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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합법화? 못 가진 사람의 원치 않는 결정 초래할 것”

입력
2022.06.16 17: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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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형의 응시]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

‘안락사 또는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데 찬성하는가.’

서울대병원 연구진이 지난해 3~4월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에게 물어봤더니 76.3%가 그렇다고 답했다. 성인 10명 중 7, 8명이 안락사 제도화에 긍정적이라니, 놀라운 수치다. 현재 국내에선 안락사도 의사조력자살도 모두 불법이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사용 등으로 임종 과정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하지 않거나(유보) 중단하는 것만 7년여의 치열한 논의 끝에 2018년부터 합법화됐다.

이제 연명의료 중단을 넘어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도 가능하도록 법을 만드는 데 찬성하는 의견이 많은 걸 보면, 죽음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마침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사조력자살(조력존엄사) 법안을 15일 발의했다.

13일 서울 중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서 만난 의료법윤리학 전문가 김명희 원장은 최근 이슈가 된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입법화에 대해 "법과 제도를 만들기 전에 현재 우리 사회가 임종기를 어떻게 맞고 있는지부터 세심하게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왕태석 선임기자

13일 서울 중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서 만난 의료법윤리학 전문가 김명희 원장은 최근 이슈가 된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입법화에 대해 "법과 제도를 만들기 전에 현재 우리 사회가 임종기를 어떻게 맞고 있는지부터 세심하게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왕태석 선임기자

연명의료 결정제도 정착에 크게 기여해온 김명희(62)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은 그러나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합법화를 얘기하기 전에 우리 사회는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고 선을 그었다. 13일 서울 중구 생명윤리정책원에서 만난 김 원장은 “시대 변화에 맞춘 ‘웰다잉’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도 “의료는 물론 교육 현장까지 죽음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연명의료 중단은 안락사나 존엄사와 다르다”

-같은 연구진이 2016년 했던 조사에선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찬성률이 40% 안팎에 머물렀다. 6년 만에 사람들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것 아닌가. 안락사 입법화 찬성 답변이 이번에 왜 이렇게 높게 나왔다고 보나.

“2018년 2월 4일부터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시행되면서 관련 이슈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세대가 바뀐 영향도 있을 것이다. 다만 2016년과 2021년 조사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2016년엔 환자나 환자 가족처럼 죽음의 문제에 당면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했고, 작년엔 무작위 추출한 일반인을 대면 조사했다. 조사 방식이 다르다.”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2018년 의사조력자살로 죽음을 선택했고,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도 같은 길을 택할 예정이란 소식이 올 3월 전해지면서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 의사조력자살과 안락사는 어떻게 다른가.

“안락사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생명을 인위적으로 종결시키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환자 스스로 선택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자발적, 비자발적 안락사로 구분한다. 또 약물을 환자에게 직접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건 직접적(적극적) 안락사, 해야 하는 조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하는 건 간접적(소극적) 안락사로 본다. 의사조력자살은 스스로 죽음을 결정한 환자가 약을 먹거나 기구를 사용하도록 의사가 도와주는 것으로, 흔히 말하는 존엄사와 같은 의미다.”

-연명의료 유보·중단은 안락사나 존엄사와 다른가.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연명의료 유보나 중단 결정은 △질병 상태에서 회복이 불가능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해도 증상에 개선이 없고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어 조만간 사망에 이를 것으로 의사 2명(담당의사 1명, 전문의 1명)이 동일하게 판단한 ‘임종기 환자’에 대해서만 시행된다. 사망을 위한 방법과 시기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안락사와 다르고,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이 전제된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자기결정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존엄사와 다르다.”

“아들딸 찬성해도 외할머니 반대면 어머니 연명의료 중단 불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임종기 환자가 연명의료를 받을 건지 말 건지를 어떻게 결정하고, 의사는 그걸 어떻게 확인하나.

“입원해서 치료받는 동안 담당의사와 함께 연명의료 여부를 상의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둔 환자라면 그 내용을 확인하면 된다. 과거 건강했을 때 미래에 올 임종기에 연명의료를 어떻게 할지 미리 고민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둔 환자는 우리 원의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에 등록돼 있다. 이런 경우라면 의사는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조회해본 다음, 작성 당시와 생각이 변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면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둘 다 써두지 않았는데, 환자가 갑작스럽게 의사소통도 못 하는 상태로 임종기를 맞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런 경우가 가장 어렵다. 그럴 땐 가족의 진술을 근거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한다. 예를 들어 환자가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안 하겠다는 얘기를 평소에 했었다는 진술을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 중 2명이 동일하게 할 경우 환자가 그렇게 선택했다고 보고 연명의료 유보·중단을 결정하는 것이다. 단 2명 진술이 일치했어도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 중 누군가가 반대하면 안 된다.”

-딸과 아들 모두 임종기 어머니의 연명의료 중단에 찬성하더라도 외할머니가 반대하면 중단할 수 없는 건가.

“그렇다. 하지만 외할머니건 누구건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연명의료 중단을 반대한다면 다른 가족들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족 모두가 찬성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결정이 어려울 수 있다.”

“스위스 간다고 다 의사조력자살 가능한 건 아냐”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생긴 계기가 2009년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이다. 마취과 전문의이자 의료법윤리학 박사로서 생명윤리 분야에서 오래 활동하며 2012년 생명윤리정책원 설립부터 관련 법 제정 과정에까지 기여했던 걸로 알고 있다.

“김 할머니 사건 판결 당시 대법원은 가족 진술에 의한 환자 의사 추정을 인정해 할머니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좋다고 했고, 이런 사례를 법원이 모두 다루기 어려우니 정부가 제도화할 것을 권고했다. 그래서 각계각층 의견을 듣는 공론화를 거쳐 2016년 2월에야 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웰다잉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연명의료 결정제도보다 외국의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이 한발 앞선 제도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의학은 죽음의 과정에 너무 많이 인위적으로 개입한다. 과도한 의료 개입은 임종기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의사가 인위적 개입을 지속하도록 하면서 한편에선 의사조력자살이나 안락사를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컬하지 않나.”

-어르신들 사이에선 웰다잉을 위해 스위스행을 준비해야겠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고 한다. 스위스가 웰다잉이나 안락사의 최전선인 듯 여겨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민이 아닌 사람에게도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 안락사는 스위스에서도 안 된다. 적극적 안락사는 죽음을 원하는 환자에게 ‘의료진이’ 약물 투입을 수행하는 것이고, 의사조력자살은 약물을 처방하는 건 의사지만 실제 복용하는 건 환자 자신이라는 점이 다르다. 스위스에서 의사조력자살이 결정돼 의사가 약을 처방했어도 환자들이 결국 복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보고됐다. 스위스에 가서 돈만 내면 누구나 의사조력자살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질병 상태, 고통의 정도, 죽음을 선택한 이유 등을 현지 법과 제도 안에서 의료진과 전문가들이 평가해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말고 의사조력자살이나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호주, 콜롬비아 등이다. 미국은 10개 주에서 의사조력자살이 가능한데, 오레곤주와 워싱턴주는 안락사도 허용한다.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는 대부분 선진국이면서 의료 시장을 국가가 책임지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 의료는 철저히 자본주의지만, 65세 이상에 대해선 본인 부담을 줄여주고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의료비를 나눠 부담하고 있다.”

“자식에게 부담될까 봐 안락사 찬성? 비윤리적이다”

-우리나라도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의사조력자살 법안 발의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올 것 같다.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이번 서울대병원 조사에서 안락사 제도화 찬성 이유 중 ‘남은 삶이 무의미해서(30.8%)’가 가장 많았다. 신체적 이유가 아니라 정신적 이유란 얘기다. 삶을 대하는 가치관을 되돌아봐야 하고, 노인들이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게 사회가 얼마나 뒷받침하고 있느냐를 생각해봐야 한다. 법과 제도를 만들기 전에 현재 임종을 어떻게 맞고 있는지 세밀하게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 ‘가족에게 고통과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14.8%)’나 ‘의료비와 돌봄의 사회적 부담 때문에(4.6%)’를 이유로 꼽은 응답자도 많았다.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은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는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가치관과 철학에 따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식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 안락사 제도화에 찬성한다는 응답에 유독 눈길이 간다.

“그런 상황이 오히려 비윤리적이다. 특히 지금의 70대 이상은 전후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어내느라 노후 준비가 거의 안 돼 있는 경우가 많다. 독자적으로 자신의 건강이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의사조력자살이나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결국 ‘가지지 못한 자들의 원하지 않는 결정’을 초래할 수 있다.”

-제도 시행 이후 실제로 연명의료 유보나 중단 결정을 내린 사람은 얼마나 되나.

“22만 명이 넘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등록한 사람은 각각 132만여 명, 9만여 명이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길 거라고 한다. 연명의료 결정제도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걸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어디서 어떻게 쓸 수 있나.

“보건복지부 지정을 받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해 충반한 설명을 듣고 작성해야 한다. 등록기관은 병원과 보건소, 건강보험공단, 비영리법인이나 단체, 노인복지관 등 전국에 556곳 있다.”

-꼭 직접 가서 써야 하나. 그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쓰고 싶어도 못 쓰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최근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찾아가는 서비스’가 시작됐다. 상담사들이 집이나 노인정으로 찾아가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현장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도 돕는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상담사를 정부 노인일자리사업의 한 직역으로 개발했다. 원하는 고령자를 상담사로 양성한 다음 보건소나 노인복지관, 민간단체 등에 보내는 식이다. 현재 130명이 활동 중이고, 내년엔 5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사람 아닌 질병 중심의 의료 현장이 웰다잉의 걸림돌”

13일 서울 중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서 김명희 원장이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13일 서울 중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서 김명희 원장이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고민하는 환자나 가족 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원장실로 한 50대 여성이 찾아온 적이 있다. 한집에 살고 있는 남자친구가 혈액투석을 하다 병이 악화하는 바람에 입원하고 있던 종합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연명의료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 올 것 같은데, 연명의료를 지속하게 하고 싶어도 자신이 정식 배우자가 아니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안타깝고 속상했다.”

-연명의료 결정이 환자 본인이 아니면 가족 중심으로 결정되는 게 제도의 한계인 건가.

“요즘은 가족이라도 따로 사는 사람도 많아서 평소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대해 서로 잘 모를 수 있다. 이럴 경우 가족 2인의 진술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기 어려우니 배우자와 1촌 이내의 직계 존·비속 전원이 합의해 결정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선 1인 가구가 늘고 가족 형태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가족이 과연 환자 대신 의사결정을 하는 적절한 주체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가족 형태는 변하는데 문화적으론 여전히 가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긴 어려운 만큼 쉽지 않은 문제다.”

-연명의료 결정 대상인지 판단뿐 아니라 서류 절차까지 맡는 의사 역시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여전히 ‘3분 진료’가 우리 의료의 현실이다. 그 와중에 환자 의사를 일일이 확인하고 적지 않은 서류들을 처리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환자가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전인적 돌봄도 의사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 의료는 총체적으로 사람이 아니라 질병명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질병에서 어떻게 회복할 건가에 무게중심이 너무 가 있다 보니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이후엔 의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충분한 준비로 평화롭고 존엄하며 행복하게 맞는 죽음, 즉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으니 조금씩 달라지지 않겠나. 호스피스 병동 같은 인프라가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물론 인프라가 중요하다. 그런데 웰다잉을 꼭 의료 안에서만 해결해야 하는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임종기 돌봄의 의료적 측면은 숨쉬는 걸 돕거나 통증을 줄여주는 등의 대증적 요법이 다수라, 정서적 지지나 관계의 정리 같은 비의료적 측면의 중요성이 크다. 호스피스 이용률이 높은 영국이나 미국에선 호스피스 서비스가 비의료기관에서도 활성화해 있다.”

-웰다잉이 쉽사리 와 닿지 않는다는 사람도 아직 많다. 뭘 어떻게 준비하면 되나.

“옛날엔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자주 성묘를 가며 삶 속에서 죽음을 함께 경험했다. 그런데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 시대가 되면서 죽음은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에 가서야 경험하는 일이 됐다. 웰다잉이 와 닿지 않는 이유다. 이런 변화는 교육을 통해 극복할 수밖에 없다. 가령 생애 말을 고민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는 식이다. 재산을 정리하는 방법, 쓰던 물품을 재활용하거나 기부하는 방법, 화해하지 못한 사람과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의미 있다. 고령 사회에서 어떻게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울 건지는 어느 국가 과제 못지않게 중요하다.”

임소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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