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감호의 눈물]
가난으로 치료 못 받아 정신질환 키워
가족돌봄 어려우면 치료감호소행 유력
"제가 나이가 들어가지고요. 공부도 못했고요. 컴퓨터도 모르고, 자동차 운전도 못하고, 멍청하고… 어디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연로한 어머니와 함께 작은 주방 겸 현관 하나가 딸린 주택 지하 단칸방에 사는 50대 이정석(가명)씨는 '일은 따로 안 하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포자기한 듯 이렇게 말했다. 조현병을 앓는 이씨는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국립법무병원(충남 공주 치료감호소)에 다녀온 게 벌써 3번째다.
그가 가장 최근 재판을 받았을 때, 법원은 "가족은 고령의 모친뿐이고, 곤궁한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스스로 또는 가족의 도움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치료감호 판결을 내렸다. '심리적으로 불안해 집에서 그냥 쉬고 싶다'는 이씨는 "동사무소(주민센터)에 영세민(기초생활수급자)으로 등록돼 있어 그걸로 산다"고 했다.
누가 치료감호소에 가는가.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이 질문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3년간(2015~2017년) 재경지법(서울중앙·북부·서부·동부·남부지법) 5곳에서 판결한 치료감호 청구 1심 형사사건 144건을 톺아봤다. 이들이 치료감호소에 머문 기간 또한 파악하기 위해 5년이 지난 사건을 중심으로 살핀 것인데, 치료감호소는 개별 수감기간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가난이 정신질환 키웠다
판결문에는 빈곤의 그림자가 짙었다. 상당수 정신질환 피고인은 경제적 여건 탓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고, 증상이 악화하며 범죄로 이어졌다. '재산상태 등을 고려할 때 사회 내 치료가 어려워 보인다' '경제적 형편에 비춰 충분한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등의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재발성 우울장애를 가진 A씨는 질환의 영향으로 일을 관두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생계를 위해' 대형마트에서 23만 원 상당의 생필품을 2번 훔쳤다가 치료감호 재판을 받았다. 고가의 자전거를 훔치다가 쫓아오는 주인에게 헬멧을 던져 기소된 B씨는 징역 1년 2개월과 함께 치료감호 선고를 받았다. 유일한 가족인 동생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민간병원에서 치료가 어렵다"고 호소해서다.
중학교 중퇴 후 10년간 지하철역 등에서 노숙생활을 해 오다, 역사 내 화장실에서 춥다면서 속옷에 불을 붙였다가 방화죄로 기소된 C씨처럼 특별한 주거 없이 노숙생활을 하다가 범행에 이른 피고인도 6명이었다.
정신질환은 조기 발견 후 꾸준한 치료와 증상관리가 이뤄지면 회복해서 직장 생활을 하는 데도 문제가 없지만, 시기를 놓쳐 중증화·만성화될수록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빈곤의 수렁에 빠지기 쉽다. 실제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취재하면서 만난 치료감호 당사자나 그의 가족들은 지하 단칸방이나 임대주택, 고시원 등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그해 기준 정신장애인(조현병 등)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1만 원으로 전체 가구(411만 원)는 물론 전체 장애인 가구(199만 원)보다 60만 원 정도 적었다. 지적장애인 가구 소득은 239만 원이었다. 전체 장애인 가구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를 받는 비율은 19.1%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정신장애인은 10명 중 6명, 지적장애인은 10명 중 3.6명꼴로 생계급여를 받고 있어 빈곤층 비율이 더 높았다.
법무부 통계를 봐도 2020년 말 기준 피치료감호자의 입소 전 직업은, 무직이 692명(68.1%), 기타 174명(17.1%), 단순노동 89명(8.8%) 등이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2021)이 정신장애 범죄자의 생활수준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높음’은 0.9%에 불과했고 ‘중간’이 24.7%, ‘낮음’이 74.2%였다.
주상현 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장은 “중증 정신질환 환자의 사회복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주거와 직업인데, 이를 위해선 그분들의 삶에 들어가 함께 장기간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며 “현재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과 예산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가족에게 떠맡겨진 돌봄
치료감호 청구 사건 피고인 중에는 가족 등 사회관계망이 완전히 무너진 경우가 많았다. 판결문엔 '연락 가능한 가족이 없다' '국내 거주 가족 없이 홀로 지낸다' '가족이나 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혼자 지내다 병세가 악화됐다' '미혼이고 가족과 연락이 끊긴 상태다' '치료가 절실하나 부친은 사망하고 계모와는 연락이 끊겼다'는 등의 문구에서 나타난다.
2003년 조현병 진단 이후 12년간 꾸준히 치료받으며 문제없이 살았던 D씨는 2014년 함께 살던 어머니가 사망하자, 투약을 중단했다. 결국 환청 등 증세가 악화해 편의점, PC방 등 동네에서 행패를 부리고 이를 신고한 주민들을 협박하다가 기소됐다. 다만 그의 친형이 성년후견인으로서 보호를 다짐하고, 1개월간 치료받으면 상황이 쉽게 호전될 거란 의학적 소견에 따라 치료감호 청구는 기각됐다.
가족과 연은 끊이지 않았어도 당사자가 원해 홀로 생활하고 있거나, 보호자의 연로함 등의 이유로 돌볼 여력이 되지 않거나, 가족도 오랜 돌봄 노동과 갈등 탓에 부담감을 느끼고 지친 경우들도 적지 않았다.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로 10년 정도 치료받아 온 E씨는 자신의 양어머니를 상대로 성폭력 범죄를 시도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친부가 오랜 기간 정신병 치료 수발로 보호 의지를 잃은 상태”라며 치료감호를 인용했다.
발달장애 피고인의 경우 보호자가 자녀를 감당하기 버거워하거나, 잠깐 눈을 돌린 사이 사건이 발생하는 식이었다. 중증 지적장애가 있는 F씨는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충동'이 있었는데, 부모가 한눈을 판 사이 집 밖으로 나가 행인을 밀쳐 치료감호 청구를 받게 됐다. 법원은 '부모가 24시간 따라다니며 적절한 보호를 할 상황이 안 된다'고 인용 결정을 내렸다.
부모가 '자식이 가족들의 생명까지 위협해 더 이상 감당이 어려우니 국가기관이 보호하며 치료해 주길 희망한다'고 호소하거나, 자녀가 부친에 대해 '석방되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으니 국가가 나서 치료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치료에 소홀한 형이 입원치료를 받길 원하면서도, 강제입원을 시키는 과정에서 분노를 살까 봐 어찌할 바 모르는 동생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가족의 잘못된 대처가 병을 키우기도 했다. 특정 종교 목사인 부친과 독실한 모친 슬하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G씨는 종교에 대한 회의감, 우울감을 겪었고 조현병이 발병하게 됐는데, 부모는 상담·약물치료 등 정신과적 도움 대신 ‘소금을 뿌리고 기도하는 의식’으로 자식을 치료하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부모에게 강한 반감을 갖게 된 G씨는 “나를 내보내 달라”며 모친을 흉기로 위협하다가 결국 징역 3년에 치료감호 선고를 받았다. G씨 사건을 비롯해 가족이 범죄 피해자가 된 경우도 18건(12.5%) 있었다.
치료감호가 기각된 경우는
검사가 치료감호를 청구했지만, 법원이 '시설 밖 치료'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기각한 건수는 16건(11.1%·무죄 판결 3건 제외)이었다. 재범 가능성이나 치료 필요성이 인정돼도, 법원은 ‘꼭 치료감호소에서의 치료가 필요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치료감호에 처해질 경우, 형량과는 별개로 최대 15년까지 구금 상태에 놓일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판단을 요하는 것이다.
대체로 범죄 정도가 무겁지 않고, 가족 등 사회적 유대 관계가 탄탄해 보호 의지가 강력하고, 경제적으로도 치료 여력이 있는 경우에는 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달리 말하면, 비슷한 범행을 한 경우에도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인신구속 여부가 엇갈렸다는 의미기도 하다.
2005년부터 치료를 받아 온 H씨는 2016년쯤 약을 끊으면서 망치를 휴대하고 행인을 위협하는 등 우범 행위로 기소됐다. 그의 주치의는 “치료만 잘 받으면 위험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고, 치료 의지가 높고 의사와의 관계도 좋았다”며 강제입원은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하고, 따로 살던 동생과 함께 살겠다는 다짐이 기각 사유로 고려됐다.
이외에도 과거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아왔거나, 잠시 복약을 소홀히 하던 새 증상이 악화해 사건이 발생한 경우, 부모·언니·남편·동생 등 가족의 보호 의지와 관심이 뚜렷한 경우 법원은 통원치료나 외부 민간병원 입원치료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국선전담 변호사로 일하며 다수의 치료감호 사건을 경험한 엄호성 변호사는 “정신질환을 방치해 악화할 경우 터무니없는 피해가 생기기도 하는데, 더 안타까운 건 피고인 역시 경제적·인적 유대관계가 너무 열악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라며 “(범죄 발생 이전에) 사전 징후를 발견해 제때 치료가 이뤄지도록 하는 게 국가·사회적인 비용을 현저히 줄일 방법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위 링크를 클릭하면 관련기사를 모두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안되면 주소창에 https://www.hankookilbo.com/Collect/7513 를 넣으시면 됩니다.
◆치료감호의 눈물
<1>프롤로그: 기자가 마주한 비극
<2>발달장애도 ‘치료’가 되나요
<3>치료받지 못하는 치료감호소
<4>최장 15년, 언제까지 가두나
<5>치료감호 수장이 전하는 현실
<6>출소 후 공백, 누가 채우나
<7>처음부터 방치하지 않기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