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 공기업 부채 놓고 시각 바뀐 정부
새 정부 출범 따른 수순, 문 정부 때도 유사
정권마다 정반대 지침에 공기업 경영 혼란
정부가 적자 늪에 빠진 한국전력공사 등 재무 상태가 취약한 공기업을 향해 고강도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불과 4개월 전 "주요 공기업의 재무 지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던 것과 180도 다른 행보다. 전 정부와 달리 공공부문 개혁을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 국정 기조를 감안하면 정부의 '변심'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당하는 공기업 입장에선 그때그때 다른 정부 지침이 경영에 혼선을 끼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공기업 부채, 문 정부선 "공적 역할로 증가"
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한전,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 14곳을 재무위험 기관으로 전날 지정하고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전체 350개 공공기관 부채의 64%를 차지하고 있는 14개 공기업이 비핵심자산 매각 등을 통해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했다.
이번 조치는 연초 기재부가 주요 공기업 부채비율(부채/자본)이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과 2021년 상반기에 비슷하다고 한 자체 분석과 딴판이다. 기재부는 앞서 2월 중순 16개 공기업 부채가 급증했다는 보도에 맞선 설명 자료를 내고 부채뿐 아니라 자본을 키우는 자산도 함께 늘어 부채비율 증가는 미미했다고 반박했다.
기재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공기업 부채가 증가한 주요 배경인 임대주택 공급, 신재생에너지 확충 사업도 공공기관의 공적 역할 강화에 따른 '투자'라고 강조했다. 기재부가 2월 부채비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던 16개 공기업과 최근 선정한 14개 재무위험 기관 중 겹치는 곳은 13곳이다.
기재부의 태세 전환은 정권 교체 때마다 거치는 수순으로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 등 문재인 정부 정책으로 주요 공기업에 적자가 쌓이고 방만 경영이 심화됐다고 보고 있다. 공기업 평가 뒤집기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 정부 초기 기재부는 공공기관 부채 감축을 강조했던 박근혜 정부와 달리 문 전 대통령 공약이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속도 낸 공공기관을 우대했다.
공기업 "정부 정책 따른 것" 불만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의 대국민 서비스를 강조해 부채 문제에 크게 관심 갖지 않았는데 윤석열 정부는 비용도 같이 보자는 기조"라고 설명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2월 공기업 부채 진단은 지난해 하반기 고유가 등으로 심화된 한전 등의 적자 확대 등을 반영하지 않은 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과 4개월 만에 재무상태가 '양호'에서 '악화'로 뒤집힌 평가 결과를 받은 공기업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 역점 사업을 빚을 내 추진했고 그것이 공기업이 할 역할이라는 칭찬까지 받았는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혈세 낭비의 원흉'으로 취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면 공기업은 새 정부에 수긍하고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다"면서도 "이전 정부 정책을 성실히 수행한 데 따른 부채 증가, 재무 상황 악화는 감안했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런 오락가락 평가가 정권 교체 때마다 나올 수밖에 없고 결국 경영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데 있다. 남태섭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조연맹 정책기획실장은 "새 정부가 부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공기업 경영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회사는 물론 임금, 복지 등 공기업 종사자의 삶도 크게 영향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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