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연 최고참 오승협 발사체추진개발부장
초기 개발 땐 주차장서 실험하며 좌충우돌
태극기 보며 '할 수 있다' 의지로 버틴 세월
누리호 성공은 우주협상 낄 수 있는 '자격'
"누리호는 우리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기횝니다. 과거엔 낄 수도 없던 우주기술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자격 증명 같은 거죠. 그래서 우리는 성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정도는 해 둬야 후배들이 서럽지 않게, 힘들지 않게 뻗어 나갈 수 있습니다."
오승협. 그가 이름 석 자를 올린 발사체 발사만 이번이 벌써 11번째다.
21일 오후 4시 누리호 발사 순간. 장장 35년간 한국 발사체 개발 현장을 지켜온 오승협(60)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추진개발부장은 그때도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그는 "혹시, 혹시 하는 생각에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발사 15분 후 성능검증위성과 위성모사체까지 완전히 분리가 끝난 후에야 참았던 한숨을 푹하며 내쉬었다고 했다.
누리호 2차 발사를 앞둔 이달 3일 대전 항우연 사무실에서, 그리고 성공적으로 발사를 마친 후 22일 전화로 만난 오 부장은 "발사체 개발이 너무 힘들어 '다신 안 해야지' 하다가도, 발사에 성공하는 그 순간 희열에 다시 빠져들고 만다"며 웃었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조만간 후배들에게 차세대 발사체 개발이라는 새로운 짐을 넘겨줄 예정이다.
"아는 것 없다" 무시받으며 쌓은 실력
길지 않은 한국 우주개발 역사에서 누리호는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존재와 같다. 이날이 오기까지 오 부장을 비롯한 1세대 우주 과학자들은 숱한 설움을 겪어야 했다. 1993년 첫 발사였던 과학 1호(KSR-1) 때는 전체 개발 인력이 16명에 불과했고, 과학 2호기와 3호기 개발 때는 제대로 된 인프라가 없어 연구소 내 주차장에 이동형 발사대를 놓고 발사 연습을 해야 했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2000년대 나로호(KSLV-1) 기술 공동개발 계약을 맺은 러시아까지 한국 기술진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오 부장은 "말로는 공동팀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 대놓고 무시를 당했다"며 "우리도 다 석·박사들인데, 비참할 정도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어려운 와중에도 연구진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집념 하나로 기술과 실력을 흡수해 갔다. 러시아 기술진과 보드카를 마시며 친분을 쌓았고, 보안요원의 눈을 피해 끊임없이 질문했다. 나로호 1차(2009년), 2차(2010년) 발사 실패 이후엔 원인을 찾기 위해 함께 머리를 모았고, 실패는 좋은 길잡이가 됐다. 오 부장은 "당시 발사체 인력들이 경험이라는 귀중한 자산을 얻었다"며 "실패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법, 데이터 안에서 비행 중 발생한 일을 유추하는 방법은 책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실패를 통해 배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후배들의 우주는 우리와 다를 겁니다"
오 부장을 비롯한 1세대 로켓 과학자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옛날식 사명감'이었다. 그는 "과거엔 태극기 걸어놓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달려왔고, 성공에 대한 부담이 너무 심해 보직 맡은 사람 중엔 약 안 먹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면서 "이제는 새로운 세대가 더 똑똑한 방식으로 우주 기술을 이끌어나가야 할 단계"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차 발사 최종 단계 실패, 그리고 이번에 2차 발사일을 두 번이나 연기하고서 우주로 날아간 누리호는 오 부장이 현역으로서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 같은 것이었다. 오 부장은 "설계부터 제작, 시연, 운용 다 우리 기술로 가능하다는 걸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이라며 "이제 우주 강국들과 한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됐고, 이로써 후배들은 우리가 겪었던 설움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어 "두 번 만에 성공한 것에는 충분히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고 힘줘 말했다.
오 부장은 그동안 직접 만든 로켓이 발사되는 순간을 맨눈으로 본 적이 없다. 발사 순간에는 벙커 안에서 끝까지 예민함을 유지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물러나는 사람으로서 뿌듯한 심정"이라며 "이제 마음 편하게 발사 순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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