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단위로 화요일 연재합니다.
<39> 새는 바가지론 ‘기업유치의 감춰진 허상’
인구문제는 결국 공간문제다. 공간선호로 갈리는 도농격차가 초저출산을 심화시킨다. 도농 간 출산환경은 다르다. 교육·취업은 도시기반이 좋고, 주거·출산은 농촌허들이 낮다. 따라서 청년인구는 좋은 일을 찾아 도시로 몰려든다. 다만 이곳은 출산조건이 열악하다. ‘지방지역→서울·경기’로의 사회이동은 ‘저밀도·고출산→고밀도·저출산’으로의 공간전환을 뜻한다. 2021년 합계출산율 0.81명은 선두 전남(1.02명)과 꼴찌 서울(0.63명) 등의 통합평균치다. 출산율이 높은 지방청년의 서울행이 평균을 낮췄다. 1.02명이 0.63명으로 옮겨가지 않게 지역판 직주락(職住樂)의 고도화가 필요한 이유다. 기업유치는 이때 지방청년을 묶어두는 강력한 유인장치다. 세수확보·고용유발의 직접효과부터 소비진작·지역잔류의 파급효과까지 기대된다. 유치경쟁은 치열하고 간절하다. 쇠락을 막아낼 우선 의제답게 지역정계는 ‘기업유치=당선 보장’의 등식마저 상식화한다. 더 모시고 덜 떠나도록 감정적 읍소부터 재정적 지원까지 총동원된다. 그럼에도 기업유치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자립적인 순환경제를 위한 탈(脫)의존·향(向)자립을 가로막는다. 언제든 떠날 수 있어 불안한 공생구조에 가깝다. 지역운명을 자본속성과 연결짓자면 충분한 고려와 전략이 필수다.
큰물 넣어도 바가지 새면 지역경제 효과제한
기업유치는 화려한 겉과 빈약한 속이 공존한다. 역외자본형 기업유치는 초기일 때 반짝 유효하다. 지역화로 착근된 ‘외지→토종’식 기업활동은 의외로 드물다. 창업고향처럼 특정연고가 있어도 지역화는 어렵다. 관건은 유치 이후 성과환류·순환경제의 실현여부다. 아니면 기업탈출은 배제할 수 없다. 기업이 떠나면 의존구조는 멈추고, 사라진 자생경제의 기억만 남는다. ‘기업유출→의존붕괴→자력부족→지역쇠락’의 악순환이다. 기업이 떠난 후 피폐해진 지역상권은 수없이 많다. 거액의 자금투입이 전제된 기업유치·공공투자의 함정은 ‘새는 바가지(The Leaky Bucket)’ 이론으로 정리된다. 1990년대부터 지역개발이 집중됐던 영국에서 나온 개념이다. 중앙예산 등 외부자금이 지역공간에 투입됐지만, 회복성과가 신통찮다는 반성에서 비롯된다. 2002년 신경제재단(NEF)의 판단결과는 투입자금의 외부유출로 정리된다. 특정지역 경제범위를 하나의 바가지로 보고 외부에서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균열·빈틈을 못 막으면 재생성과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예산투입·기업유치·특구설치·관광모객 등 외부금전이 들어와도 상당액이 지역외부로 유출되면 새는 바가지처럼 메말라간다.
낭설은 아닌 게 유출지점은 적잖다. 가령 건설공사는 거대할수록 전국망 대형사가 맡는다. 컨소시엄으로 지역업체를 넣거나 하청발주를 해도 공사비 대부분은 외부회사 몫이다. 기업유치도 원재료·판관비 등 지출대상이 역내업체가 아니면 수익은 본사로 귀속된다. 일례로 영국 도요타공장의 240여 부품조달사 중 현지업체는 5개뿐이다. 또 스코틀랜드 어느 전기메이커는 사용하는 금속부품 중 12%만 지역생산 몫이다(『地元経済を創りなおす』). 공장유치로 거액외자가 들어와도 부품대금 상당량은 외부로 빠진다는 의미다. 대형쇼핑몰 유치효과도 닮는다. 지역민의 고용창출은 있어도 재무수지 대부분은 본사로 환류한다. 강력한 경쟁자에 굴복한 역내상권의 매출하락까지 넣으면 반감효과는 더 커진다. 바가지에 물을 남기는 건 두 가지뿐이다. 많이 자주 붓거나 혹은 새는 구멍을 막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전자에 익숙했다. 지역에 돈이 없으니 중앙예산·외자유치형 외부자금을 끌어오자는 쪽이다. 쪽지예산 오명이나 혁신도시 로비처럼 ‘중앙→지역’으로의 자금배분을 늘리려는 관행의 출발이다. 물을 더 붓자면 명확한 재생성과가 확인될 때만 유효하다. 외지돈으로 지역을 되살린 사례는 거의 없다. 있어도 집중투하의 단편성과에 가깝다. 가성비(가격대비성능=산출가치/투입자금)가 낮다는 반면교사는 부인하기 어렵다.
누수지점 막는 게 우선 ‘역내승수효과 구조완성’
새는 구멍부터 막는 게 급하다. 방수부터 한 후 돈을 넣자는 논리다. 돈은 외부자금이든 내부금융이든 훌륭한 마중물이다. 새는 구멍을 최소화해 투입자금이 잔존할 때 순환경제는 달성된다. 큰돈을 중앙·외부에서 끌어와 떨어뜨릴까의 맹신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다. 새는 바가지론이 맞다면 기업유치는 매력적이나 실효성은 낮다. 외자유치·대량투하의 개발논리는 신중한 편이 좋다. 붓는 것보다 새는 것부터 우선할 일이다. 틈새를 막은 후 넣은 물은 순환경제라는 물꼬에 올라타 목마름에 애타는 지역내부를 적신다. 완전한 자립경제는 어려워도 역내자금의 역외유출을 최소화해 순환시킨다. ‘원천소득→원천소비→파생소득→파생소비…’식의 역내승수효과가 기대된다. 돈이 돌고 돌면 다양한 유발효과가 기대된다. 영국·일본 등에서는 누수지점을 찾아 순환가치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본격적이다. 토착기업 등 지역주체를 최대한 결합시켜 역외유출을 줄여내는 방식이 그렇다. 일본은 지역회사가 개발사업을 전담하는 조례까지 만든다. 낙찰기준에 지원자격을 제한해 로컬업체의 인센티브에 집중한다.
물이 남을수록 승수효과는 커진다. 투하자금이 유출·소멸되기 전 여러 번 순환되는 정도인 역내승수효과(Local Multiplier Effect)로 구체화된다. ‘역내투자→역내생산→역내소득→역내소비→역내조달’의 실현회차별 승수배수는 커진다. 화살표가 끊겨 역외소득으로 유출되면 효과는 차감된다. 그러자면 활동주체는 지역외부(대기업)보다 지역내부(토착기업)일 때 유리하다. 토착주체면 지역착근적인 공급체인·고용창출이 발생하고 역내소득도 남아 순환경제의 밑거름이 된다. 중앙·외부의존적인 재생작업은 바가지보다 돈에 집중한 사고체계다. 지역토대보다 자금규모가 더 관심사였다. 이로써 획일·제한적인 재생성과가 반복됐고, 역외유출의 딜레마 속에 창출효과가 소진되는 한계가 컸다. 지역정책도 지역에서 만들어 외부로 내다파는 지산외상(地産外商)을 강조했다. 유출자금의 통제·삭감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문제는 지산외상이 어렵다는 점이다. 매력적인 상품개발도 힘든데 역외판매로 풀기란 쉽잖다. 내부순환의 고도화로 눈을 돌리는 건 자연스럽다. 금융위기 후 유럽 각국이 외부충격에서 벗어난 자립경제를 표방한 이유다. 에너지·식품 등 과도한 역외분업이 취약·의존성을 심화시켜서다. 대안은 역내자립을 통한 순환경제의 달성이다.
유명브랜드 유치보다 지역형 소형경제부터 주목
마중물은 마중물대로 찾되 우선과제는 자립형 순환경제의 토대 마련이다. 외지 대형사에 개발주도권을 안 뺏기려면 토착주체의 참여수준과 능력을 키워내는 경쟁력이 중요하다. 거인과의 싸움은 피하는 게 좋다. 지역단위가 도전하기 힘든 경쟁자다. 아마존·쿠팡 등 당일배송의 유통강자에 맞서기보다 지역토착·골목상권이라 더 잘하는 경쟁력에 주목하자는 뜻이다. 불가능하지는 않다. 지역화의 명분도 경제화의 실리도 충분하다. 작은 것이 아름다운 이유와 잃어버린 기억의 소환이 창출해낸 로컬상품도 늘어나는 추세다. 농담 삼아 떠도는 말이 있다. 새벽배송이 지방소멸의 원인이고 스타벅스가 없어 청년이 떠난다는 비유다. 자조적인 너스레지만, 쉽게 넘길 일은 아니다. 반대로 유명체인점이 생기면 상권이 부활할 걸로 기대한다. 지자체가 나서 유명브랜드를 유치하자는 얘기까지 들린다. 이때 명심할 건 체인점포든 제조공장이든 지속적인 지역경제에 도움이 안 되면 무용지물이란 점이다.
유명체인점은 지역활성화의 성공지표로 거론된다. 돈이 됨직하니 들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공헌만으로 출점하기란 쉽잖아 설득적이다. 그만큼 출점기준은 냉정하다. 반대로 부적합에 따른 폐점 진행도 신속하다. 더 큰 문제는 폐점 충격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알듯 폐점 여파는 상당하다. 또 대개는 폐점기준이 유사해 동시다발로 지역상권을 떠난다. 외부의존식 상권운영은 지역가치를 피폐화시킬 한계를 내포한다. 해외사례를 보면 건강하고 지속적인 지역상권은 대부분 균형과 개성적인 점포구성으로 확인된다. 외부 의존이 아닌 자체 생존을 위한 토착점포의 협력관리가 일반적이다. 점포를 나눠 다양한 라인업을 보태며 기존 상인에 청년창업까지 활력을 보탠다. 업종 쏠림을 막고 다양 점포를 키우려 상인회(상점가)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상권관리로 특화된다. 결국 창출가치를 지역외부로 옮기려는 자본본능을 제어할 선제장치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지역화를 담아낸 차별적 소형경제가 살아 움직일 때 기대효과는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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