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강원 인제군 남면 관대리 소양강 상류. 드론을 띄워 내려다보니 훤히 드러난 강 바닥에 붉은색 물길이 어지럽게 이어져 있습니다. 푸르른 강물 대신 강 바닥을 뒤덮은 핏빛 물자국, 어쩌면 대지가 보내는 'SOS'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이상 고온현상에 따른 극심한 가뭄으로 전국이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곳 소양강 일대도 바닥은 거북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지고, 그 위엔 물고기를 잡던 각종 어구들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갈라진 강 바닥이야 가뭄 하면 떠오르는 단골 풍경이라지만, 마치 혈관을 연상시키는 듯한 황적색 물자국은 왠지 낯설죠.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가뭄으로 강 수위가 낮아지자 바닥에 쌓인 퇴적물 중 철 성분이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생기는 산화 현상이라고 합니다. 허준 소양강댐지사 환경차장은 "해당 지역 토양은 산화제이철(Fe2O3, Hematite) 퇴적층으로 추정되는데, 미립자 퇴적물에 철 성분이 풍부하다 보니 수위 저하로 공기 중으로 노출된 철이 산화되면서 붉은색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산화철 퇴적층은 국내외에서 흔한 현상으로, 보기와 달리 동물이나 인체에는 무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요며칠 전국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지리산 80㎜를 비롯해 남부 내륙에도 20~60㎜의 비가 쏟아졌죠. 하지만, 가뭄을 해갈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지난 5월 한 달 동안 전국에 내린 비의 양도 예년(102.1mm)의 5% 수준인 5.8㎜에 불과했습니다. 얼마 전 대형 산불이 발생한 경남 밀양과 합천 지역은 그보다 훨씬 적은 2~3㎜에 그쳤습니다.
극심한 가뭄은 이상 고온현상과 연관이 깊습니다. 지난 7일 기상청이 발표한 ‘2022년 봄철 기후 분석 결과’에 따르면 3∼5월 전국 평균기온은 13.2도로 최근 30년 평균 기온 대비 1.3도 높았습니다. 기상청 관측망이 전국으로 확대된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월별로는 3월과 4월의 평균기온 상승이 두드러졌는데요, 최근 30년 평균기온과 비교해 각각 1.6도와 1.7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4월 10일 강원 강릉의 최고기온이 31.3도까지 올라 4월 기준 역대 최고기온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습니다.
기상청은 19일쯤 제주도와 남해안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장마철에 접어들면서 가뭄이 어느 정도 해갈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소양강 바닥의 붉은 물길처럼 전국 대지의 선명한 구조요청들이 이 비로 사라지고 다시 푸르른 모습으로 되살아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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