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정신 강조한 일본 재테크 서적 논란 중심에
물가 상승 속 임금 동결된 일본인들 책 제목 비판
200만 엔은 최저생계비 수준...현실 반영 못해
'불필요한 일용품 안 사기, 이동통신 싼 요금제로 갈아타기, 은행 수수료 아끼기… '
지난달 일본에서 출간된 한 서적에 소개된 절약법이다. 대단한 비법을 소개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 책이 큰 논란을 일으키며 화제가 됐다. 30년 만의 이례적인 물가 상승으로 일본 국민들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같은 기간 제자리였던 임금 현실이 오히려 부각되며 일본인들의 분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제목은 ‘연 수입 200만 엔으로 풍족하게 산다’이다. 100만 부 넘게 팔렸다는 ‘연봉 200만 엔부터의 저금생활선언’을 비롯해 ‘처음 하는 사람을 위한 3,000엔 투자 생활’ ‘일주일 지갑으로 쉽게 돈을 모은다’ 등 저축과 투자에 관한 서적을 수십 권 써 온 요코야마 미쓰아키씨의 신작이다. 이번 책은 만화가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의 절약법을 삽화와 사진을 곁들여 소개했다.
내용 면에서 새로울 게 없는 책이 화제가 된 건 제목 때문이었다. 연 수입 200만 엔(약 1,900만 원)이라면 한 달에 16만6,000엔(약 159만 원) 정도인데, 이는 사실 ‘풍족’과는 거리가 먼 최저생계비 수준이다.
결국 ‘연봉 200만 엔으로는 살 수 없다’ ‘절약을 미덕이라고 여기는 건 그만하자. 이러니까 일본인이 가난해진다’ 같은 비판이 잇따르며 트위터에선 연 수입 200만 엔(#年収200万円)이란 표현이 인기 키워드에 올랐다. 방송에서도 출연자들이 200만 엔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토론을 벌였을 정도다.
책 출판 시기가 마침 30년 동안 제자리였던 일본의 소비자물가가 크게 오르는 시점이었다는 것도 논란을 부추긴 원인이 됐다. 지난 4, 5월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를 기록, 7년 만에 처음으로 2%를 넘어섰다. 식품 가격 상승률은 4% 이상, 전기, 가스 등 광열비는 두 자릿수 상승 중이다.
슈퍼마켓에서 올해만 두 차례 이상 오른 식용윳값이나 빵값을 보면 놀랄 정도지만 임금은 그대로라는 것이 일본인들의 호소다. 최근 엔화 약세로 큰 이익을 올리고 있는 수출 대기업은 올해 2%대 임금 인상에 합의했지만, 원료를 수입하는 내수기업은 오히려 채산성이 악화해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없다.
일본 국세청에 따르면 2020년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433만 엔으로, 약 460만 엔으로 최고를 기록했던 2000년에 비해 오히려 떨어진 상태다. 이 기간 비정규직 비중이 늘어 연봉 200만 엔 이하 근로자의 수가 36%나 늘었다. 2020년 기준 연 수입 200만 엔 이하인 근로자의 비율은 전체의 22.2%에 달한다.
작가·평론가인 후루야 쓰네히라씨는 “연 수입 200만 엔으론 절대 풍요롭게 살 수 없다. 200만 엔으로 잘 살라고 강요하면 그건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간 SPA와의 인터뷰에서 “연 수입 200만 엔은 오히려 복지정책으로 구제해야 할 빈곤선”이라면서 “이런 생활을 풍요롭게 산다고 미화하거나 청빈하다고 예찬하면 빈곤을 사회문제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멀리하게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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