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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 유기해도 다시 의사 면허 발급"... 법원 판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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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 유기해도 다시 의사 면허 발급"... 법원 판결 논란

입력
2022.06.21 04:30
수정
2022.06.22 15:0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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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반성과 참회 입증... 면허 재발급해야"
면허 재발급 불허 추세 역행… "법 정비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법원이 불법 마약 투약과 사체 유기 혐의 등으로 복역했던 전직 산부인과 의사에게 의사 면허를 재발급해줘야 한다고 판결하자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성과 참회의 모습을 충분히 보였다는 게 판결 이유지만, 반성의 진정성과 범죄의 경중을 제대로 따지지 않는 판결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체유기 의사 면허 재신청 불허... 법원 "복지부, 위법"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 김순열)는 최근 전직 산부인과 의사 김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사면허 재발급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2013년 수면장애를 호소한 지인에게 13종의 마약을 투약해 사망하게 하고, 사체를 인근 공원에 유기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뒤 의사 면허가 취소됐다. 그는 2017년 복지부에 면허 재발급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김씨 손을 들어주면서 '반성과 참회 정황이 뚜렷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행 의료법은 '반성과 참회 정황이 뚜렷하다는 사실을 입증했을 경우 면허를 재발급해줄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를 근거로 면허 재발급을 거부한 복지부가 '면허 발급에 대한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조계 "납득 어려운 판결" 비판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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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선 이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김씨가 △아내와 이혼했고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등을 전전했다는 사실을 반성과 참회의 근거로 들었는데, 이를 '충분한 반성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란 것이다.

법원이 "약물을 근육이완제와 실수로 혼동했다"는 김씨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점도 비판 대상이다. 김씨가 사건 당시 산부인과 전문의 면허 취득 12년 차였다는 점에서, 단순 실수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김씨가 프로포폴 투약을 먼저 제안했고, 약물을 주입하며 피해자와 성관계까지 했다'는 수사 결과를 감안하면, 판결을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반응이다.

무엇보다 "재판부가 범죄 경중을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강하다. 같은 법원의 다른 재판부는 지난해 한의사 B씨의 면허 재발급을 불허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위법 행위의 경중이 어땠는지, 의료인으로 복귀시키는 게 국민의 건강·보건에 해악을 끼칠 우려는 없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해당 한의사의 면허 박탈 사유가 사무장 병원 운영이란 점을 감안하면, 김씨에 대한 법적 판단은 보다 신중하고 엄격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발급 불허 증가 예상...잘못된 시그널 줄 수도

의사면허 재발급 신청 및 불허 건수. 그래픽=신동준 기자

의사면허 재발급 신청 및 불허 건수. 그래픽=신동준 기자


이번 판결이 향후 의사면허 재발급과 관련한 유사 소송에 '잘못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지부가 본격적으로 의사면허 재발급 신청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8건이었던 거부건수는 지난해 32건으로 급증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 면허는 그동안 신청하면 관례적으로 재발급됐지만, 김씨 사건은 파장이 커서 처음으로 재발급을 불허했다"며 "이후에는 재발급 여부를 꼼꼼히 따지고 있어 면허를 다시 받지 못하는 의사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법정 다툼으로 이어진 사례는 현재로선 김씨 사건을 포함해 2건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김씨 사례가 기준이 될 경우, 반성을 충분히 했으니 면허를 재발급 해달라는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참에 의사면허 재발급 기준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반성과 참회의 정황이 뚜렷하다'는 조항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의료 전문 변호사는 "판사가 법을 해석할 여지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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