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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과 역차별로 갈라져 싸우는 직원들 사이에서 고래등 터져요"

입력
2022.07.15 16:30
수정
2022.07.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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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직의 젠더 감수성 고민하는 인사 담당자

편집자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뜻의 밈인 '무물'을 아시나요. 한국일보 허스펙티브가 성평등을 주제로 한 ‘무물 콘텐츠’를 격주 금요일마다 연재합니다. ‘대체 이럴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일상에서 흔하게 겪을 법한 다양한 고민 상황을 통해, 함께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뎌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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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조직 내 구성원이 다양해졌지만, 한국 사회의 남성 위주 조직문화는 과거에 비해 크게 바뀌지 않았다. 성별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안전한 일터는 어떻게 가꿔 나갈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조직 내 구성원이 다양해졌지만, 한국 사회의 남성 위주 조직문화는 과거에 비해 크게 바뀌지 않았다. 성별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안전한 일터는 어떻게 가꿔 나갈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Q. 제조업 중견기업의 40대 인사 담당자입니다. 다소 보수적인 분위기의 남성 중심 업무환경이지만 '성평등 조직 문화'라는 가치의 확산에 힘입어, 저희 회사에서도 여성 인력을 개발하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급하게 여성 친화 문화나 다양성을 이식하기 위해 성평등 구호도 만들어 보는 등 애를 쓰고 있는데, 실효성이 떨어지거나 기존 구성원의 반발이 거세 고민입니다.

물론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법정 의무 교육인 '성희롱 예방 교육'을 매년 실시하고 있어요. 최대한 유익한 시간이 되도록 유명 강사를 섭외하고, 대면 교육이 어려웠던 코로나19 유행 때는 재미를 가미한 온라인 수업을 마련했죠. 그런데 구성원 피드백을 수렴해보면, 형식적인 수강에만 그칠 뿐 실제 변화를 끌어내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 젠더 감수성이 뛰어난 MZ세대 직원들이 입사하면서, 조직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어요. 예전 신입사원은 조직 문화가 맞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농담을 들어도 응당 버티는 모습을 보였는데, 요즘 친구들은 부당함에 대한 강한 의사 표현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 공식 문제 제기까지 하더군요.

설상가상 전통적 위계질서에 익숙한 남성 직원이나 관리자들의 협조는 저조합니다. 회사의 젠더 감수성을 향상시키려는 움직임을 조직 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받아들이면서요. 회사 익명 게시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예민하다' '꼰대다'로 나뉘어 싸움이 벌어집니다. 인사 담당자로서 어떻게 구성원들의 갈등을 봉합하고, 성평등 가치를 설득해나갈 수 있을까요. (곽 팀장·42·회사원)

A. 조직문화에 대해 숙고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곽 팀장님의 노력에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먼저 질문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열어볼게요. 오늘날 다양성과 성평등을 존중하는 조직 문화는 소수자를 위한 '배려'나 '특혜'일까요.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다양성은 기업의 역동성을 제고해 성과로 이어지게 만드는 '전략'임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매킨지앤드컴퍼니가 발간하는 '다양성이 중요하다' 보고서(단행본 '사실은 야망을 가진 당신에게'에서 재인용)에 따르면, 경영진의 성별, 인종 다양성이 10% 상승할 때마다 미국 기업의 수익이 0.8% 올라간다고 해요. 2014년, 2017년, 2019년 기업 성과를 분석했을 때 젠더 다양성 정도가 높은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수익이 높을 가능성이 15%, 21%, 25%로 점점 상승한다고도 해요.

'여성 인력 개발' '일·가정 양립 직장 문화' 등은 기업이 변화무쌍한 생태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고민인 셈이죠. 다양성이 보장된 조직에 창의적 인재들이 몰려들고, 또 떠나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는 미국 테크 기업이 선도하고 있는 문화이기도 합니다. 구글은 다양성과 포용을 경영원칙으로 삼고 있어요. 애플은 사내에 다양성 관리 전담 인원을 두고 있습니다. 메타(전 페이스북) 역시 최고 다양성 책임자를 두고, 2014년부터 관련 지표를 별도 홈페이지를 두고 공개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조직 문화는 추구해야 할 가치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회사 구성원이 나눌 파이를 키우기 위한 조치이기도 합니다. 조직의 다양성이 높아질수록 정보를 수집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여러 관점을 반영하게 돼, 의사결정의 품질이 높아져 위기 대응 능력이 향상됩니다. 이를 '인지적 다양성'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여성 위주 기업에서 남성 임원이 많아지거나, 기성 세대 일색 경영진 중 젊은 임원이 포함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도적 노력과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 같다고요. 그렇다면 먼저 조직 내 성별 고정관념부터 점검해보는 건 어떨까요. 부지불식간에 성차별적 행위를 조장하는 조직 내 편견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성평등에 대한 현실 진단이 가능할 것입니다. 아래 체크리스트를 통해 '우리 회사는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한번 확인해볼까요.

조직문화 성차별 진단 체크리스트출처=한국여성민우회

번호 문항 응답
1 '살 좀 쪘지?' '살 빠졌네' '부어 보인다' 등 몸에 대한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오간다
2 '오늘 예쁘네' 같은 외모 칭찬은 괜찮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3 비공식적 자리에서 은근슬쩍, 일방적으로 말을 놓은 상사, 동료가 있다
4 같은 행동에 대해 남성은 철저하고 책임감 있다, 여성은 깐깐해 피곤하다고 다르게 평가할 때가 있다
5 열심히 일하는 남성 직원은 열정이 있다고 평가하지만 여성 직원은 욕심이 많다고 평가한다
6 여성 상사를 비하하는 말이 유리천장을 공고하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7 상사의 농담이 불쾌해도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넉살 좋게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8 회식,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사회성 없거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9 상사가 시키면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대로 하는 것이 권장되며, 그런 직원이 인정받는 분위기다
10 상사가 직원에게 큰 소리를 내거나 폭언을 한 적 있다
11 여성은 내근이나 보조 업무에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
12 직원 성비는 비슷하지만, 관리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13 성희롱 예방 교육이 형식적으로 진행된다

Q.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희 회사 회식 자리에서 "요새 살이 좀 많이 쪘네" 같은 이야기가 오고가는 분위기였어요. 다행히 젊은 구성원들의 문제 제기로 사내에서 최근 외모 평가는 자제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일부 기성 조직원이 이렇게 반문합니다. "예뻐졌다" 같은 표현은 관계를 개선하는 칭찬인데 이런 표현도 못 하는 건 과도한 검열이라고요. 저 역시 머리로는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A. 조직 내 리더십을 연구해온 유재경 국민대 경영대학 겸임교수는 기성세대의 이런 선한 의도는 일견 이해할 수 있지만, '혐오의 피라미드'를 들어 "예뻐졌다" 같은 칭찬이 어떻게 배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질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편견에 기반을 둔 농담이나 몰이해적 발언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다 보면, 실제 특정 집단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영역에서의 배제 같은 차별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혐오는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혐오는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예뻐졌다' '살이 빠졌다' 같은 표현은 특정 성별에 대한 편견에 기반을 두고 이상적 모습을 강요하는 발언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여성의 외모에 고정관념이 있는 관리자가 채용 면접에서 여성 지원자에 이 편견을 기반으로 질문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차별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죠. 별 생각 없이 한 칭찬이지만 이를 자양분 삼아 편견이 무럭무럭 자라고, 더 나아가 회사의 조직 문화를 해치고 성과 창출을 가로막는다면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성차별 표현은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요? 유 교수는 생활 속에서 쉽게 파악하는 방법으로 '상대의 성(性)을 바꾸어 말해보기'를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 직원의 특징을 두고 '감정에 연연한다' '성격이 나긋나긋하다' '일에 잘 몰입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면, 남성도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되돌아보는 거죠. 만약 어색한 느낌이 든다면, 여기에는 성차별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Q. 궁극적으로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역차별'이나 '예민한 사람들의 불편함'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보정할 수 있을까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가족 친화 제도를 도입하다 보면 '미혼, 특히 남성 직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피드백을 종종 받습니다.

A. 젠더 관점에서 노동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영단어 '코워커(동료·co-worker)'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직장 동료는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co-) 협력(work)해 시너지를 거두는 존재입니다. 여성 리더십을 키우는 것은 결과적으로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고 남성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죠."

신 교수는 조직문화의 성평등 수준이 높고 일·생활 균형제도의 사용률이 높은 기업에서 MZ세대의 회사만족도가 높고 이직률도 낮게 나타나는 점에 주목합니다. 즉, 지금은 몇몇 조치가 여성 문제에 집중하는 '역차별'로 보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남성들도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2020년 '여성 고용 확대를 위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 실태 및 활성화 방안 연구(이은아 외)'에 따르면 가족친화인증기업으로 인정받은 3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가족친화제도를 잘 시행하고 성평등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기업일수록 노동자의 업무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2021년 사무금융노동자 2,466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신경아 외)에 따르면 MZ세대 노동자는 남성의 경우에도 성적 괴롭힘에 매우 예민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성적 괴롭힘 전체 피해자(226명) 중 남성은 64명(28.3%)으로, 남성들 역시 권력을 기반으로 한 성적 괴롭힘의 피해자가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성희롱 예방교육은 '여성의 문제에서 시작하지만, 결과적으로 남성들도 보호하는 교육"인 겁니다.

일터에서 젠더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구성원들이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조직 관행을 만들어가는 '젠더 통합 리더십'이 최근 각광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일터에서 젠더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구성원들이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조직 관행을 만들어가는 '젠더 통합 리더십'이 최근 각광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Q.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조금 더 실용적인 해법이 절실합니다.

A.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인사 담당자만의 노력으로는 어렵겠지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경영진의 마인드입니다. CEO와 경영진이 기업 내 성평등 정책을 확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먼저 그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다른 기업의 모범사례를 벤치마킹하거나 성평등 인식이 높은 CEO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경영진의 인식을 바꾸는 방법이 한 예입니다.

여성들과 성평등 조직문화에 동의하는 남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소통의 기회를 확대하는 일도 효과적일 것입니다. 특히 이런 변화가 왜 필요하고 궁극적으로 회사와 직원들에게 어떤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토론의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신 교수)"

이에 더해 유재경 교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미혼(비혼) 직원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조직 내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조금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기업 조직의 인사 정책은 대부분 기혼 직원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자녀학자금 제도나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은 미혼(비혼) 직원에겐 그림의 떡이죠.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지 않아도 일과 가정의 균형이 필요한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주류 집단(기혼)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집단 간 차이를 무시한 채 이뤄지는 중립적 접근은 오히려 진정한 평등과 거리가 멉니다."

부록: 조직의 성별 고정관념 점검하기

다양성을 포용하고 함께 성장하는 조직문화에 관한 단행본 'MZ, 젠더 그리고 조직문화(하수미 지음, 플랜비디자인 펴냄)'는 리더들이 점검해 볼 만한 성별 편견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어요. 당신이 리더라면 자신의 성차별 편견 정도를 직시해볼 수 있고, 당신이 실무자급 직원이라면 내 일터의 성평등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가요. 당신의 일터는 지금 평등하고 안전한가요?

조직의 성별 고정관념 점검하기 (리더용)

① 남성 직원과 여성 직원이 동시에 일을 잘하는 경우 어떤 쪽에 호감이 더 가는가?
② 여성과 남성을 평가할 때 남성에게 더 우수한 평가를 하는가?
③ 회의 시간에 여성 직원이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가?
④ 남자직원과 여자 직원에게 업무 기회나 교육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해주는가? 여성이라서 해외근무 대상에서 제외한 적이 있는가? 인사 기획 등 주요 업무에 남성 직원만 배치하는 경우가 있는가?
⑤ 자녀가 있는 남녀 직원들을 다르게 대한 적은 없는가?
⑥ 여성 직원에게 업무지시를 하거나 부정적 피드백을 해 주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가?

※ 젠더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이 있으신 분은 1. 고민의 내용 2. 관련해 묻고 싶은 질문 3가지를 작성해 이메일(herstory@hankookilbo.com)로 보내주세요.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고민 내용은 '젠더무물'에 소개됩니다.

디자인=박길우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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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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