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는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부르는 말이다. 친족 중에서 숙모, 고모를 부르는 말로, 그 정도 나이의 여자를 사회적으로 확장하여 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은 '아주머니'라 부를 사람의 결혼 여부를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 오늘날 기혼자라 하여 머리 모양이나 옷에서 특별히 구별되지 않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듣는 사람이 안 좋아하는 말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앞에 가는 여자 분이 지갑을 떨어뜨렸어요. 제가 뛰어가서 '아줌마' 하고 드렸는데, 고맙다고 말하기는커녕 화를 냈어요"와 같은 예가 그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초면의 중년 여성에게 '아줌마'라고 한 데 있다.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자주 가는 식당에서 만나는 분을 익숙하게 부를 때 혹은 어린아이의 말로 허용되는데, 드라마에서 자주 노출된 '아줌마'를 쓴 것이다. 그러면 이때 '아주머니'라고 했다면 괜찮았을까? 이 또한 답하기 난감하다. 듣는 사람의 반응을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줌마, 아주머니는 왜 문제가 되는가? 결혼한 성인 남자를 예사롭게 부르는 '아저씨'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아줌마'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아줌마 같다'라고 하면 실제 모습과 무관하게, 나잇살이 붙은 몸에 파마머리, 양산이나 큰 창의 모자, 원색의 옷 등의 겉모습이 연상된다. 어디 외모뿐이랴.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도 자리 찾기, 시식 코너에서는 여러 개를 들고 나서는 억척스러움도 내포된다. 아저씨가 결혼 여부와 나이 등 비교적 단순한 변수로 판단되는 데 반해, '아줌마'에는 말이 안 통할 정도로 강한 생활력이 포함된다.
최근 미국 한인 아줌마 'Ajumma EXP(아줌마 이엑스피)'의 춤 공연이 화제다. 미국 한 지역의 40~50대 여성 30여 명으로 사업가,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현지에서 정착한 전문가들이지만, 공연을 할 때는 과장된 아줌마 스타일로 변신한다. 삶의 원동력이 된 아줌마의 억척스러움을 즐기면서 '아줌마'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바꾸려는 뜻이라고 한다. 날 때부터 아줌마가 된 사람은 없다. '영수야, 도시락!'이라며 막 출발한 스쿨버스와 달리기하는 오래전 광고처럼, 아줌마란 나를 키워낸 우리 엄마들이었다. 나 또한 아이와 문밖을 나서면 어느 정도 그러하다. 물을 담으면 물단지, 꿀을 담으면 꿀단지라 했다. 아줌마라는 단지에 가족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 담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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