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에너지·생필품 물가 인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가계의 가격 인상 허용도가 높아졌다”며 물가 상승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하루 만에 사과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문제성 발언은 6일 한 강연에서 나왔다. 그는 일본인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싼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여러 가게를 찾아다니는 경향이 줄었다는 도쿄대 교수의 연구를 언급하며 “가계의 (가격) 인상 허용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가)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지향한다는 관점에서 중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지난 2년 동안 일본 가계가 소비를 줄여 저축이 늘었다는 점을 들어 "일본은 물가 인상을 감당할 여력이 있다"는 근거로 제시했다. 현재의 물가 상승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며, 이는 일본 정부가 내건 '물가 상승률 2%'라는 목표 달성을 낙관하게 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물가 상승률 2%’는 2012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잃어버린 30년'의 경제 침체 탈출을 위해 내건 목표치다. 일본 물가는 ‘아베노믹스’란 이름으로 추진한 장기간 금융 완화와 재정 지출에도 꿈쩍하지 않다가 올해 들어 상승 중이다. 이는 그러나 경제 성장, 임금 인상 등 내부 성장 요인이 아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따른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엔화 가치 하락 등 해외발 충격 때문이어서 ‘나쁜 물가 인상’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임금은 충분히 오르지 않는데 식료품 가격 부담이 커진 것은 민심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 총재가 물가 인상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으니, 후폭풍이 컸다. 아사히신문은 “야채, 조미료 등 가격이 조금이라도 싼 가게를 찾아 다닌다. 구로다씨는 받는 급여 액수가 달라 (우리와는) 감각이 다르다”는 한 여성(76)의 말을 인용해 싸늘한 여론을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4월 실질임금은 전년 같은 달 대비 1.2% 감소했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를 넘어서면서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특히 식료품과 광열비 가격이 전년 4월과 비교해 각각 4.0% 15.7% 급등했다.
구로다 총리는 결국 사과했다. 8일 민영방송 TBS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7일 기자들을 통해 “표현이 적절하지 않았다. 오해를 초래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8일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 출석해 "가계가 물가 인상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전혀 적절하지 않았다”고 거듭 사과하고 발언을 철회했다.
닛세이기초연구소의 우에노 쓰요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구로다 총재의 발언은 물가 상승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며 “상당수 가계는 임금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물가 인상에 불안감을 갖고 있으므로, 부정적 측면도 고려한 세심한 표현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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