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앤파이터' 네오플 전 개발자 백영진씨
"운 좋게 좋아하는 일하며 꿈 모두 이뤘다"
"여전히 배울 게 많은데 떠나려고 하니 아쉽기도 하네요."
백영진(61) 전 네오플 서버 프로그래머
지난해 12월 28일 넥슨 산하 게임 개발사 네오플에서 작지만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넥슨의 대표 온라인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개발자 백영진(당시 60세)씨의 정년퇴직 기념식이었다. 일반 기업에서라면 정년퇴직이 뭐가 그리 특별하겠느냐만, 국내 게임 업계에서 정년 퇴직은 백씨가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게임업계는 산업 환경의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정년퇴직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었다. 역사가 30년이 채 되지 않은 데다 다른 업종보다 이직률이 높고 임직원의 연령대도 젊기 때문이다. 당시 직장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블라인드에서는 백씨의 정년퇴직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에 큰 희망을 줬다", "평소 귀감이 됐던 분이다. 존경한다" 등 축하 게시물과 댓글이 수십 개씩 달리기도 했다. 이날 동료 직원들로부터 감사패와 함께 축하 메시지를 받은 백씨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퇴임식 이후 여섯 달이 지난 10일, 백씨는 이번엔 개발자가 아닌 강연자로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22) 무대에 섰다. 이날 그는 '게임회사 정년퇴직하기-정년퇴직 가능하긴 한가요?'를 주제로 늦깎이 개발자로서의 삶과 소회를 전하고, 자신처럼 정년을 앞두고 있는 동료 개발자를 비롯해 후배들을 향한 조언 또한 아끼지 않았다.
낮에는 공장, 밤에는 자취방서 컴퓨터 공부..."희망 놓지 않았다"
백씨가 개발자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1970년대였다. 가까운 미래에는 컴퓨터(PC)에 묻기만 하면 답이 나오는 세상이 온다는 친구의 말에 컴퓨터 업계 진출을 꿈꾸게 됐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전자공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과 성적 문제로 농대에 갔다.
졸업 후에는 구로공단의 정밀 기계 공장에 취업해 월 10만 원을 받으며 일했다.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개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렵게 모은 월급으로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애플2'를 구매, 홀로 PC를 공부했다. 백씨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자취방에 틀어박혀 애플2에서 돌아가는 베이직을 공부했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참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백씨는 큰맘 먹고 공장 일을 포기, 개발자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3년 동안 컴퓨터를 샀던 청계천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며 소형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인터넷이 태동하던 1990년대에는 독서실을 운영하면서 낮에는 게임을 개발하고, 밤에는 학생들 공부 도와주는 생활을 했다. 관련 지식은 모자랐지만 습작을 완성해보기도 하며 꿈을 이루겠다는 희망의 끈을 이어갔다.
나이 마흔에 찾아온 기회... "최고의 순간 맛봤다"
그러던 중 그의 나이 마흔에서야 첫 기회가 찾아왔다. 2000년대 IT 붐으로 '닷컴 시대'가 오면서 IT 인력이 부족해 프로그래머라고만 하면 경력, 신입을 가리지 않고 채용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게임업계에 첫발을 내딘 백씨는 2005년 온라인게임 '던전앤파이터' 개발사인 네오플에 입사했다. 서버 개발부터 장애 현상 해결과 콘텐츠 개발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만족했단다.
이후 던전앤파이터는 넥슨을 국내 대표 게임사로 끌어올린 입지전적 게임이 됐다. 2005년 8월 출시 후 누적 이용자 수 8억5,000만 명, 누적 매출 180억 달러(약 21조 원) 등 각종 지표에서 '최초'의 기록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 인기가 높았다. 던전앤파이터는 2008년 중국 시장 출시 이후 매년 8,000억~1조 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백씨는 "결국 성공해 대중의 인정을 받았을 때는 팀원들과 서로 축하하며 '우리가 최고가 되는 순간'을 맛봤다"며 "그렇게 꿈을 이뤘다"고 전했다.
팀장에서 팀원으로... 오해가 쌓이고 불편한 관계로
하지만 16년 동안 게임 개발자로 살며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게임업계는 이직과 부서 전환이 잦은 만큼 직책이 수시로 바뀌었다. 파트장, 팀장까지 올라갔던 백씨가 다시 팀원으로 내려오면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팀장 밑에서 일하게 되는 등 부서원 사이가 불편해지는 일도 잦았다.
백씨는 "팀장이 되었을 때 언제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오랫동안 팀장 일을 하다가 팀원이 되고 나니 팀 내에 나를 향한 오해가 쌓이고 불편한 관계가 되면서 긴 시간 쌓아온 노력이 단숨에 무너지는 듯했다"고 전했다.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백씨는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스스로 오해를 풀었다. 개발자로서 기획 파트와 원할하지 못했던 소통, 권위적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고쳐 나갔다. 그렇게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보고 일에 집중하면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개발자 생활을 순탄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게임 좋아하지 않았다면 치킨집 했을 것...좋아하는 일 하라"
백씨는 동료 개발자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40, 50대 개발자들이 후배들에게 밀려 업계를 떠나지 않고 어엿한 개발 인력으로 IT업계를 지탱하기 위해선 개발자 자신과 게임사 모두의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씨는 "이직과 전환 배치를 밥 먹듯 하는 게임업계 특성상 1, 2년 후도 내다볼 수 없어 정년 퇴직은 꿈도 꾸지 못할 수 있다"면서도 "빠르게 변하는 게임 플랫폼과 개발 언어를 모두 익힐 수 없지만 관심이 가는 트렌드 안에서 습작을 만들어보는 등 기본을 익히고 노력하면 변화하는 트렌드에도 적응하기 쉽다"고 조언했다.
이어 "고령화 사회가 눈앞인 데다 고질적인 IT 개발 인력 부족 현상 또한 심각해지고 있다"며 "정년을 넘겨서도 건강이 허락되고 능력만 뒷받침된다면 (40, 50대 개발자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게임사 또한 정년 연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씨는 퇴직 이후 가상화폐거래소 코빗에서 기술연구원으로 제2의 개발자 인생을 살고 있다. 같은 업계에서 다시 시작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새 도전'이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백씨는 "저는 운 좋게도 좋아하는 일도 실컷 하고 꿈도 이뤘다"며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힘든 걸 견디지 못해 치킨집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배 개발자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 일을 끝까지 해낼 힘이 생긴다"며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소중한 인생이라는 시간을 그 직업과 맞바꾸는 일인 만큼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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