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눈을 돌리면 새로운 세상이 보일 때가 많다. 말은 특히 그러하다. 2001년 11월 크레파스 '살색'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수십 년간 무심코 부르던 이름이었지만, 특정 색을 살색이라고 하는 것이 인종차별이라는 의식이 생긴 것이다. 이에 동의한 기술표준원은 2002년에 살색을 '연주황'으로 개정 고시한다.
한편, 삶 속에서 발견한 차별을 시정한 것으로 어른들이 안심할 때, 연주황에 문제를 제기하는 아이들 6명이 있었다. 2004년 8월, '피해자: 대한민국 어린이들'로 명기한 문건에서 '한자 표기인 연주황은 뜻을 쉽게 알 수 없으니, 살구색이나 복숭아색 같은 쉬운 우리말로 바꿔달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다. 어린이들에게 차별이란 어떤 것인지 어른들은 미처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2005년 5월, 기술표준원은 연주황을 차별로 인정하고, 살구색으로 시정한다.
다시 2022년 여름, 대한민국에서는 '마약'이 논쟁 중이다. 마약은 중독성이 강한 음식을 수식하는 말로,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마약통닭, 마약만두, 마약된장찌개 등 무수한 음식에 쓰이고 있다. 특정 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정말 마약이 들어간 것인지 묻는다. 생활 속에서 '마약'이 쓰인 점이 오히려 마약에 비교적 안전한 곳이라서 가능하다는 상황이 모순이다. 최근 학부모 단체가 상품 이름을 강조하는 데 '마약'을 붙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냈다. '경상남도 우리말 바르게 쓰기 조례'에서도 수식어 마약 명칭을 제한하는 조례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했다고 한다. 특허청에서도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상표등록을 제한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마약'을 쓴 지는 오래되었지만, 다양한 곳에서 한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시대적 요구가 아니겠는가?
인사하기, 식사 전 손 씻기, 자기 물건을 스스로 정리하기 등 누구나 아는 일들을 '상식'이라고 한다. 이런 기본을 언제 배울까? 인기 있는 책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에서 보듯, 우리는 세상을 사는 기본을 이미 알고 있다. '마약' 논쟁에 대해 이미 상표등록을 마친 업체는 부당하다는 하소연을 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는 있으나, 영업 이익을 포기할 정도인지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나 상표법에서는 도덕 관념이나 공공질서를 해칠 수 있는 상표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상식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식이 통하는 곳에서 바른 목소리가 들릴 때 우리 삶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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