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별 특파원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 ⑥
"3월 러시아의 산부인과 공습으로 숨진 그 임신부, 아는 사람이에요. 아내와 태아가 죽자 남편은 견디지 못했어요. 얼마 후 남편이 스스로 생을 버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 있는 산부인과를 공격한 지난 3월. 피투성이가 된 채 들것에 실려 구조된 임신부의 사진 한 장이 언론을 타고 전 세계에 알려졌다. 사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야욕이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고 있음을 증언했다.
마리우폴은 지난달 중순 러시아에 점령됐다. 접근이 제한된 마리우폴의 참상 한 조각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마리우폴 피난민 지원센터 '나는 마리우폴이다'에서 만난 마리나씨의 입을 통해서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마리우폴 출신인가"를 묻자마자 그는 울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어디서 왔는지를 말할 때마다 눈물이 나네요."
마리나씨 집은 공습당한 산부인과 근처에 있었다. 마리나씨는 임신부의 어머니가 산부인과에서 신생아를 담당하던 직원이었다는 사실을 전해 줬다. 손주를 직접 안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던 어머니 역시 그러나 딸과 함께 숨졌다. "모녀도 죽고, 아이도 죽고, 남편도 죽고... 한 가족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어요."
마리나씨는 러시아군이 온갖 이유를 붙여 민간인을 죽였다고 했다. "어느 가족은 '화를 냈다'는 이유로 살해됐어요."
마리나씨는 3월 초에 마리우폴을 떠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버스가 없었어요. 차를 이용하자니 겁이 났어요. 러시아군이 '도시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위협했어요. 러시아군이 지키는 검문소가 20개쯤 된다고 들었는데 통과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도 마리나씨와 그의 가족은 '죽을 각오'로 길을 나섰다. 3월 22일이었다.
"도시를 떠나겠다고 늘어선 차가 500대쯤 됐어요. 러시아군은 남자들을 향해 '차에서 나오지 말라'고 소리쳤어요. 명령을 어기는 사람에겐 총을 겨눴어요." 검문소에선 휴대폰 메시지까지 일일이 수색당했다. 러시아군에게 담배를 뇌물로 주면 수색 강도가 조금 낮아졌다. 이런 과정을 지치도록 거쳐 겨우 도시를 빠져나왔다.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키이우까지 오니 두 달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마리나씨는 "인터뷰 사진은 꼭 모자이크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해 누군가를 붙잡고 털어놓고 싶지만, 여전히 마리우폴에 살고 있는 가족이 피해를 입을까 두렵다고 했다. 그를 인터뷰하던 중 또 다른 비보가 날아들었다.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희생자가 또 발생했다는 보도였다. 마리우폴시에 따르면 아직 10만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남아 있다.
서로 돕는 마리우폴 사람들… "마리우폴, 되찾길 희망"
'나는 마리우폴이다'는 '마리우폴 주민들은 마리우폴 주민들을 돕는다'라는 모토로 운영된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금전적 지원을 하지만, 센터를 관리하고 센터에서 봉사하는 이들은 마리우폴 출신이다. 센터 관계자는 "우리는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공격했을 때 같이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며 "도우면서 위로를 얻는다"고 했다.
센터에서는 2주에 한 번씩 간단한 생필품을 보급한다. 마리나씨 옆에 놓인 봉지에도 빵, 우유, 식용유, 비누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피난민들은 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알아볼 수 있고, 의료·상담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마리우폴에서 사망한 우크라이나인이 지금까지 약 2만2,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우크라이나 정부는 추산한다. 고향을 탈출하는 행렬이 긴 이유다. 센터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체에 '나는 마리우폴이다' 센터가 4개 있는데, 키이우 센터에 등록된 인원만 6만5,000명쯤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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