필

與, 지방선거 압승과 선거 3연승에 고무
승리 익숙해지면 오만해지고 독주 본능
윤 대통령, 인사 편중 비판 귀 기울이길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7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윤 대통령 양복 재킷에 떨어진 빗물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7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윤 대통령 양복 재킷에 떨어진 빗물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있다.

지방선거 압승에 고무된 여권을 보면서 4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2018년 지방선거를 싹쓸이하다시피 한 문재인 정부는 전국 선거 3연승으로 기세등등했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 이은 대승이었다. ‘진보 20년 집권론’이니 ‘보수 궤멸론’이니 하는 말이 그때 나왔다.

너무 기고만장한 모습에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국민들로부터 받은 높은 지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오싹함”이라며 자만하지 말라고 경계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금세 눈 녹듯 사라졌다. 모두가 자기 편이라는 착각에 빠져 독주와 독선의 길로 치달으면서 정권은 하락기에 접어들었다. 과도한 권력이 절제와 극기를 허물어뜨린 것이다.

국민의힘도 6ㆍ1 지방선거 압승으로 지난해 재보선부터 3연승 중이다. 사실 정권을 갓 출범시킨 윤석열 정부로선 지방선거 승리가 갈급한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행정부를 쟁취했지만 야당이 의회를 장악해 여전히 취약했던 터다. 의회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지방권력 확보로 국정 운영에 탄력이 붙고 정책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하지만 승리에 취하다 보면 가리어진 그늘을 놓칠 수 있다. 냉철히 생각하면 이번 선거는 여당이 도저히 질 수 없는 구조였다. 선거는 구도와 인물, 이슈의 싸움인데 이번엔 구도가 압도한 선거였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의 힘이 가장 막강한 시기여서 지역 발전을 이끌 인물을 고른다는 지방선거의 취지는 애초 맥을 못 췄다.

막 정권이 출범했으니 힘을 실어주자는 ‘정권안정론’만으로도 승패가 어느 정도 가려졌지만 야당의 자충수는 판세를 완전히 기울게 한 요인이다. 야당이 ‘검수완박’을 밀어붙이지 않고 지도부 내분 없이 똘똘 뭉쳐 장관 청문회와 ‘검찰공화국’ 문제를 집요하게 추궁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선거 완승의 상당 부분은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라 정권 출범 직후라는 구도와 ‘야당 복’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지방선거 압승은 윤 대통령에게 천군만마겠지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향후 2년까지는 전국 규모 선거가 없는 윤석열 정부엔 당분간 소신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불어난 몸집과 근육을 자랑하다 수렁에 빠질 위험도 높은 시기다. 윤 정부 임기 한가운데에 치러지는 내후년 국회의원 선거는 말 그대로 중간평가 성격을 지닐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제대로 민생정책을 펼치면 마지막 남은 의회권력도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권력의 하강기로 접어드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에서부터 지금까지 이기는 길만을 걸어왔다. 스스로의 잠재된 정치력과 추진력에 강한 확신을 가질 만하다. 이번 지방선거 승리도 구도와 조건보다는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가 뒷받침됐다고 여길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라 해도 지나친 자신감과 우월감은 자신만이 옳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진화생물학에 이른바 ‘승자 효과’라는 게 있다. 승리에 익숙해졌을 때 사람이 공격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쪽으로 변모한다는 게 수많은 연구로 확인됐다. 세계적 석학인 로버트 트리버스는 한 사례로 윈스턴 처칠을 들었는데 “권력이 적을 때는 내성적이고 겸손했는데, 권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땐 오만하고 아량이 없는 모습으로 변모했다”고 갈파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지방선거 압승 소감을 묻자 “경제위기 태풍에 우리 마당이 들어가 있는데 정치적 승리를 입에 담을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시야가 좁았는데 이제 더 크게 보겠다”고도 했다. 백 번 옳은 말들인데, 먼저 시야를 넓혀 '검찰 출신 편중 인사'부터 돌아보길 바란다.

이충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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