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의 경우', '대개의 경우'와 같이 말할 때가 있다. 이때의 '경우'란 꾸미는 말의 조건이나 그렇게 된 형편, 사정을 이른다. '내 경우에, 그런 경우에는' 정도가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문제는 '저 같은 경우에는'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저 말을 굳이 풀어보면, '저와 비슷한 여러 유형 중에서 생길 수 있는 어떤 경우'가 된다. 해석을 하고 나니 더 어려워졌다. 애초에 틀린 말이기 때문이다. '내(제) 경우'로 충분한 표현이 어쩌다가 저처럼 길어졌을까? 심지어 '저는'으로 말해도 될 때가 많은데, 그 맥락에서 애써 '저 같은 경우에는'이라고 반복하는 이가 많다. 영어 '내 경우에는(in my case, as for me)'의 직역에서 나온 오류라는 의견도 있으나, 꼭 맞는 말은 아니다. 어디에서 시작된 말일까?
말의 생태계에도 경쟁이 심한데, 주로 짧고 분명한 표현이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간단 명료한 표현은 말하는 이에게도, 듣는 이에게도 손해 볼 게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벽'의 옛말은 '바람'이었다. 한자어 벽의 뜻과 소리를 말할 때 지금도 우리는 '바람 벽'이라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생태계 바깥에서 1음절인 '벽'이 들어왔다. 안 그래도 '불어오는 바람'과 혼동되는 불편함이 있는 데다가 말도 긴지라, '바람'은 역사의 한쪽으로 밀려나 버렸다. 이처럼 어휘 하나도 짧을수록 생존율이 더 높은데, '저는/제 경우에'를 두고서 '저 같은 경우에는'을 쓰려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저 같은 경우에는'처럼 불필요하게 긴 말은 공손한 표현에 대한 부담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차 한잔하자'를 공손하게 말해 보자. '차 한잔합시다, 차 한잔하실래요?, 같이 차 한잔해도 될까요?, 저와 같이 차 한잔하지 않으실래요?' 등 여러 표현이 있다. 요청하는 말인데도 부정형에다가 의문형을 더한 우회적 표현이 가장 공손하게 들린다. 눈치가 빠르다면 벌써 알아차렸을 터, 완곡하게 돌려 표현하는 한국어의 특성상 공손한 표현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길다. 그렇다고 길게 하는 모든 말이 공손할 리는 없지 않은가?
의사소통의 지름길은 자신이 아는 말을 쓰는 것이다. 누군가가 '왜 그렇게 말하세요?'라고 물어 올 때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자신이 아는 말이다. 혹 모른 채 쓰고 있는 말이 있다면, 이 또한 바꿔 갈 수 있어야 '말의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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