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성공에는 역대 정부 지속 후원 밑거름
연금 개혁, 원전 관리도 미룰 수 없는 도전과제
전문가 존중하며 중단 없이 추진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온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한 누리호 발사 성공의 이면에는 지난 12년간 이어진 정부의 중단 없는 후원이 있었다. 정부는 2010년부터 2023년까지 1조9,572억 원 예산을 투자하는 누리호 개발사업의 최대 ‘전주(錢主)’다.
논의 과정에 크고 작은 갈등이야 있었겠지만 정부가 한국형 발사체 개발 사업을 억지로 재촉하거나 방해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난해 누리호가 최종 궤도 진입에 실패했을 때도, 지난주 누리호 발사가 기계결함으로 연기됐을 때도 정부는 차분했다.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했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며 함께 성공을 응원했다.
대한민국 우주사업은 이제 더 큰 미래를 꿈꾸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2027년까지 누리호를 네 차례 더 발사하는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사업’이 첫 단계다. 이와 함께 2031년까지 1조9,330억 원을 들여 달 탐사선까지 확대해 쓰이게 될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우주기술 독립’은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와 그다음 대통령까지 이어지는 국가 과제다.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우주에 인류의 미래가 있고, 우주사업이 선진국의 필수 인프라라는 공감대에 어느 정부도 소홀하지 않았던 결과다. 누리호 발사 성공에 윤석열 대통령이 “항공우주청을 설치해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화답한 것이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제는 달이다”라며 향후 행보를 응원한 것도 전현직 정부의 일관된 입장을 보여준다.
누리호를 대했던 역대 정부의 자세는 우리 사회 중대 난제의 해결책을 시사한다. 국민연금 개혁도 본질적으로 누리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로켓 발사처럼, 어렵지만 연금개혁이 언젠가 가야 할 길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도 예외 없이 실패와 좌절을 거치며 연금제도를 손봤다.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면 정권과 무관하게 추진해야 하는데 불행히도 연금 문제는 계속 뒤로만 밀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별 진전 없이 연금개혁을 방치했고 윤석열 정부 역시 내년 하반기에 개혁안을 제시하겠다는 일정만 내놓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명확하다. 연금의 보험요율을 높이고 수령액을 낮추는 것이다. 결단을 늦출수록 추후 치러야 할 비용은 훨씬 커진다고 그들은 말한다. 반대가 많다고, 자신이 없다고 발사 일정을 미뤄봐야 로켓은 결코 날아가지 않는다. 쏴보고 좌절도 겪어야 진전이 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원전 갈등은 어떤가. 모두가 우주에서 미래를 찾듯, 각국은 거대한 에너지 전환 과제를 안고 있다. 그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적은 원자력 발전이 요긴하다는 것, 동시에 사고 위험성과 사용 후 처리 과정의 어려움 등을 감안하면 원전은 언젠가 벗어나야 할 발전방식이라는 것도 어느 정부든 안다.
최종적인 탈원전 시점까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무리 없이 원자력 의존도를 줄여 나갈까는 이념이 아닌 과학과 정책의 영역이다. 이런 점에서 5년간 원전 발전 비중을 전혀 줄이지 않았음에도 원전 생태계의 고사 호소를 방관했던 문재인 정부 탈원전 구호는 반쪽짜리였다. 반대로 “5년간 바보 같은 짓 안 했더라면 지금은 경쟁자가 없을 것”이라고 대놓고 비아냥을 날린 윤석열 대통령도 현명함과는 거리가 멀다. 친원전이든, 탈원전이든 한동안 원전 운영을 지속하려면 서둘러 방폐장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경고는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 듯하다. 실험장, 발사대도 없이 로켓 사업을 계속 하느냐 마느냐 다투는 형국이다.
연금도, 원전도 정부를 가릴 일이 아니다. 누리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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