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관련 없는 부대에 전파 막은 것... 원본은 남아"
감사원 감사 진행 중인 상황에서 또다른 뇌관 될 듯
해경과 국방부가 2020년 9월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의 ‘월북’을 추정한 근거는 대북 특수정보(SI)였다. 하지만 같은 SI를 놓고 지난달에는 월북이 아니라고 입장을 번복했다. 이후 논란이 커지자 사건 당시 합동참모본부가 SI를 삭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급기야 국정원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를 무단으로 삭제했다며 박지원 전 원장을 고발했다. ‘첩보→정보→판단’으로 이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이 심각하게 왜곡돼 문재인 정부가 이씨를 제때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합참 "정보 원본은 못 지워"...삭제 개입설 차단
합참은 해명에 나섰다. 김준락 공보실장은 7일 브리핑에서 “(정보) 원본은 삭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밈스(MIMS)를 관리하는 측면에서 필요한 조치가 이뤄진 것”이라며 “민감한 정보가 직접적으로 업무와 관계없는 부대까지 전파되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밈스'는 합참 정보본부가 운영하고 국정원과 한미연합사, 작전사령부 등이 연결돼 있는 사단급 이상 제대 간 '군사정보관리 시스템'을 말한다. 한미 양국이 감청 등으로 수집한 첩보를 판단해 버릴 건 버리고 쓸 만한 내용을 추려 정보로 가공한 것들을 올려놓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밈스 자체가 2급 비밀로 지정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태스크포스(TF) 단장인 김병주 의원은 이날 국방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밈스) 문서 삭제 여부 등이 외부에 유출된 것 자체가 광범위한 보안 사고”라고 지적했다.
朴 "국정원도 원본은 서버에 남아"...정보 유통을 차단할 뿐
과거 국정원은 연락관이 합참을 찾아가 밈스 정보를 열람해 내용을 공유했다. 번거롭던 이 과정이 문재인 정부 들어 달라졌다. 군 소식통은 "합참과 국정원이 함께 관여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실시간으로 합참의 군사기밀을 공유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정원도 원본을 지울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박 전 원장은 “국정원에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하면 원장이 삭제 지시를 한다고 해도 국정원 메인 서버에 남는다”고 말했다. 김병주 의원 역시 “국정원에 나가 있는 밈스 체계도 국방부가 운영하는 것”이라며 “국정원은 이를 삭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합참 관계자도 정보 삭제 논란에 대해 “사안과 관계없는 곳이 정보를 열람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정보를 내릴 수 있다”고 말하면서 “원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정보 유통이 차단된 것이지 정보 자체는 남아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애당초 삭제 의혹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셈이다.
軍, 감사원 눈치보기... '입장번복' 전례 겹쳐 외줄타기
군 당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뒷맛은 개운치 않다. ‘정보 삭제’가 아니라 정보 공유를 차단한 것이라지만 누가, 언제, 어떤 정보를 리스트에서 지웠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한 관계자는 “관리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정해져 있다”면서도 “군사 보안상 밝히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SI 보고체계는 합참 상황실→합참 정보본부장→합참의장·국방부 장관→청와대 국가안보실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사건 경위를 듣고자 이영철 당시 합참 정보본부장, 서욱 국방부 장관과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른 군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가 한창인 시점에서 입장을 발표하는 것 자체가 (감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전직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정보) 무단 삭제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며 “관계장관 회의까지 열린 시점에서 인위적으로 삭제를 지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삭제가 아닌 ‘공유 차단’의 경우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민감한 정보의 유출을 꺼리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진상 규명의 책임을 떠안은 감사원이 밝혀야 할 부분이다.
한편 국정원은 이날 입장자료를 내고 "박 전 원장을 밈스에 탑재돼 있거나 이를 통해 관리·유통되는 문건을 삭제한 혐의로 고발한 것이 아니며, 고발 내용은 이와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다만 어느 문건을 삭제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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