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홈트(홈트레이닝)
'체중 주의' 건강 검진 판정받고
집 벗어나지 않고 복부 관리 결심
사이클 기계 바꾸고 힘찬 페달
야근 핑계로 이틀째 건너뛰어
자기관리 실패 자괴감 쌓아두고
내일은 다르리라 헛된 다짐 반복
"하루 버틴 모두에 칭찬 포인트를"
다시 사이클 위로 몸을 올린다
남은 할부금을 떠올리면서
편집자주
강소희 작가, 서효인 시인이 스포츠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스포츠에 열광하는 두 필자의 시점에서 이 시대의 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적합니다.
매우 상쾌한 마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대한 귀찮음과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상태로 수면 마취에 빠져드는 게 보통일 테고 나도 그랬다. 푹 자고 일어났더니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듯했던 정신은 서서히, 아니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왔다. 며칠 뒤 받은 결과지는 다행히도 신체에 크나큰 경고를 주진 않았으나, 체중에 있어서는 주의를 요한다는 판정이었다. 육안으로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병원의 공식 제안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의사는 적당한 운동을 권유했다. 운동을 권유하지 않는 의사는 없겠지만 직접 들으니 그건 또 다른 문제였다. 예전 입던 옷은 진작에 사이즈가 맞지 않게 됐다. 살은 만병의 근원이자 자기 관리 실패의 상징이다. 도톰의 영역을 지나 두툼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는 복부를 어떻게든 관리해야 했다. 어떻게든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텔레비전과 유튜브는 말한다. 하면 된다고. 주말마다 텔레비전에서는 각종 연예인의 일상을 자세히도 보여주는데, 그중 상당수는 매일 규칙적인 운동으로 균형 잡힌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균형 잡힌 체형에는 밀도 높은 근육량과 탄탄한 복근 같은 것도 포함된다. 지난 주말까지는 소파에 누워서 '그래, 그렇구나, 참 잘나고 멋진 인간이 많구나' 하며 보고만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괜히 거실 한가운데 나와 앉았다 섰다 해본다. 이런 비슷한 자세를 보고 무슨 운동이라 하던데? 스쿼트? 중학교 시절 교실 옆 복도에서 체벌받는 자세와 비슷했다. 몇 번 앉고 일어서길 반복하는데 대번에 틀어놓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가 그런다. 그건 스쿼트 자세가 아니라고. 자기들끼리 한 말인데 괜히 찔려서 다시 소파로 피신한다. 나는 힘든 일주일을 보냈고, 주말에는 아이들을 돌보았고, 이제 조금 쉬는 중인데…. 그 시간을 쪼개 중력을 반하여 앉고 일어서길 반복하려다 그마저 실패했다. 자기 관리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주말이면 원래 사회인 야구를 했었다. 주지하다시피 야구는 뱃살을 빼는 데에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운동이다.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들도 배가 불룩 튀어나온 경우가 왕왕 있고, 팬들은 그 배를 야구 주머니라 부르기도 한다.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말씀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뱃살은 나왔으되 야구 실력은 꽝이었으니 그건 야구 주머니가 아니고 그냥 지방 주머니에 불과했다. 유산소는커녕 경기 후 국밥이나 맥주 흡입이 더 잦았던 운동, 사회인 야구는 코로나 시국을 지나오면서 흐지부지 그만두게 되었다. 이젠 그마저도 없고 누가 관찰하는 일상도 없으니 앉아서 일하고 누워서 쉬는 것이다. 그러다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에서 마주친 먹방 영상을 보며 점심으로 해치운 배달 음식에 관한 죄책감을 씻어낸다. 아이고, 피곤한데 조금만 더 누워 있자. 오늘은 비가 오니 누워 있자. 오늘은 너무 더우니 집에 있자,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이불 밖은 위험해. 그렇게 일요일 밤이 오면 다시 깊은 시름에 빠진다. 이렇게 놀면 뭐하니. 거울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면 거기에는 부쩍 도드라진 아랫배뿐이다.
이영미 작가의 '마녀체력'은 필자 같은 사람에게 맞춤한 책이다. 에디터로 평생을 살며 책을 만든 작가가 운동으로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담았다. 본인을 “마흔 살 먹은 아줌마”라 칭하는 작가의 첫 운동은 간명하고 간절했다. “오늘은 딱 운동장 한 바퀴만 돌자.” 그래 나도 운동장 한 바퀴 정도는 돌 수 있지 않나, 간단하네, 생각했지만 올해 장마는 유난히 길다. 운동장을 돌긴 글렀군, 생각하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문득 계단을 걸어 올라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지하주차장에서 집까지는 12층 정도 높이. 이 정도면 운동이 되지 않을까? 그래 나도 오늘은 딱 계단 12층만 올라보자! 중간 지점에서부터 몸이 신호를 보내왔다. 주인님, 평소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군요. 숨이 차고 허벅지가 아팠다. 드디어 현관문을 열고 소파가 있는 집 거실로 들어서는데, 보통 날이었으면 딸아이의 인사가 예뻐서 웃음이 났을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친 라운드를 끝낸 복싱 선수처럼 굴었다. 아 이거 좀 별로구나. 무릇 좋은 부모라 하면 퇴근 후 웃으면서 집에 들어서야 하는데…. 근사한 핑계였다.
좋은 부모가 갖춰야 할 필수적 덕목은 바로 건강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좋은 부모 되기 프로젝트에서 노란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서서히 저하된 체력은 40대가 되자 무람없이 체감될 정도였고, 계단에서의 사투는 더는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었다. 이 정도로 체력이 약했나? 혼자서 뛰고, 걷고, 오르고 하는 일에 재미가 없어서인가? 강소희, 이아리의 저서 '내일은 체력왕'은 체력과 근육을 키우고 싶었던 여성들의 연대기다. 책에서 그들은 농구를 비롯해 축구와 배구 등 여러 사람이 모여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성장한다. 그렇지, 운동이란 그런 것이지. 혼자 집에서 몸에 고통을 주는 행위가 즐거울 리가 없지 않은가. 저자들의 적극성과 과감함에 감복하면서도 바로 행동에 옮기는 실행력은 내게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거실 베란다 구석에 옷을 걸어두는 용도로 탈바꿈한 사이클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다정소감'의 저자 김혼비는 코로나 시대의 운동으로 사이클을 꼽았다. 그는 축구 등으로 다져진 체력 덕분인지 서울 서남쪽에서 출발해 인천 동쪽 인근까지 자전거의 두 바퀴를 굴려 왕복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나로서는 자동차로 가기에도 길이 막혀 엄두가 나지 않는데…. 집구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시도를 해보기로 한다. 소파에 기댄 채 텔레비전을 보다 눈에 들어온 광고가 떠올랐다. 거금을 들여 사이클 기계를 바꾸고 매뉴얼대로 패드에 앱을 설치했다. 야! 이제 나도 사이버 공간에 사이클 동호회분들을 만나 마포대교도 건너고, 서울시청도 지나고 심지어 다낭도 가고 라스베이거스도 갈 수 있다. 설치되자마자 적극적인 의지로 페달을 돌렸다. 경주 맵을 선택하여 첨성대 옆을 지난다. 땀이 흐른다. 이거 운동이 조금 되는 것도 같다.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내 옆으로 아이디 '또치또순아빠'님과 '할수있다50'님이 쏜살같이 추월해 나간다. 그들은 나보다 많은 포인트를 받을 것이다. 아, 다들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사는구나. 운동을 하는구나. 그런데 어쩐지 외롭구나. 경리단길에서…. 아니 거실 베란다에서 나 혼자 숨차 하며 생각했다.
저 사이클도 빨래걸이가 될지 모르겠다. 벌써 이틀을 건너뛰었다. 이번 주에는 야근이 잦았고, 밤 11시 즈음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실내 사이클 위로 올라가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모바일 게임도 즐기지 않는 나인데, 인터넷 공간에서 여럿이 모여 사이클을 타는 듯한 3D 화면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도 같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다 핑계고, 운동할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알고 있다. 현대사회에 적당한 운동은 자기 관리의 기본이라는 것을. 자기 관리가 안 된 인간은 완전한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것도. 그런 걸 알면서도 기본적인 자기 관리에 실패한 나는 자업자득에 가까운 자괴감을 가슴 한구석에 쌓아두고, 내일은 다르리라 헛된 다짐을 반복하면서 하루를 또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 내심으로, 세상 사람 모두가 근육질이거나 운동에 진심일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고된 삶을 지속하며, 운동할 짬을 내지 못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한탄하며, 그러고도 다시 일어나 일상을 지내는 게 아닐까 믿어보는 것이다. 홈트레이닝에 실패하고, 다이어트를 유보했다 하더라도 오늘 하루를 버틴 우리 모두 약간의 칭찬 포인트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반문해보는 것이다. 이 정도 자기위안 끝에, 사이클 위로 몸을 올린다. 남은 할부금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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