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뇌관 '임대차 3법' 진단]
<하> 전월세상한제 2년 부작용
신규, 갱신권 사용, 권리 포기 계약 나뉘어
전셋값 급등에 금리 인상기 이자 부담까지
'주거 안정'된다는 법이 '주거 불안' 부추겨
#1. 전북 전주에서 2억5,000만 원에 전세를 살던 김모(36)씨는 계약 만기를 앞두고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의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려 했다. 김씨가 생각한 인상액은 전월세상한제가 규정한 임대료의 5%. 그러나 집주인은 "지금 시세(4억 원)에 맞춰 달라"며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면 실거주할 테니 나가라"고 엄포를 놨다.
김씨는 자녀 문제가 걸렸다. 주변엔 네 살짜리 아이를 키우기 마땅한 층수와 면적의 매물도 없었다. 김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전 계약금의 60%에 달하는 1억5,000만 원을 급히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친정에도 손을 벌렸다. 정작 자신이 전세를 내준 자택의 임차인에겐 5%만 올려 받았다. "(저는) 집주인으로서 법을 지켰지만, 세입자로서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어요. 누구를 위한 법인가요."
#2. 이모(34)씨는 내년 2월 전세 계약 4년 만기를 앞두고 있다. 이씨 거주지의 현재 시세는 4억5,000만 원. 신규 계약을 하려면 전세대출을 1억3,000만 원가량 더 받아야 한다. 이미 대출받은 2억2,100만 원의 이자는 금리가 오르면서 이달 말부터 월 73만 원이 된다. "현재 전세가에 맞춰 대출을 더 받으면 이자로만 100만 원이 넘게 나가요. 감당할 수 없어서 반전세를 알아보고 있답니다."
#3. 조모(25)씨는 전세 계약 만료가 12월이지만 벌써부터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앱)을 일 삼아 들여다보고 있다. 계약 당시 무소득자 카카오뱅크 청년전세대출로 전세금의 90%인 7,200만 원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리(1.78%)로 빌렸는데, 금리가 오른 데다 올해 직장인이 되면서 재계약을 하려면 금리가 더 높은 대출상품을 알아봐야 한다. "고정 지출이 조금만 늘어도 타격이 큰 사회초년생이라 날이 갈수록 두려워요."
임대차 3법 시행 2년째, 전세시장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①급등한 전셋값에 세입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②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 간 전셋값이 크게 차이가 나면서 '이중 가격'에 '삼중 가격'까지 등장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면적인데 가격이 3개까지 공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③금리 인상 기조까지 겹치며 전세대출을 받은 세입자들은 이자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임대차 3법이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담보할 것이란 정부 구상과 달리 실상은 법으로 억누른 가격이 한꺼번에 시장에 반영되며 세입자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같은 단지, 같은 면적인데 가격은 천차만별
우선 전세시장엔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에 따른 전셋값이 혼재하고 있다. 새로 전세 계약을 맺거나, 2년 전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세입자는 현재 급등한 전셋값으로 계약해야 한다. 최장 4년간 오른 전셋값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된다는 뜻이다. 2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살펴봤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는 4월 9일 23억 원에 신규 계약을 맺었다. 일주일 전인 4월 2일엔 15억7,500만 원에 갱신 계약이 성사됐다. 일주일 새 8억 원 가까이 차이 나는 거래가 발생한 것이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 푸르지오 2단지'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12월 7일 11억 원에 신규 계약을 맺었다. 약 일주일 전인 11월 29일엔 8억1,900만 원에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계약이 이뤄졌다. 전셋값이 3억 원 가까이 차이 났다.
심지어 이 단지에선 삼중 가격까지 등장했다. 비슷한 시기인 그해 12월 15일 같은 면적이 10억5,000만 원에 갱신 계약됐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수 있는 세입자가 이를 사용하지 않은 건으로, 당시 시세의 95%에 해당한다. 근처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자녀 학군이나 직장 때문에 집을 떠날 수 없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사정해 직전 계약금과 시세 사이에서 전세금을 올려 계약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갱신 계약이라 하더라도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여부에 따라 보증금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부동산R114가 전월세신고제가 시행된 지난해 6월 1일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신고된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을 분석한 결과, 신규 전세 계약을 맺은 임차인은 갱신 계약자보다 평균 1억5,000만 원 높은 보증금을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전세 계약을 새로 하려면 2년 또는 최장 4년간 평균 1억 원 넘게 뛴 금액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임대가격이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억눌려 있다"며 "전월세상한제로 임대가격 상승을 억제해도 효과는 일시적"이라고 지적했다.
전셋값 급등에 금리 인상까지... "월세로 돌려야 하나"
최근 2년간 전셋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2020년 5월 2억3,432만 원이던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임대차법 시행 1년을 맞은 지난해 7월 전달 대비 17% 오른 3억869만 원까지 뛰었다. 지난달 기준 평균 전세가는 3억1,779만 원으로 2년 전에 비해 8,300만 원가량 올랐다. 부담은 세입자들의 몫이다.
연이은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전세에서 반전세·월세로 돌리는 세입자도 늘고 있다. 올해 서울 임대차 계약의 월세 비중은 절반을 넘어 역대 최고 수준(51.6%)을 찍었다. 월세 비중은 2019년 41%, 2020년 41.7%, 지난해 46.0%로 상승세다. 서울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전세 문의는 아예 없고, 거꾸로 전세 물건이 나오면 월세로 전환되는지 집주인에게 물어봐 달라고 요청하는 수요자가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임대차 3법에 따른 전세시장 불안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임대차 3법이 있는 한 끊임없이 다중 가격이 형성될 것"이라며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 간 격차가 과하게 벌어지면서 4년 단위로 주거 불안 문제가 계속 발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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