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더 보이즈'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배트맨, 아이언맨, 슈퍼맨,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등은 슈퍼히어로. 조커, 타노스, 그린 고블린, 닥터 둠 등은 빌런. 그러나 슈퍼히어로와 빌런이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나뉘던 시대는 지났다. 토르의 적이었던 로키는 이제 악인이 아니고, 완다는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해 악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 캣우먼, 퍼니셔, 베놈처럼 애초에 선악의 경계가 희미한 슈퍼히어로도 있다. 비현실적 존재를 다루는 슈퍼히어로물은 메이저 장르로 대중화되면서 더욱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상이 순수한 흑백으로 나뉘지 않는 것처럼 슈퍼히어로도, 빌런도 점점 입체적인 캐릭터와 복잡한 플롯으로 발전해갔다.
아마존 프라임의 '더 보이즈'는 2006년에서 2012년까지 나온 코믹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슈퍼히어로 시리즈다. '더 세븐'은 홈랜더, 퀸 메이브, 딥, A트레인, 트랜스루센트, 블랙 누아르와 신입인 스타라이트로 구성된 슈퍼히어로 팀이다. 이들은 보우트라는 거대 제약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보우트는 슈퍼히어로가 출연하는 영화와 드라마, 토크쇼 등을 만들고 프랜차이즈 상품도 제작한다. 보우트에 소속된 슈퍼히어로는 연예인보다 인기 있고 정치인보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존재다.
더 보이즈는 전 CIA 요원 빌리 부처가 이끄는 사설 조직이다. 빌리 부처와 팀원들은 초능력이 없다. 슈퍼히어로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복수를 결심한 보통사람들이다. 1화의 시작은 전자제품 샵에서 일하던 휴이가 연인과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다.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데, 무엇인가 쏜살같이 연인을 치고 사라졌다. 자동차, 비행기보다도 빠른 슈퍼히어로 A트레인과 충돌한 연인은 잡고 있던 손만 남은 채 형체를 찾을 수 없게 산산조각이 났다. 부처는 홈랜더에게 아내를 잃었고, MM은 해체된 '페이백'의 솔져보이에게 가족을 잃었다.
슈퍼히어로가 악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희생자가 나오는 상황은 마블 유니버스에도 있다. 강연을 마친 토니 스타크에게 한 여성이 다가와, 슈퍼히어로의 전투 와중에 아들이 희생되었다고 말한다. '토르:라그나로크'에서 헐크가 우주로 나간 이유는, 이성을 잃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난동을 부린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슈퍼히어로의 전투 장면에서는 수많은 건물이 부서지고 폭파되고 무너져내린다. 건물 안에 있던 보통의 사람들은 어찌 되었을까. 선의를 행하는 과정에서도 무고한 희생자는 생겨나기 마련이다.
더 보이즈에서는 나아가 슈퍼히어로의 악의와 무관심으로 목숨을 잃는 희생자가 연발한다. 노골적으로 기존 슈퍼히어로를 패러디한다. 홈랜더는 슈퍼맨, 퀸 메이브는 원더우먼, 딥은 아쿠아맨, A트레인은 플래쉬 등등. 능력과 복장은 비슷하지만 더 세븐이 하는 짓은 전혀 다르다. 리더인 홈랜드는 자신의 욕망과 명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악행도 마다하지 않는 사이코패스다. 성추행과 폭력, 마약, 살인 등 세븐의 슈퍼히어로들이 하지 않는 짓은 없다. 더 세븐 멤버 중에 퀸 메이브 정도만 도덕과 양심을 가지고 있다.
더 보이즈의 원작 코믹스는 슈퍼히어로의 전통적인 세계를 도발적이고 냉소적으로 뒤집었다. 드라마 시리즈는 원작의 파격적인 요소를 유지하면서 더욱 현실적이며 중층적으로 인물과 스토리를 전개한다. 기독교 근본주의, 팬덤의 해악, 타이거맘, 테러리즘, 인종차별, 페미니즘 등 지금 미국의 사회적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스토리에 끌어들인다. 더 보이즈가 사악한 슈퍼히어로를 그려내는 방식은 단지 패러디나 뒤틀기가 아니다. 더 세븐의 악행은 개인의 탈선으로 국한할 수 없다. 더 세븐은 엄청난 슈퍼스타다. 대중은 그들을 숭배하고 열광하고 매혹된다. 슈퍼히어로는 자신의 능력에 도취하고 스타인 자신에게 빠져든다. 더 세븐은 물리적인 힘에 정치와 경제적 권력까지 가진 존재다. 권력이 있는 그들은 아낌없이 자신의 '힘'을 휘두른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쾌락만을 위해서.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이 하는 행태와 동일하다. 다만 현실에서는 초월적인 능력이 없으니 홈랜더처럼 악행이 직접적 폭력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더 보이즈 시즌1은 스타라이트의 변화와 성장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스타라이트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과한 보살핌을 받으며 키워졌다. 미인대회에 입상한 후, 연예계에 진출시켜 스타로 만들겠다는 엄마의 욕망은 미국에도, 한국에도 숱하게 존재한다. 스타라이트는 미모에 초능력까지 가졌기에 더 세븐이 목표였다. 엄마의 욕망을 따라 맹목적으로 달려온 스타라이트는 희망을 품고 더 세븐의 멤버가 되었다. 이제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 봉사와 희생을 통해 대중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모든 슈퍼히어로의 최종 목표에 이르렀으니까.
하지만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공식 석상에서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대하는 홈랜더는 최악의 슈퍼히어로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만 하고, 더 세븐의 멤버라 해도 홈랜더에게 어깨를 견주려 하면 바로 응징을 당한다. 딥은 성추행을 하고 트랜스루센트는 투명해지는 능력을 범죄에 이용한다. 이런 쓰레기들이 어떻게 '스타'가 되어 세상의 정상에 군림하게 된 것일까. 참담함을 느낀 스타라이트는 더 세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결국은 뒤틀린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간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스타라이트는 희망을 잃지 않고 강인한 투사로 성장한다.
모든 것은 보우트가 시작했다. 보우트가 슈퍼히어로를 만들었고 보우트가 슈퍼히어로를 이용하여 돈과 권력을 움켜쥐었다. 시즌2에 등장한 더 세븐의 세 번째 여성 멤버 스톰프론트는 홈랜더의 폭력에 전혀 기죽지 않고 직설적인 언어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극악한 인종차별주의자 스톰프론트는 보우트의 추악한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한 슈퍼히어로였다. 보우트는 스톰프론트만이 아니라 모든 멤버들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적절하게 이용한다. 통제가 불가능해지면, 대중이 비밀을 알아차린다면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워 슈퍼히어로를 해고하거나 속았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보우트는 면책된다. 사악한 슈퍼히어로도 나쁘지만 그들을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보우트는 더 나쁘다. 더 보이즈는 개인의 특별한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의 모순과 부패를 공격한다.
천하의 망나니 같은 딥과 A트레인도 슈퍼히어로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죄를 지은 것에는 당연히 벌을 받아야겠지만 그들도 각자의 트라우마는 있다. 더 세븐과 싸우는 더 보이즈 역시 순수한 정의의 투사는 아니다. 더 보이즈는 악당들과 싸우지만 그들도 때로는 악을 행한다. 타인을 이용하고, 희생시키기도 한다. 순수한 흑백은 존재하지 않는다. 암울하고 참담한 현실을 슈퍼히어로의 세계를 통해서 고발하는 더 보이즈는 냉소적인 유머 감각이 다분해 불편하면서도 즐겁게 시청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슈퍼히어로 시리즈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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