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이 2020년 9월 해상 업무 중 실종됐다가 북한군에게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 사건에 대해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16일 밝혔다.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가 변을 당했다고 판단했던 2년 전 중간 수사 결과를 번복한 것이다. 월북을 뒷받침할 첩보가 있다면서 수사를 지원했던 국방부도 "국민들께 혼선을 드렸다"며 해경과 함께 유족에게 사과했다. 사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유족과 법정에서 다투던 대통령실 역시 이날 1심 패소 판결을 받아들인다며 항소를 취하했다.
진상 규명과 고인 명예 회복을 요구해온 유족은 힘을 받게 됐다. 이들은 당국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실책을 감추려 증거도 없이 이씨를 월북자로 낙인찍었다고 주장해왔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 관계를 의식해 사건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의혹도 재차 불거질 전망이다. 한반도 종전선언 지지를 호소하는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앞두고 청와대가 대통령 보고를 늦췄다는 의심이 대표적이다.
이번 사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였다.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2월엔 "집권하면 사건 관련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청와대 자료는 이미 대통령기록물로 봉인됐고 국방부 자료는 법원의 불허 판결로 공개가 여의치 않지만, 이번 조치로 대통령실을 비롯한 관계당국이 일사불란하게 유족의 손을 들어준 형국이다.
국방부와 해경은 이씨가 월북을 기도했다는 성급한 단정으로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해경은 "당시엔 국방부 자료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방부는 "월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두 가지 정황을 모두 말씀드려야 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양 기관은 월북 가능성을 배제하는 결정적 증거가 나와서 기존 입장을 바꾼 건 아니라는 입장이라 진상 규명 측면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족이 해경 지휘부 고발, 대통령기록물 공개 등 법적 조치를 예고한 만큼 상황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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