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두창 확진자 대다수 동성애자
에이즈 사태 당시 동성애자 향한 혐오와 차별 커져
동성애는 감염경로일 뿐...발병 원인 아냐
동성애자 사이에서 ‘원숭이두창’이 확산되자, 동성애자에 대해 혐오와 차별의 낙인을 찍은 ‘제2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숭이두창 발병은 동성애와 큰 관련이 없다. 하지만 동성애자 사이에서 이 병이 확산되자, 에이즈 사태 때와 같이 이들을 향한 사회적 인식이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14일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원숭이두창 확진자는 유럽과 미국, 중동 등 29개국에서 발생해 현재 1,000여 명에 달한다. 문제는 원숭이두창 감염 대부분이 동성애자한테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영국 보건당국은 지난달 이후 확진된 336명을 분석한 결과 감염자의 99%가 남성이었고, 이들 대다수가 남성과 성적 접촉을 한 것으로 확인했다.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50여 명이 감염됐는데, 이 가운데 성적 성향이 확인된 17명 중 16명이 동성애자였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이 1980년대 미국 내 동성애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의 분위기를 조장했던 에이즈 사태로 다시금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당시 미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에이즈가 동성애자를 중심으로 퍼지자 미 개신교에서 ‘신의 형벌’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들을 향한 사회적 탄압을 가했다.
이에 동성애자들이 병을 숨기고 음지로 숨어들면서 사회적 피해는 더 확산됐다. 유엔 에이즈 대책 전담기구인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원숭이두창 관련 언론 보도와 논평, 사진들이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며 “원숭이두창은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 보건당국도 원숭이두창 감염 경고 수위를 높이면서도 동성애자와 관련됐다는 메시지는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시는 이달 대규모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행사를 앞두고 원숭이두창 감염을 경고하는 명함 크기의 카드를 만들었지만 “발진과 감기 증세를 띠는 사람과 밀접 접촉이나 성관계를 피하라”는 내용만 넣었다. 솔트레이크시티시 보건부 관계자는 “성소수자를 향한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어, 동성애자를 직접 겨냥해 원숭이두창 감염 경고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즈와 원숭이두창 발병은 동성애와 큰 관련이 없다는 게 학계 중론이다.
에이즈는 아프리카원숭이에서 처음 발생했고, 이후 인간에게 전이된 경로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동성 간 성접촉으로 에이즈가 확산되자, 동성애를 통해 병이 발생했다는 오해가 싹텄다. 원숭이두창도 지난 1958년 덴마크의 한 연구실에서 사육되던 실험용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됐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의 맥킨타이어 교수는 “원숭이두창 바이러스가 우연히 남성 동성애 집단에 유입되고 계속 퍼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숭이두창의 주요 감염경로가 현재 동성애일 뿐, 동성애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발병하지는 않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원숭이두창의 감염경로로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분명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댄 새비지 성 칼럼니스트는 WP에 “에이즈 사태에선 정부 기관과 언론 등이 동성애자를 차별하면서 예방에 실패했다”며 “그런데 이번 원숭이두창 사태에선 동성애자를 지나치게 배려하면서 예방에 실패할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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