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대형화재 전직원 발 벗고 나서서 복구작업
"지속 가능한 일자리 위해 노사가 미래를 대비해야"
"이거 못 해내면 우리 회사 문 닫는다."
2018년 6월 12일, 대구 달성군 논공읍에 자리 잡은 대한소결금속 생산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천장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공장 전체로 번졌다. 그날따라 유난히 바람이 거셌다. 강풍에 거침없이 덩치를 키운 화마는 철제 구조물에 엉겨붙어 시커먼 연기를 토해냈다.
화재가 시작될 즈음 김효선(49) 대한소결금속 노조위원장은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장 지붕에서 스멀스멀 배어나오는 연기를 발견하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소방대원들을 도와서 물 호스를 붙잡는 등 동분서주하며 애를 태웠다. 불이 삼키는 것은 큰 건물 한 채가 아니라 청춘을 다 바친 삶의 현장, 아이들 학원비와 대학 등록금, 노후 자금이었다. 그때 김 위원장의 눈앞에 붉은 글씨가 어른거렸다.
'해고는 살인이다.'
조합원이었던 시절 모 자동차 회사를 방문했다가 벽면에서 발견한 구호였다. 동행했던 이들에게 "저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때 한 노조간부가 이렇게 대답해줬다.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사회 적응기라는 것이 필요한데, 너무 갑자기 해고당하면 변화를 이겨내기 힘들거든. 어김없이 가정에 불화가 일어나고 의지가 점점 약해지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거지. 타의적 자살이란 뜻이지."
대한소결금속이 바로 그런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공장을 집어삼키고 있는 화마는 쇠를 다 녹이고 나면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할 것이었다. 500명의 밥줄과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김 위원장은 "뜨거운 불 앞에서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대구 시내 소방차들이 총집결하다시피 했지만, 오후 6시에 시작한 불은 다음 날 새벽 3시쯤 되어서야 겨우 잡혔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불과의 사투가 끝나고 동이 튼 뒤에 조합원들과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굵은 기둥을 제외하면 곳곳이 고열에 녹아내려서 폭격을 맞은 듯했다.
"불이 난 저녁에 사장님과 통화를 했어요. 몇 시간 만에 목소리가 변했더군요. 산전수전 다 겪은 칠십대 CEO에게도 제 목소리를 빼앗길 만큼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거죠."
"우리 여기 살아있다!" 외치고 싶었죠
"소결로가 살아있다!"
조합원 한 명이 외쳤다. 소결로는 대한소결의 핵심 설비였다. 금속 가루를 넣고 프레스로 누른 다음 그 물질의 녹는점에 가까운 온도를 가열해 덩어리 금속으로 만드는 장치다. 불길은 소결로 코앞까지 진격했다가 소멸됐다. 소결로가 불탔다면 복구하는데 반년 이상 걸릴 것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저승사자들 왔네."
조합원 한 명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아침 일찍 회사를 찾아왔다. 그것도 십여명이나. 화재 소식을 듣고 부품 생산이 가능한지 살펴보려고 온 것이었다. 생산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현대로서도 거래처를 옮기는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복구하면서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우선 소결로 전기부터 복구합시다."
직원들이 모두 공장으로 나와 휴일도 없이 작업을 했다. 전기 시설이 모두 불타버린 까닭에 휴대용 전등을 켜놓고 일했다. 김 노조위원장은 일주일 동안 퇴근도 하지 않고 회사를 지켰다. 제품 생산과 동시에 진행된 복구 작업은 보름 만에 끝이 났다. 현대차 직원들은 열흘쯤 지켜보다가 안심이 되었는지 모두 회사로 복귀했다.
"갑작스런 화재 이후 보름 동안 죽음의 골짜기를 건넌 셈인데, 역설적으로 저는 그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똘똘 뭉친 시간들이었다. 외주업체 직원들까지 현장에 총출동했다.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고, 한 식구처럼 자기 일 남의 일을 가리지 않았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대한소결 망했다"는 이야기에는 욕설이라도 들은 것처럼 분개했다.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우리 여기 살아있다, 시퍼렇게 살아서 잿더미를 뚫고 다시 일어서고 있다고 외치고 싶었죠. 다들 너무 간절했어요."
노조위원장의 고용주는 사장이 아니고 조합원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일군 회사였다. 김 위원장이 입사하던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이직률이 높았다. 당시로서는 1987년에 문을 연 신생회사였고, 매출도 높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2000년 무렵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소결 기술 도입이 결정적이었다. 탄탄한 소결 기술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품질과 가격 모두 인정받는 회사가 됐다.
김 위원장의 리더십도 회사 분위기에 활력을 더했다. 그는 2011년에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이후 10여년 동안 사내 문화 개선과 근무 조건 향상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노력했다. 폭언이나 몰아붙이기 등 소위 꼰대 문화를 없애려고 애써왔고, 근무 시스템을 조정해 일요일에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런 노고와 공로를 인정받아 4선에 성공했다. 마지막 선거에서 92%의 지지를 얻었다.
"노조위원장의 고용주는 사장이 아니고 조합원들입니다. 저는 노조위원장 자리가 3년짜리 영업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손님은 바로 노조원들입니다. 3년 뒤 손님들이 나를 찾지 않으면 나의 ‘영업’은 끝나는 거죠, 하하!"
그는 늘 조합원들을 우선시한다. 심지어 사장과 협의를 하는 중이라도 조합원이 방에 들어오면 일어나서 맞이하는 식이다. 김 위원장은 "누구든 스스럼없이 노조위원장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려고 노력했다"면서 "늘 조합원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활동해왔다"고 밝혔다.
단체협약이나 임금협상을 할 때면 총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도 김 위원장이 새롭게 도입한 전통이다. 이전에는 대의원들과의 협의로 끝냈던 일이었으나 조합원을 모두 모아서 무기명 투표를 통해 최종 결정에 참여하도록 해왔다. 조합원이 곧 노조의 주인이라는 신념이 만든 시스템이다.
노사가 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미래
지금은 더 멀리 보고 활동하고 있다. 대한소결의 최대 화두 중의 하나가 미래 먹거리다. 이는 김 위원장이 가장 강조하는 "지속 가능한 직장"을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우리는 임금 안 올려준다고 파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자리 지속 보장 안 되면 파업한다"고 말한다.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데는 노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자동차 산업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내연 기관의 생명이 생각보다는 길 것으로 예상하고, 지금 이 세대는 별 무리 없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테지만 후배들을 생각하면 안주할 수 없습니다. 다음 세대의 먹거리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배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와 사가 한마음으로 미래를 대비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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