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질서는]
스티븐 M 월트 미 하버드대 교수 인터뷰
"러, 더 약해질 것...미중, 영향력 권력 다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일이 넘었다.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 민간인만 4,000명 이상 숨졌고, 양측의 군인 전사자는 4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 키이우는 물론 하르키우, 마리우폴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의 산업ㆍ민간 시설이 무참히 파괴됐다. 전쟁은 동부 돈바스 지역 세베로도네츠크를 둘러싸고 일진일퇴 중이다.
이번 전쟁으로 국제질서도 급변하고 있다. 러시아 원유 수출 제재와 우크라이나 곡창지대 파괴로 세계는 유가 상승, 경제난과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이어지던 미국 주도 ‘포스트 냉전 시대’가 끝나고 중국ㆍ러시아 대 미국ㆍ서방의 헤게모니 싸움이 본격화하는 새로운 격변기에 접어들었다.
과연 막을 수 없는 전쟁이었을까. 전쟁은 어떻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는 어떻게 재편될까. 한국일보 창간 68주년을 맞아 국제정치학계 석학 스티븐 M 월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정치학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선이 교착 상태다. 앞으로 전쟁은 어떤 결말로 흘러갈까.
“가장 가능성이 큰 결과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과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 일부 통제권을 놓고 싸우는 군사적 교착 상태다. 어느 쪽도 상대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정치적 해결을 위한 협상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당사자가 그들이 희망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우호적인 이웃으로 둘 수 없고,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되찾지 못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는 우크라이나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전쟁 당사자 중 어느 누구도 아직 그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책임이 큰 곳은 어디인가.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킨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특히 잔혹한 방법으로 전쟁을 수행해왔다. 그러한 행동은 단호히 비난받아야 한다. 그렇기는 해도 미국과 유럽의 동맹국이 러시아의 거듭되는 반대에도 나토를 동쪽으로 확장하려 한 것도 전쟁이 일어나게 한 요인이다. 나토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합류를 선언한 2008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정상회의부터 중요한 오류가 발생했다. 미국은 2014년 유로마이단(친유럽) 봉기 당시 (친러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 축출을 지지했다. 미국은 2017년부터 우크라이나를 무장시키기 시작했고, 2021년 초까지 우크라이나는 점차 서방과 동맹을 맺어 갔다. 러시아가 (지난해 말 이후) 국경에 병력을 동원해 ‘안보 우려가 해소되지 않으면 침공하겠다’고 위협했음에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중립국으로 선언하는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도 미국이 나토를 동쪽으로 확대하고 우크라이나와 우호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핵보유국 간 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공격 논리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주장했는데.
“앞서 답변했듯, 나는 미어샤이머 교수 분석에 동의한다. 부쿠레슈티 선언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모두 나토 회원 자격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큰 실수였다. 독일과 프랑스는 그 결정에 반대했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그들에게 어색한 타협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 미국 정보 당국도 이 조치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지만 부시 전 대통령은 이들의 충고를 무시했다. 나토가 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위치를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는 어느 누구와도 자유롭게 무역을 하면서 전형적인 동맹의 일원이 되지 않는 ‘무장한 중립국’으로 있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부당한 전쟁이라는 지적이 많다.
“러시아 관리들은 우크라이나의 중립 유지가 그들에게 중요한 관심사라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치’를 언급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공동의 역사적, 문화적 유대관계로 묶여 있다고 때때로 시사함으로써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러시아의 전시 잔학 행위와 함께 이러한 행동과 전술들은 많은 사람들이 푸틴의 동기가 방어적이기보다는 본질적으로 확장주의적이거나 제국주의적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당신은 최근 기고에서 “미국과 유럽 동맹국이 자만심, 희망적 사고, 자유주의적 이상주의에 굴복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 이후 미국과 서방 관리들은 민주주의와 경제적 상호의존을 확산시키는 것이 평화를 보장하고 국가들이 안보보다는 부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나토의 확대가 유럽에 광범위한 평화지대를 조성할 것이고, 러시아는 이를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그들은 틀렸다. 유럽, 특히 독일은 러시아와 광범위한 경제관계를 구축하면 러시아의 공격적인 행동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이러한 (경제 유대) 관계를 위태롭게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은 ‘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경제적 상호의존은 전쟁을 방지하는 장벽이 된다는 자유주의 (국제정치학 이론) 신념에서 비롯됐다.
불행하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생각들이 허황됐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민주주의 확산은 여러 이유로 바람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비(非)민주주의자들을 위협한다. 결국 비민주주의자들은 때때로 그 과정을 중단시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 경제적 상호의존은 국가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있지만 강대국이 자신의 안보가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 무력을 사용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러시아는 침략 이후 막대한 경제적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요점은 이러한 경제 비용이 전쟁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전쟁 후 미국 주도 세계 질서는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미국 주도) ‘일극체제 시대(unipolar era)’는 끝났다. 우리는 지금 (미국과 중국이 양대 강국인) 양극체제(bipolar)나, (러시아, 인도, 소수의 다른 강대국도 주도권을 쥐려 하는) 매우 한쪽으로 치우친 다극체제(multipolarity) 세계에 있다. 다만 우리가 아직 새로운 냉전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중관계가 훨씬 더 경쟁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견해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양국은 여전히 광범위한 무역을 하고 있다.”
-미국의 세계 전략은 어떻게 바뀔까?
“나는 이번 전쟁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공약을 촉진하기를 바란다. 현재 미국은 주로 우크라이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우리는 또한 유럽 파트너들이 그들 스스로 러시아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더 많은 걸 할 수 있음을 배우고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고 있고, 독일은 재무장을 약속했으며, 이제 러시아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력하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러시아는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질 것이다. 이는 유럽이 자국의 안보에 더 큰 책임을 지고 미국은 아시아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할애하도록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일이 당장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다.”
-이번 전쟁 후 러시아의 전략적 위치는 어떻게 될까?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끝날 때 중립국이 될 수도 있지만 나토는 두 개의 새로운 회원국을 갖게 될 것이다. 둘 다 우크라이나보다 더 가치가 있다. 더 중요한 점은 러시아 군대가 전투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제재가 여러 방식으로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푸틴이 집권하는 한 평소처럼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이는 러시아가 선진 기술을 수입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재능 있는 젊은 러시아인들은 떠날 가능성이 크고,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판매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러시아 경제와 군사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더 밀착하고 있다. 반면 중ㆍ러와 미국 간 경쟁과 대립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전쟁 이후 미중 관계는 어떻게 될까.
“세계 양대 강국으로서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경계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과 영향력을 다투게 될 것이다. 두 나라 모두 다른 분야에서 경쟁하는 동안에도 기후변화 같은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은 구분해야 한다. 특히 두 나라는 ‘서로의 정치 체제 훼손 시도는 금지한다’ 같은 특정한 합의를 이뤄내고, 협상과 상호 조정을 통해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안을 찾고, 갈등의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중요한 이익을 현명하게 방어해야 한다. 물론 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미국과 중국은 어느 쪽도 가까운 미래에 상대방을 지배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쿼드(Quad), 인도ㆍ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미중 간 갈등 변수들이 등장하며 한국 정부의 선택이 중요해졌다. 한미일 대 북중러가 대립하는 신냉전 구도가 형성됐다는 분석도 있다. 당신은 6년 전 “미중 관계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미중 간 양자택일을 피할 수 없다. ‘선택의 순간’이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미국과 긴밀한 안보 동반자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한국은 좋은 지원을 받고 있다. 물론 한국은 중국과 귀중한 경제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를 위태롭게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하고 안보를 지키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한 국가가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자유가 없다면 부는 거의 가치가 없다. 한국은 중국의 야망을 걱정하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힘을 써야 한다. 미국은 중국이 아시아의 기존 질서에 제기하는 도전을 인식하고 있으며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 핵문제는 수십 년 동안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해 왔다. 이전 미국 행정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북한과 그들의 핵프로그램은 오랫동안 문제가 돼 왔고, 이 문제가 곧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은 핵무기를 궁극적인 보호장치로 보고 있기 때문에 경제 지원이나 트럼프 행정부가 했던 약속 같은 것을 제시한다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취할 수 있는 도발적인 행동에 대비하면서도 관계를 개선하고 긴장을 낮추는 방법을 항상 고려할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불행히도 국제정치에는 빠르고 분명한 해결책이 없는 문제들이 있는데 북한 핵프로그램도 그중 하나다.”
◆스티븐 M 월트 교수는 누구
스티븐 M 월트(67)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정치학 교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대가 중 한 명이다. 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프린스턴대와 시카고대 등에서도 강의했다. 1987년 저서 ‘동맹의 기원’을 통해 위협균형이론을 제시했다. 대표적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와 함께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 외교정책’을 쓰기도 했다. 한국에는 ‘미국 외교의 대전략(The Hell of Good Intentions)’이 번역 출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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