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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만에 뒤집힌 미국 임신중지권… 정치권은 폭풍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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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만에 뒤집힌 미국 임신중지권… 정치권은 폭풍속으로

입력
2022.06.25 01:15
수정
2022.06.25 09:0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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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헌법에선 낙태 권리 부여 안해"
반대 "보호 잃은 여성과 슬픔 함께 해"
존폐 결정, 주정부와 주의회 권환으로
민주당 "법으로 구현 위해 투쟁할 것"

24일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낙태 권리 옹호 활동가들이 여성의 임신 중단 권리 판례를 무효화한 법원의 판결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24일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낙태 권리 옹호 활동가들이 여성의 임신 중단 권리 판례를 무효화한 법원의 판결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낙태) 권리를 보장한 법원 판결을 무효화하기로 결정했다. 반세기 동안 헌법으로 보호받던 여성의 임신 관련 자기결정권이 박탈당하게 되면서 여성 인권과 건강권 후퇴는 불가피해졌다. 미국 사회에서 생명권(pro-life)과 임신중지권(pro-choice)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를 둘러싼 논란에도 더욱 불이 붙게 됐다.

50개주 절반, 임신중지 금지할 듯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지를 금지한 미시시피주(州) 위헌법률 심판에서 9명의 연방대법관 가운데 5명이 찬성, 3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1973년 당시 여성의 낙태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사건’ 판례를 49년만에 뒤집은 것이다.

보수 성향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찬반에 손을 들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별도의 보충 의견을 통해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15주 후 임신 중단을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률은 위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다수 의견에 동조한 셈이다.

보수 성향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다수 의견서에서 “미국 헌법은 낙태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로 대 웨이드 판결이 그 권리를 보장했고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며 “이제 권한을 국민들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임신중지를 헌법 권리로 인정할게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주지사와 주 의회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 등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소수 의견에 “헌법상 기본적 보호를 잃은 수백 만 명의 미국 여성과 슬픔을 함께하며 반대한다”고 적시했다.

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합법화한 판례를 뒤집으면서 임신중단 권리 존폐 결정은 이제 주 정부 및 의회 권한으로 넘어가게 됐다. 이 경우 미국 전체 50개 주 중 절반 가량이 임신중지를 법률로써 금지하거나 극도로 제한할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낙태 옹호 단체와 반대 단체가 충돌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낙태 옹호 단체와 반대 단체가 충돌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CNN "수십 년만 가장 파장 큰 판결"

이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로 대 웨이드 판례는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 가능한 임신 24주를 기준으로 그 이전까지는 임신중지를 허용해, 여성의 임신중지에 대한 헌법상 권리를 확립한 기념비적 판결으로 여겨져 왔다. 당시 미국 대부분 주는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임신중지를 금지하고 있었으나, 미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사건을 통해 “여성은 임신 후 6개월까지 임신중지를 선택할 헌법상 권리를 가진다”고 판단했다.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법률이 미국 수정헌법 14조를 침해(적법하지 않은 절차로 사생활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했다고 본 것이다.

이 판결은 당시까지 임신중지와 관련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시킨 ‘위대한 판결’ 중 하나로 꼽혀 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임명해 연방대법원을 보수 우위로 재편하면서 여성의 임신중지권은 결국 반 세기 전으로 돌아가게 됐다. 미국 CNN방송은 “이는 미국 사회에서 수십 년 만에 가장 파장이 큰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 낙태권 폐지에 반대하는 여성이 '2급 시민'이라는 문구가 적힌 테이프를 입에 붙인 채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 낙태권 폐지에 반대하는 여성이 '2급 시민'이라는 문구가 적힌 테이프를 입에 붙인 채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최대 피해자는 취약계층 여성

미국 사회와 정치권에서 임신중지 문제를 둘러싼 혼란은 불가피하게 됐다. 당장 정치권에서 거센 반발이 나왔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즉시 판결을 “잔인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여성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자 여성들의 뺨을 때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대법원이 거의 50년이나 된 전례를 뒤집었다”며 “(보수) 정치인들의 변덕을 들어주기 위한 매우 사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한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이 판결이 미국인들에게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열었다”고 극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임신중지약 구매를 쉽게 하고 △다른 주에서 임신중지 시술이 가능하게 하는 등 이에 대응하는 각종 행정명령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없는 상태다.

이날 결정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미국 내 사회적 취약계층 여성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임신중지를 원하지만 가능한 지역으로 ‘원정 시술’을 가지 못한 사람들이 포기하면서 곧 산모의 교육·취업기회 저하로 이어지는 탓이다. 앞서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저소득층, 10·20대, 흑인이나 라틴계, 서류가 미비한 이민자들을 그 대상으로 꼽았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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