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 섬에 가다 : 경남 통영 두미도
경남형 섬 재생사업 ‘살고 싶은 섬’ 1호
전국 최초 '섬택근무'로 워케이션 선도
외지인 발길 늘면서 마을 인구도 늘어
섬 고유 자원으로 지속가능 마을 조성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고개만 돌리면 숲이고 바다라 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보고 있는 것보다 아이디어가 잘 떠올라요. 전화나 민원인이 와서 업무 흐름이 끊길 일도 없어요. 제 스케줄에 맞춰 일하다 보니 업무 효율성도 최고입니다. 퇴근 후에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코앞에서 휴가까지 즐길 수 있으니 제대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누리는 느낌이에요.”
통영 두미도에서 섬택근무 중인 김보준(39)씨
지난달 21일 경남 통영시 두미(頭尾)도에서 만난 김씨는 ‘섬택근무’의 장점을 묻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섬택근무는 섬에서 지내며 원격으로 근무하는 업무 형태다. 섬마을을 살리기 위해 지난해 5월 경남도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손을 잡고 시작했다.
섬, 쉼이 되다… 쉼표를 닮은 지상낙원
두미도로 가는 유일한 배편은 카페리여객선 바다누리호다. 194톤급으로 최대 승객 124명과 승용차 6대를 섬으로 실어 나른다. 4월부터 9월까지는 통영항 여객선터미널에서 매일 오전과 오후 한 번씩 출발한다. 항로가 달라 뱃길로 오전에는 1시간 20분, 오후에는 2시간을 달려야 두미도가 눈앞에 들어온다.
두미도는 '머리'(頭)와 '꼬리'(尾)만 두드러진 가오리의 형체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얼핏 보면 '쉼표'와 비슷하다. 생긴 모양대로 쉼을 찾는 데는 두미도만한 곳이 없다. 통영에서 가장 높은 천황산은 아직 사람들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고, 바다를 바라보며 섬 둘레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일주도로도 잘 조성돼 있다. 강태공들 사이에선 굳이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섬 어디서나 손맛을 볼 수 있는 '낚시의 성지'이기도 하다.
불편을 기회로… 전국 최초 '섬택근무'
두미도 북구선착장에서 내려 좌측으로 150m가량을 걷다 보면 '두미 스마트워크센터'라는 간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섬택근무 사무실이다. 지난해 3월 청년회관을 개조해 10여 명이 근무할 수 있는 곳으로 꾸몄다. 바로 옆 경로당 2층은 숙소다. 상시 영업은 하지 않지만 도착 2,3일 전 예약하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도 지척에 있다.
스마트워크센터라고 해서 내심 근사한 인테리어를 기대했다면 실망이 앞선다. 칸막이가 쳐진 책상 4개에 회의를 위한 공용 테이블, 휴게공간으로 보이는 소파와 냉장고가 전부다. 그러나 사무실 형태를 갖춰놓은 공간이 이만큼일뿐, 근무 장소를 이곳으로 한정하는 건 아니다. 바닷가에서 회의를 하건 산에 올라 보고서를 쓰건 정해진 규칙은 없다. 섬 전체가 사무실인 셈이다.
코로나19로 원격근무확대 확산도 기회
두미도가 전국 최초의 섬택근무지가 된 사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 1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경남형 섬 재생사업인 '살고 싶은 섬 가꾸기' 대상지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2023년까지 30억 원이 투입되는 주민주도형 사업에서 두미도는 특히 섬택근무에 공을 들였다. 9년 전 해저로 인터넷 광케이블이 깔려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근무 환경이 육지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코로나19로 원격근무시스템이 확산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위기가 곧 기회로 다가온 것이다.
여기에 진주 경남혁신도시에 입주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이 힘을 보탰다. 중진공은 지난해 5월부터 임대료를 내고, 일주일에 한 차례 4명이 팀을 이뤄 2박 3일 일정으로 두미도에서 근무하고 있다. 신규 사업 발굴 및 아이디어 개발 등 단기간 협업이나 집중이 필요한 업무 수행, 온라인 교육 수강과 같은 자기계발 활동에 섬택근무를 활용 중이다.
중진공 부산지역본부에서 온 이승준(40)씨는 “퇴근 후 산책만으로도 카페나 편의시설 부족 등 다른 불편함을 상쇄할 만큼 좋았다”며 “똑같은 업무를 하는데 에너지를 소진한다기보다 오히려 얻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병찬(34)씨도 “다소 폐쇄적이고 동떨어진 곳으로 생각했던 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며 “입소문이 퍼지면서 사내 섬택근무 신청이 두 달씩 밀려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머물다 가는 섬에서 살고 싶은 섬으로
섬택근무는 섬에 활력을 불어넣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두미도 인구는 섬택근무 직전인 2020년 59가구 89명에서 1년 사이 67가구 98명으로 늘었다. 섬택근무로 섬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늘면서 두미도가 가진 자연명소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섬을 둘러싼 기암괴석과 해식애가 빚어내는 절경은 두미도의 가장 큰 매력이다. 과거 동굴 틈 사이에서 연기가 새어 나왔다는 무너진 강정바위, 사람 얼굴을 쏙 빼닮은 부처바위, 강아지 형상에 더 가까운 곰바위 등 사연을 가진 바위들을 배를 타고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캐나다에서 20년을 넘게 살다가 지난해 초 아내와 함께 두미도로 이주했다는 한호수(60)씨는 “코로나 19로 귀국했다가 두미도에 한눈에 반해 정착했다”며 “바람과 조류가 강한 탓에 양식장이 없다 보니 순수 자연 그대로 섬다운 매력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섬이 활력을 찾으면서 마을 분위기도 달라졌다. 민박 등 관광업에 관심을 갖는 주민이 늘었고, 주민대학 등 공동체 프로그램 참여도 확산되고 있다. 두미도로 시집와 63년을 살았다는 곽숙자(85) 할머니는 “다 늙어 죽고 이제 섬도 없어지나 했더니 마을에 다시 활기가 도는 것 같다”고 기뻐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섬 옛길’ 복원 사업에 자발적으로 주민들이 참여한 것은 이런 변화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북구마을 이장 고상훈(62)씨는 “30~40년 전에는 물고기만 잡아도 아이들 공부시키고 돈 걱정 없이 살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섬은 변해야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남도가 추진하는 섬 재생사업의 최종 목표는 섬 주민들이 운영하는 지속 가능한 마을 조성이다. 조시영 경남도 섬어촌발전과 전문위원은 “도로나 시설 중심의 인프라 구축이 아닌 섬의 수려한 경치와 생태환경, 특산물 등 고유 자원을 브랜드화하는 게 살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의 핵심”이라며 “행정 지원이 끝나도 주민 스스로 마을 기업을 운영하고 주민복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두미도는
위치: 경남 통영시 욕지면 두미리
인구: 67가구 98명
면적: 5.03㎢
산업구조: 어업 62%, 농업 26%, 기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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