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제 현안과 외교안보 이슈를 조명합니다. 옮겨 적기보다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본 세계를 전합니다.
북한이 지난 5일 쏘아 올린 탄도미사일 8발의 연원은 전쟁광 아돌프 히틀러로 올라간다. 막바지로 치닫던 2차 세계대전의 전황을 되돌리려 히틀러가 기술자들을 압박해 개발한 것이 V2인데, 이는 최초의 탄도미사일이자 우주를 향한 로켓의 시작이었다. 비슷한 시기 반대편 영국에선 컴퓨터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독일 암호생성기 애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수학자 앨런 튜링이 개발한 콜로서스1호는 인류를 지금의 컴퓨터 세계로 이끌었다. 기술이 전쟁 양상을 바꾸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물며 말 등자가 백병전을 가능하게 했고, 라이플총과 원추형 탄환, 기관총도 전투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았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도 기술이 양상을 바꾼 또 하나의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 치열한 전선은 물리력이 충돌하는 지상과 정보통신 기술로 가능해진 사이버, 두 곳이다. 하지만 두 전선의 공통된 특징은 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민간부문이 변화를 주도한다는 사실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무상 제공한 스페이스X의 위성인터넷 스타링크가 대표적이다. 지금 스타링크는 상당수 통신시설이 붕괴된 우크라이나가 버텨내는 가장 중요한 기반 시설이다. 스타링크의 활약 속에 흑해 함대 기함인 모스크바호가 격침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아닌 머스크를 위협했다.
사이버 전사, 세계 각국서 27만 명 자원
온라인 공간에서 러시아와 사이버 전투를 벌이는 이들은 민간인 27만 명이 자원해 구성된 IT(정보기술)군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들이 일반국민, 무장한 군에 이은 제3군대라고 불렀다. 10대, 20대는 물론 실리콘밸리 인력까지 참여한 제3군의 공격에 러시아의 주요 정치·군사·언론 등의 사이트가 멈춰 서고 있다.
세계 빅테크 기업들도 강력한 대러 민간제재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단순 무기지원에 그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이상으로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전장을 세계로 확대시키며 러시아를 고립시킨 것은 이들의 성과다. 이들과 함께 세계 주요 인사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반러, 반푸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 인구보다 많은 7,000만 명 이상 팔로어를 가진 데이비드 베컴은 우크라이나에 ‘계정 기부’까지 하며 참상을 알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민간부문이 개입한 전쟁으로 평가되는 것은 전에 없는 이런 양상들 때문이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민간인, 민간기업이 깊숙이 개입한 마당에 적에게 잡힐 경우 국제법상 신분이 군인으로 간주한 포로인지를 놓고 국제사회는 벌써 논란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모습은 정보시대에 예상됐던 전쟁의 시민화에 다름없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전쟁과 반전쟁’에서 정보시대에는 전쟁 주체가 단둘이고, 누가 동맹국인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기존 개념이 틀릴 수 있다고 예고했다. 전쟁이 그 주체, 동맹을 판단하기 어렵고, 극단적으로 분화되어 다양한 유형이 된다는 것이다. 정보시대 전쟁을 처음 연 1991년 걸프전을 목격하고 나서 한 예측이긴 하나 틀리지 않은 진단이다. 당시 걸프전은 최첨단 기술로 만든 500여 종의 신무기들을 선보인 공연장에 가까웠다. 전투와 폭격 영상이 게임 장면처럼 TV로 중계되면서 세계를 경악시킨 것인데, 하지만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비춰 보면 정보시대 전쟁의 초입에 불과했던 셈이다. 토플러의 물결이론을 적용하면 산업시대의 제2물결과 정보시대의 제3물결이 이번 전쟁에서 거세게 충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머스크의 스타링크, 불리한 전세 뒤집어
전쟁 초기 러시아의 공격은 주요 통신망과 시설에 집중됐다. 많은 지역의 전화, 인터넷까지 두절된 상태에서 러시아의 선전 공세는 강화되고 있었다. 불리한 전세가 예상과 달리 바뀐 데는 스타링크의 역할이 컸다. 머스크의 지원 조치는 미하일로 페도로프 디지털혁신부 장관이 전쟁 발발 이틀 뒤 트위터로 요청하자 10시간 만에 이뤄졌다. 미국, 나토의 지원보다도 먼저 머스크가 스타링크를 갖고 달려간 격이다. 스타링크는 저궤도위성(LEO)을 이용한 우주 와이파이 네크워크다. 상대적으로 속도는 느리지만 위성이란 안정된 시설을 사용해 언제나 접속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사이버 공격에서 자유롭다.
1만 개의 스타링크 터미널이 통신과 전력시설이 파괴된 지역에서 자동차의 담배 라이터로도 구동되자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스타링크로 유도된 무인기 드론이 러시아의 탱크와 장갑차를 멈춰 세우고, 전투함을 공격해 전황을 뒤집기 시작했다. 지상전의 주력인 탱크가 고전하면서 전차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러시아 점령지에 남아 있던 주민들은 러시아군의 잔학 행위를 촬영해 세상에 폭로했다. 특히 러시아의 자존심 모스크바호를 격침시킨 넵튠 미사일의 정밀유도는 스타링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격분한 러시아 연방우주국 드미트리 로고진 국장은 머스크를 공개 비난하며 한동안 설전을 벌였다. SNS에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스타링크 요격을 지시했다는 얘기가 오르내렸다. 실제로 러시아는 방해전파를 발사하는 재밍 공격을 감행했으나, 미 국방부도 놀랄 만큼 머스크 측은 이마저 완벽히 방어했다.
우크라이나가 가장 승리하고 있는 사이버 전선은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등 다양한 SNS다. 2010년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이끈 게 트위터와 페이스북인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SNS 진압에 실패한 정권들이 줄줄이 퇴진하면서 재스민 혁명은 아랍의 봄, 민주화의 물결로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SNS의 위상은 그 이상이다. 전쟁의 참상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하며 반전 여론과 지지를 모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SNS는 러시아 최대의 적이자 한편으로 21세기형 전쟁 양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러, 강력한 전력에도 구식 전략 고립자초
러시아는 사상 초유의 디지털 봉쇄란 상반된 처지에 놓여 있다. 전쟁 초기 페이팔 등 빅테크 기업들이 하나둘 러시아를 떠나자 연쇄 작용이 일어났고, 지금은 디지털 고립에 놓여 있다. 러시아인들의 실생활과 연결된 민간제재는 서방의 다양한 국가제재 이상으로 강력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러시아로선 강력한 전통적 부대를 보유했지만 과거 사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이 같은 고립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보시대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우위를 점한 것은 높은 IT 경쟁력, 이전부터 구축된 내부 인프라가 있는 덕에 가능했다. 우크라이나는 인증받은 IT 전문가만 20만 명에 달하고, IT 및 소프트웨어 개발, 아웃소싱 분야에선 동유럽 최고다.
우크라이나 테크기업들은 다양한 전시용 앱을 만들어 민간인과 군의 목숨을 구하고 있다. 아약스시스템이 개발한 공습경보 앱이 대표적인데, 전쟁 이후 우크라인들이 가장 많이 내려받아 사용하는 장치다. 반크렘린 시위하기, 전쟁범죄 기록하기, 대피소 경로찾기 등의 다양한 앱과, 피란민 숙소 공유하기, 운전제공 사이트 등도 러시아를 압박하며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지키고 있다.
정보시대 전쟁에서 기술은 전 세계를 광의의 전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군인과 비군인의 경계도 희미해져 웹개발자, 그래픽 디자이너 등의 기술자들도 정보시대 군인이라고 할 수 있다. 군과 살상무기에만 의지해선 승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크라이나 전쟁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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