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 강서구 강서습지생태공원과 개화산 기슭을 연결하는 생태통로 입구에 설치한 폐쇄회로(CC)TV에 고라니가 포착됐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담당자의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생태통로란 도로, 댐 등으로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가 단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놓은 인공구조물이다. 동물 다니라고 만든 생태통로에 고라니가 나타난 게 무슨 큰일인가 싶지만 여기엔 사연이 있다.
생태통로와 개화산 사이 놓인 올림픽대로에선 고라니, 삵 등 9종의 야생동물 찻길사고(로드킬)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서울시는 2013년 2월 동물이 차를 피해 다닐 수 있도록 올림픽대로 밑 144m 길이의 터널형 생태통로를 지었다. 당시 세금 37억 원이 들었다. 하지만 생태통로는 무용지물이었다. 언제부터 생태통로가 막혀 있었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올해 1월 생태통로가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는 시민 제보를 받고 생태통로 전문가와 현장을 찾았다. 생태공원 쪽 생태통로 수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수문 앞 쌓인 눈 위에는 발걸음을 돌린 동물 발자국이 선명했다. 개화산 쪽 생태통로 입구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생태통로 입구는 경사가 급하게 움푹 파인 지형에 위치한 데다 주변엔 1m 이상 높은 울타리가 설치돼 있었다. 생태공원과 개화산 중간 교통섬에 놓인 통로는 사각 수로박스 형태로 동물들이 이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운영도 문제지만 설계부터 동물 습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생태공원은 2011년 경인아라뱃길이 개통되며 경기 김포시 전호산과 갈라지기 전까지 최상위 포식자인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삵도 포착되던 야생동물 서식지였다. 지금도 고라니, 너구리, 족제비, 고양이 등이 살고 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다. 생태공원 곳곳이 이들의 잠자리고 놀이터다.
단절된 생태계를 연결하는 생태통로가 수년째 방치된 건 그동안 관리 주체가 없어서다. 이는 생태통로 관리 업무가 인수 인계되는 과정에서 누락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취재 시 관리 주체임을 부인하던 한강사업본부는 강서구청,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서울시 도시시설과를 통한 확인 끝에 자신들이 관리주체임을 인정했다. 관리 주체가 관리 대상을 모르고 있는데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한강사업본부는 보도(2월 24일자 18면·관련 기사 ☞ [단독] 세금 37억 들인 생태통로… 수년째 꽉 막혀 방치됐다)가 나가자 생태공원 쪽 생태통로 수문을 열고 CCTV를 설치해 동물 모니터링에 들어갔다. 모니터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동물 이용이 많지 않지만 고라니 출현으로 기대감이 높아졌다. 또 개화산 쪽 생태통로 관리 주체인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울타리 위치 조정과 주변 수목정비 관련 전문가 의견을 전달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생태통로가 이곳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이 운영하는 생태통로네트워크 홈페이지에 집계된 전국 생태통로 수는 534개. 국토교통부, 지방자치단체 등 생태통로 관리자가 자발적으로 자료를 제출하는 방식인데 강제성이 없어 누락된 곳이 많다. 더 심각한 건 최근 모니터링이 대부분 2016, 2017년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의 습성을 고려한 생태통로 설계와 모니터링, 너무나 기본적으로 보이는 것들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생태계는 단절되고 동물들은 목숨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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